

www.everyday01.com - 십자가(0,1)복음방송
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 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망친 삶 재부팅과 리셋하기>의 줄거리 :
하나님은 선민 각자를 위한 본래 계획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시고 집요하게 추구하십니다. 삶이 이 본래의 계획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망가졌으면 땅에서 잘못된 삶의 상태를 중단하는 재부팅과 그렇게 잘못된 흔적을 모두 지우는 리셋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삶을 재부팅 하거나 리셋이 ‘안식년’과 ‘희년’의 근본 취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활화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안식년의 재부팅과 희년의 리셋이 주는 복락을 알아봅니다.
망친 삶 재부팅과 리셋하기
(레위기 25:1~55)
1.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3.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4.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5.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6.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7.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
8.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9.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 나팔을 크게 불지며
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11.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12.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본문은 안식년과 희년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7절에는 안식년에 관한 내용을 말씀하시고, 8~12절에는 희년에 관한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본문 말씀 중심으로 ‘망친 삶 재부팅과 리셋하기’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재부팅은 껐다가 다시 켠다는 의미이고, 리셋은 진행된 모든 상황을 다 지우고 처음으로 되돌려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컴퓨터 용어이지만 이것은 우리 삶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삶을 망쳤을 때 재부팅을 하고 리셋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3,500년 전에 허락하셨습니다.
1~7절은 안식년에 관한 내용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미 안식일을 살펴보았고, 7대 절기 속에도 안식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말씀하시며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성회로 모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우리의 마음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계신 하나님 보좌 앞으로 모일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안식년에 관해서는 포도원을 예로 드시며 여섯 해 동안은 농사를 지어 수확할 것이나 매 일곱 번째 해에는 아예 파종도 하지 말고 포도원을 가꾸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가꾸지 않고 저절로 맺힌 열매를 먹을 수는 있으나 거두어서 소출로 삼지는 못하게 하셨습니다. 6~7절에 “안식년에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나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이나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선민들은 여섯 해 동안 농사를 지어서 먹고, 일곱 번째 해에는 파종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여덟 번째 해에는 새로 파종해서 소출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에 소출이 없는 기간이 상당히 길었습니다. 여섯 번째 해 이후로는 거의 아홉 번째 해가 되어서야 제대로 된 소출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20~21절을 보면 “만일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만일 일곱째 해에 심지도 못하고 소출을 거두지도 못하면 우리가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 내가 명령하여 여섯째 해에 내 복을 너희에게 주어 그 소출이 삼 년 동안 쓰기에 족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안식년에는 파종하지 않은 것을 먹을 수 있으나 그것을 제외하고도 여섯 번째 해에는 3년 치를 수확하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무척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러우며 참으로 하나님 마음대로 하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다만 우리는 이처럼 안식년을 지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안식년의 의미는 그저 일곱 번째 해를 놀고먹으라는 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편, 8~12절은 희년에 관한 내용의 말씀입니다.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49번째 해의 다음 해인 50번째 해는 희년으로 지내라 말씀하십니다. 희년에는 땅을 샀어도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종이 된 사람이 있다면 돌려보내야 합니다. 안식년이 삶을 껐다가 다시 켜는 재부팅이라면, 희년은 삶을 완전히 초기화시키는 리셋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이 분배해 주시는 땅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형편이 어려워져 땅을 팔거나 종이 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희년이 되기까지 어떤 사람은 25년 동안 땅을 판 상태로 살 수도 있고, 10년을 종으로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20년을 종으로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거의 50년 가까운 세월을 종으로 사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희년이 되면 땅은 돌려주어야 하고 종이 된 사람도 돌려보내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당시에는 희년을 계산해서 땅값을 매깁니다. 예를 들어 희년이 10년 남았을 때보다 30년 남았을 때는 훨씬 비싸게 거래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선민에게 갖고 계셨던 본래의 계획을 고수하고자 하십니다. 