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취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0)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0)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1)’ 갈2:20

숫자0과 1을 괄호로 묶어 이렇게 (0,1)으로 표현한 것은
성경에 나오는 ‘임마누엘’의 의미를 디지털 시대에 맞추어
단순하게 상징화 한 것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임마누엘’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은 아직 몸을 입고 이 땅에서 살고 있는 하늘 백성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며 선민을 선민 되게 하는 정체성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십자가 양옆으로 숫자 0과 1을 배치한 모습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0)과 하나님(1)이 하나로 연합하고 있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즉 나 자신은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십자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로 묶여 있다는 뜻입니다.
즉 가정이나 직장이나 시장이나 학교나 군대나 심지어 전쟁터에서 싸울 때나 데이트할 때 등 그 어디서나 말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묶임 안에서 왜 나는 0로 표현되어야 할까요.

숫자 0은 하나님 자신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함께 할 때, 우리 인간이 취해야 할 유일하게 합당한 마음가짐을 상징합니다.
임마누엘의 사건은 사실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의 실현입니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두 인격의 연합입니다.
거룩하시고 지존하신 하나님과, 그분 앞에 절대로 나갈 수도 머물 수도 없는 추악하고 부패한 존재인 인간의 연합이기 때문입니다.
이 불가능한 연합을 가능토록 하는 기적의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제시합니다.

그 구체적인 길은 단순히 마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비록 몸은 살아있지만 나 자신이 십자가 위의 예수님과 함께 연합하여 이미 죽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앙고백으로서 예수님과 연합된 나의 죽음은 추상적이거나 교리적인 차원에 머무는 내용이 아닙니다.
또 세례 받을 때 일회적으로 일어난 뒤에 종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바울의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전15:31)는 고백처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다양한 사건들 앞에서 끊임없이 죽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사건과 상황에 대한 내 생각이 죽어야 합니다.

내 생각이 죽는 다는 것은 내 판단 일체와 내 소원과 비전 그리고 내 계획이 죽음을 뜻합니다. 사함 받은 죄인으로서 우리가 매일, 순간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의 죽음을 반복해서 확인하지 않는 한 우리의 생각이 움직이는 사이 우리의 판단과 소원과 계획에는 필연적으로 우리 존재의 뿌리 깊은 죄악의 기운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스며들어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죄악의 악취가 풍기는 내 생각 안에 있는 판단 소원 비전 계획을 내가 고집하는 한 거룩하신 영으로서 하나님은 구체적인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나와 함께 하실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렇게 십자가를 붙잡고 날마다 실행하는 내 생각 속의 판단과 소원과 계획 등의 죽음을 숫자 0으로 단순화하여 상징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매사에 내가 죽을 때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선악 판단의 주체가 되었을 때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이렇게 죄악 된 원죄적 주체성이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자발적으로 십자가에서 부인되고 죽어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삶은 비로소 에덴동산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삶에 관해 필요한 생각과 판단과 소원과 계획의 주체는 오직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숫자 1로 상징한 것입니다.

1이 열 번 모이면 10입니다. 억 번 모이면 일억입니다. 그래서 숫자는 사실 단지 1 하나뿐인 셈입니다. 1이 얼마나 모였는가에 따라 무한한 숫자들이 부수적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 한 분의 생각이면 전 우주도 창조되고 삼라만상도 질서를 따라 운행됩니다. 다양한 모든 삶의 분야에 관한 모든 열쇠가 하나님 한 분 안에 다 있습니다.

  • 숫자 0과 1의 이진법 원리.
  • 꺼짐(off)과 켜짐(on)의 원리.
  • 그리고 끊어짐(- -)과 이어짐(ㅡ)의 원리.

이 모든 것이 같은 의미로서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특징짓는 디지털 원리 아닙니까?
그러나 이 원리는 이미 창조의 때로부터 계시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가장 완전하게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이렇게 디지털 원리를 이미 이천 년 전에 선취한 제로원(0,1)원리의 전형이고 원천입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실제의 일상에서 함께 하시려면, 즉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시려면 우리는 십자가를 붙잡고 날마다 죽어 나 스스로의 생각 소원 판단 계획 등이 0 되어 꺼져야(off) 하나님의 생각 판단 소원 계획이 유일한 길로서 1 되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켜지는(on) 것입니다.