망가졌다면 회복시키고자 하시고, 안 된다면 완전히 초기화해서 다시 시작해서라도 본래의 계획을 고집하시고 지켜내시고 이어가시고자 하십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는 땅을 분배하실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선민의 가족을 위해 갖고 계신 계획을 이루어 가시고자 하심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땅의 분배는 하나님께서 선민 각자를 향해 갖고 계신 본래의 계획의 토대를 준비하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말미암아 땅을 팔게 된다면 본래 계획의 토대가 사라지게 되는 셈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심각한 훼손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초기화해서라도 선민 각자에 대한 본래 계획을 이루어 가시고자 하십니다. 희년에는 이스라엘 전체의 땅이 하나님이 분배하신 초기의 형태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50년 동안 땅을 불리기도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종으로 팔리기까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희년이 되면 땅은 돌려줘야 하고 종이 된 사람도 돌려보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본래 갖고 계셨던 계획이 이 순간부터 온전히 시작될 수 있게 하는 것이 희년의 목적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향해 갖고 계신 본래의 계획을 고집하십니다. 이 본래의 계획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허락하신 삶의 토대는 기쁨의 동산 에덴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에덴을 상실했고 그 결과는 모든 사람에게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중에서 선민을 택하시고 이들을 위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민을 향해 갖고 계신 본래의 계획이란 에덴이 의미하는 대로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을 살게 됩니다. 문제는 아담으로부터 이어진 죄와 저주의 체질로 인해 하나님의 계획이 자꾸 훼손되고 뒤틀린다는 것입니다. 안식년과 희년은 이것을 재부팅하고 리셋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재부팅과 리셋을 통해 선민의 삶을 기쁨으로 가득 찬 삶으로 되돌리시고 회복하시고자 하십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안식년에 대해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이란 내 마음이 세상에 대해 죽고, 천국으로 올라가서 하나님 보좌 앞에 머물며 하나님을 향해서만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식의 상태가 이루어지면 이 땅에서의 삶은 하나님의 본래 계획이 토대가 되어 진행됩니다. 그럴 때 삶은 기쁨으로 충만한 에덴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천국으로 올라가서 머물며 하나님 측근의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때 세상의 기준으로 눈에 보이는 삶의 처지와 상황은 어떠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문제는 마음에서 안식이 지켜지느냐는 것입니다. 안식이 지켜지기만 하면 내 삶은 하나님께서 본래 계획하신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본래 계획하신 토대는 기쁨의 동산입니다. 아담에게 처음으로 허락하신 삶의 현장이 에덴동산인 것처럼,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고 계획하신 기본적인 삶의 모습은 기쁨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이 자꾸 망가지는 이유는 죄와 저주의 체질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8~3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은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측근의 자리를 지켜내야만 합니다. 그럴 때 마음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삶에는 감사가 충만한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의 삶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이 자꾸 땅으로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자꾸 땅으로 내려오니까 안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안식이란 마음이 세상에 대해 죽고 천국에 계신 하나님께로 가서 하나님 곁에 있는 상태입니다. 쉽게 말해 안식이란 하나님만을 좋아하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안식의 상태만 되면 세상에서의 삶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바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본래 계획이 내 삶의 토대가 되면서 기쁨이 충만한 에덴의 삶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안식이 이루어질 때 마음은 하늘에서 하나님을 통해 기쁘고, 그 기쁨 가운데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감사가 넘치는 삶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반면 마음이 땅에 내려와서 머문다면 안식이 깨진 것이기에 마음은 진정으로 기쁠 수 없고 감사가 넘치는 삶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마음이 세상 것들의 측근이 되어서 떠나지를 못하는 상태입니다. 마음이 땅에 머물수록 누적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본래 계획은 점점 훼손되고 뒤틀립니다. 내 삶이 하나님의 본래 계획으로부터 멀어지고 완전히 훼손되고 망가지는 것입니다. 이 상황을 끊임없이 중지하시고 되돌리시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가 안식이라는 규정을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안식년과 희년은 본래 계획을 고수하시고 되돌리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안식의 상태에서만 하나님의 본래 계획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세상에 대해서 죽고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 아버지 곁을 지키는 최측근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안식의 상태입니다. 이 안식의 상태에서만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본래 계획은 진행될 수 있습니다. 또한 안식의 상태에서만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받아낼 수 있고, 우리의 말과 뜻을 통하여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안식의 의미는 예수님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단 한 순간도 하나님 아버지와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안식 상태에 계셨고 안식의 주인이셨습니다. 예수님을 안식의 주인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 안에 들어가야만 하나님 곁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안식의 상태 안에 계셨기에 따로 안식일의 규정이 필요 없었습니다. 안식년이나 희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과 같은 규정은 결국 우리처럼 마음이 하나님 곁에 있지 못하고 땅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그 의미를 염두에 두자면 계속해서 안식 안에 머물 수만 있다면 내 말과 행동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을 땅에서 이루게 됩니다. 이로부터 안식의 상태에서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말과 행동이 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을 땅에서 이루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잘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말씀드렸듯이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자꾸 땅으로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의 규정도 제정하셨습니다. 마음이 땅에 내려와 있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되기에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일단 마음이 천국에 계신 아버지께로 가야 한다는 것이 안식일과 안식년의 취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의 마음이 하늘에 있기를 강력하게 바라십니다. 그래서 뒤틀어진 계획을 되돌리시려는 의지가 있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바람과 의지가 잘 드러난 첫 번째 예가 상번제 어린양에 대한 규정입니다. 상번제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어린양을 번제로 드림을 통해 마음이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이 계신 하늘로 가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곧 안식을 이룸입니다. 안식은 안식일에만 추구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상번제의 의미를 따르자면 안식은 매일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상번제를 통해 매일 안식 상태를 이룰 것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선민의 마음은 자꾸 세상으로 새어 나갑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하셨는데 마음을 다 하나님께 드리기는커녕 자꾸 세상으로 새어 나갑니다. 일주일 중 안식일을 제외한 6일 동안 마음이 세상으로 새어 나간 양을 생각하면 심각한 수준입니다. 안식일은 이러한 삶을 멈추고 재부팅을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컴퓨터를 할 때 이런저런 프로그램이 충돌하며 멈춰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컴퓨터를 강제로 끄고 다시 켜면 충돌이 풀리고 원활하게 작동합니다. 안식의 의미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상번제를 통해 6일 동안 매일 안식을 이루라고 제시하셨지만, 안식의 상태가 온전치 못하여 마음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자꾸 땅으로 새어 나갑니다. 땅에 누적된 마음을 방치한다면 하나님께서 본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실 수가 없기에 삶을 재부팅을 하라는 것이 안식일 규정의 의미입니다.
이처럼 안식일 규정에는 일주일마다 삶을 재부팅 해서 뒤틀리고 훼손된 본래 하나님의 계획을 회복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안식이 어찌나 중요한지 하나님께서는 매일 드려지는 상번제를 제정하셨고, 일주일에 한 번 재부팅을 위한 안식일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세상으로 새어 나가고 누적되기에 7대 절기를 중간중간에 끼워서 안식의 의미를 더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 년을 보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하늘에 머무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늘에 머물 때만 하나님의 본래 계획대로 삶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위해 상번제를 통해서 막으시고, 안식일을 통해 재부팅을 가르치시고, 각종 절기를 통해 재부팅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다 보면 6년째 되는 때는 심각할 정도로 땅에 머무는 마음의 양이 늘어나게 됩니다. 이것을 위해 안식년을 규정하셔서 아예 1년을 땅에 마음 쏟을 일을 없애버리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선민의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 보좌 우편에 머물며 하나님의 최측근 자리를 지켜내기를 원하십니다. 선민이라면 세상에서의 삶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상번제와 안식일과 각종 절기에 안식의 의미를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으로 새는 마음이 1년 치가 모이고, 2년 치, 3년 치가 모이다 보면 그 양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6년 동안 모으다 보면 하나님의 계획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생겼기에 안식년이라는 재부팅을 아예 1년 동안 세상에 대해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생계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안식년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이는 곧 생계 문제에 대해서조차 마음이 아예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안식년에 대한 규정은 억지스럽기까지 합니다. 6년째의 소출을 가지고 7년째를 지내고 8년째에 수확할 때까지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6년째에는 거의 3년치의 수확을 거두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억지를 동원하시고 부자연스러움을 감행하시면서까지 우리 마음이 하늘로 올라와야 한다는 것을 애달프게 요청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우리의 마음은 자발적으로 하늘로 올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기계나 로봇 같으면 아예 마음을 뚝 떼어서 하늘에 붙박이로 두면 되겠지마는 우리는 인격체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탁하는 심정으로 안식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와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토록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우리 마음이 아버지가 계신 천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해 죽는 안식이 필요하기에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만드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은 하늘로 가야만 합니다.