내 생각이 죽을 때(off) 하나님의 생각이 나타나기(on) 시작합니다.
내 판단이 죽을 때(off) 하나님의 판단이 드러나기(on) 시작합니다.
내 소원이 죽을 때(off) 하나님의 나를 향한 소원이 표현되기(on) 시작합니다.
내 계획이 죽을 때(off)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on) 시작합니다.

바로 이러한 기독교 신앙의 핵심내용을 사도바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0)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1)이라……” (갈2:20)

십자가는 내가 있는 지금 여기서 나의 모든 것을 죽게 하고, 꺼지게 하고, 끊어지게 하는 스위치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모든 것 즉 나를 향하신 그분의 사랑 생각 소원 계획 능력 등이 살고 켜지고 이어지게 하는 스위치입니다.

설립취지

십자가 복음의 생활화

교리적 한계 안에 갇혀 실제 삶으로부터 추상화되기 쉬운 십자가 복음을 치열한 삶의 현장 한 가운데로 가져오려합니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며 십자가 사건에서 극명하게 계시된, 꺼짐(0)과 켜짐(1)의 제로원(0.1)의 영적 원리를 따라 성경을 해석하여 말씀을 전하므로 듣는 이들이 진정 날마다 죽고 그러므로 가정 직장 학교 시장 백화점 식당 공사장 등등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거하는 기적이 실제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생활화! Everyday 0 1!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본 방송의 사명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영적 원리가 매일 반복해서 들리며 확인되는 가운데 하나님이 실제로 우리를 만나 주시면 이제 바로 그 곳이 회복 된 에덴동산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약 상번제의 복음적 재현

십자가 복음의 생활화를 위해 십자가(0,1)복음 방송은 3500년 전에 시내산에서 제정된 상번제를 십자가 복음 말씀을 통해 오늘에 재현하려 합니다.
상번제란 하나님의 백성들이 출애굽 이후 소제와 전제를 곁들여 매일 아침과 저녁 두 차례씩 들였던 번제를 말합니다. 이 제사에는 유월절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예표하는 일 년 된 어린양이 제물이었습니다.
날마다 드려지는 이 제사에는 다음과 같은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출29:43, 44)

이 상번제의 신약 성경적 성취가 바로 날마다 고백되고 확인되어야 하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연합된 죽음일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제로원(0,1)의 원리를 통해 해석된 말씀을 듣는 가운데 우리는 존재의 뿌리까지 부패하고 타락한 나 자신을 날마다 번제로 드리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드려지는 복음적 상번제를 통해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만남과 동행의 기적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현실이 될 것입니다.

제2, 제3의 땅끝을 향하여

땅 끝까지 이르러 당신의 증인이 되라하신 주님의 지상명령을 입체적으로 수행합니다.

마음에도 깊이와 넓이가 있음을 고려하면 사람의 마음 역시 그 끝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한 하나님 사랑이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그 끝까지를 다해야 하는 사람의 마음을, 십자가(0,1)복음 방송은 지리적 의미의 제1의 땅 끝과는 구분하여 제2의 땅 끝이라 명명합니다.

거기에 더해 전 세계를 덮고 있는 거미줄 모양의 인터넷 망(World Wide Web)을 또 하나의 땅으로 보고 무수한 각각의 단말기를 제3의 땅 끝으로 봅니다.

이미 믿는 이들이 제2의 땅 끝에 도달하도록 그리고 제3의 땅 끝에서 서성거리는 숨겨진 하늘 백성들을 찾아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여건을 허락하시는 한 십자가(0,1) 복음방송은 십자가 복음의 꺼짐(off)과 켜짐(on)의 제로원 원리에 입각한 말씀을 날마다 전할 것입니다.


십자가복음방송 설교자

목사 태승철(Th.D)
  • 장로회 신학대학교(B.A)
  •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대원(M. Div)
  • 독일 괴팅겐 대학교 신학부(Th.D 조직신학)
  •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 Visiting Scholar)
  • 서울여자대학교 강사
  • 서울영락교회 부목사
  • 밴쿠버 삼성교회 담임목사
  • 십자가복음방송 대표(www.everyday01.com)
  • 십자가복음방송 유트브 채널 설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