이제 이러한 이해를 통해 희년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세상에 머무는 것을 막으시고자 상번제를 제정하셨습니다. 안식일을 통해서 막으려 하셨고, 각종 절기를 통해 막으려 하셨고, 안식년을 통해 막으려 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이 새어 나가 세상에 누적되는 것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마음이 새어 나가는 문제는 안식년을 가지고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마치 50년짜리 적금이라도 든 것처럼 마음이 조금씩이라도 세상에 누적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식년을 일곱 번이나 반복하여 49년이 지나고 50년째가 되면, 그 많은 장치에도 불구하고 새어 나간 마음은 적금처럼 불어나서 재부팅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컴퓨터 시스템 전체를 리셋하듯이 아예 처음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는 선민에게 땅을 분배하십니다. 그 땅이란 선민 각자와 가정을 통해 기쁨의 동산을 이루어 가시려는 계획의 토대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분배받은 땅을 파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는 선민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진행될 수 없습니다. 이는 곧 에덴의 삶을 담은 하나님의 본래 계획이 수행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삶이 왜곡되고 뒤틀리고 망가져 버린 상태를 가리킵니다.
자신을 종으로 파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섬김이란 종이 주인에게 하는 일입니다. 재물에 대해 종으로 섬김이란 결국 재물을 좋아하고, 갖고 싶어 하고, 실제로 가지려고 노력하고, 가졌어도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재물을 섬김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께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갖고 싶어 하고, 실제로 하나님을 갖고, 하나님을 가져도 더 갖고 싶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마음이 세상으로 새어 나감이 누적되다 보면 세상에 대해 종과 같은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희년은 이러한 상태를 다 원점으로 되돌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히 재부팅으로는 마음이 새어 나가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에 아예 초기화해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희년은 본래 계획하신 바를 지켜내시고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강력하고 끈질긴 의지입니다. 이러한 의지 속에는 ‘너는 하늘로 올라와서 나로 만족해야 한다. 나의 최측근으로 사는 영생을 지금부터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하나님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안식일과 안식년이 재부팅을 하듯이 지금의 상태를 잠깐 끄고 다시 켜는 의미라면 희년은 아예 처음으로 되돌려서 초기화하여 다시 시작하는 리셋의 의미가 있습니다. 희년이 오기까지는 무려 50년이 걸립니다. 희년이 오기 30년 전에 종이 되었다면 30년 동안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희년이 오기 10년 전에 종이 되었다면 10년을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종으로 팔릴 때의 값도 다릅니다. 희년이 가까운 상태에서는 값이 더 싸고, 희년이 많이 남았다면 굉장히 비쌉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종이 된 모습은 상징적입니다. 토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갖고 계신 본래 계획이라는 그 토대가 상실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가까이 가져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써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만드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그리스도 연쇄 과정은 희년을 가까이 가져오신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매일 희년을 생활화할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잘못되었다고 여겨지는 부분이나 후회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기준으로 볼 때 끔찍할 정도로 더럽고 악하고 부패한 삶이었다고 여겨지는 과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러한 일은 현재도 계속 반복되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희년의 의미를 떠올리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활화함을 통해 싹 정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망쳐진 부분, 잘못된 부분, 악했던 부분을 희년의 의미대로 흰 눈처럼 깨끗하게 초기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희년의 의미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매일의 사건으로 가능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의 마음이 땅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으시고자 상번제를 제정하시고,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각종 절기를 제정하시고, 안식년을 제정하십니다. 그런데도 선민의 마음은 땅을 향해 계속 새어 나가 누적되기에, 아예 마음을 처음 상태로 되돌리는 의미의 희년까지 제정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상번제와 안식일로 세상으로 새어 나가는 마음을 막고,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세상에 누적된 마음을 안식년으로 재부팅하고 희년으로 리셋이 이루어집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마음이 새어 나가는 부분을 매일 깔끔하고 쉽게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땅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세상으로 새어 나가 하나님의 본래 계획이 비틀어져 가는 상황을 허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장 2절에서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땅에 대해서 죽은 자임을 확인하면서 내가 하늘로 올라가 마주해야 할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을 기억하고 의식합니다. 이것이 위의 것을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땅에서의 내 삶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고,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 속에는 전능하심과 온전히 책임지시는 주권자 되심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생각하고 계십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있음이기에 내가 의식해야 할 대상 중에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는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좋음이기에 나는 세상에서 크든 작든 좋음을 기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앞서 예를 들었습니다만 하다못해 집안의 수도관이 터져서 고쳐야 하는 상황조차 고치는 것이 좋음이고 안 고치는 것은 나쁨이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좋음이라고 여길 때 수도관을 고치든 안 고치든 내 마음은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식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을 기억하고 의식하는 일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습니다. 아침에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며 안식의 모든 내용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면 끝날 때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기도드릴 수 있습니다. 마음이 땅으로 새어 나가는 동안 안식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발생한 잘못된 모든 부분을 회개할 수 있습니다. 안식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도 못해서 하나님이 본래 계획하신 삶을 뒤틀리게 만든 부분이 있다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고백하며 싹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는 밑동을 쳐서 치워버리듯이 마음이 세상에 누적 될 여지를 남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때때로 십자가에서 죽은 자라는 의식을 잊고, 안식의 상태가 끊어진다 하더라도 마음은 땅에 누적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본래 생각하신 계획이 크게 비뚤어지는 일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계속해서 활용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세상으로 새어 나가서 누적되는 양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의 본래 계획은 뒤틀리고 훼손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멀어지게 됩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매 순간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마음이 세상으로 새어 나가고 누적된 흔적을 지워버리고, 예수님을 옷 입고 하나님께로 가서 머무는 측근의 자리를 지켜내는 안식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1계명으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제2계명으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며, 제3계명으로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계명이 합쳐질 때 제4계명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안식이 이루어지면 제5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의 세상에서 내 행동에 관한 계명들도 지켜지게 됩니다. 안식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하는 모든 행동은 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은 살아있는 동안에 마음이 하나님께로 올라가서 하나님 곁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본래 계획인 기쁨으로 가득 찬 나만의 에덴동산의 삶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의 마음이 땅에 머무는 바람에 본래 계획이 비틀어진 것을 회복하시려고 상번제 어린양의 죽음과 안식일과 각종 절기에 더해 안식년과 희년의 제도를 제정하셨습니다. 2중, 3중, 4중, 5중으로 마음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는 안식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는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주님을 옷 입고 하늘에 올라가 있어야 함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상번제 어린양과 안식일과 절기와 안식년과 희년을 통해 5중으로 안식의 장치를 두시고 말씀하시고 요구하심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하나님의 애절한 바람인 우리의 마음이 보좌 앞에 거룩한 성회로 모이는 것입니다. 적어도 십자가 복음을 듣는 우리들만이라도 마음이 천국에 올라가 아버지 앞에서 성회로 모이는 교회를 이루어 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