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books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0)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0)’ 갈6:14

돈 맛은 역시 자랑 맛이다!?_태승철

by 태승철 · 18-04-19 10:25 · 6,553
돈은 맛있지요. 물만두 찐만두 군만두처럼, 돈도 버는 맛, 쓰는 맛, 자랑 맛이 있습니다. 버는 맛도 기가 막히고 쓰는 맛은 황홀합니다. 그러나 역시 최고는 자랑 맛입니다. 버는 맛도 쓰는 맛도 지속되다 보면 무감각해집니다. 이때 돈의 맛을 새롭게 일깨우고 지속시키는 것이 바로 자랑 맛이지요. 돈이 먹고 싶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침을 흘리는 사람들 앞에서 하는 돈 자랑의 맛. 이 맛에 살고 이 맛을 바라고 탐하면서 인생은 서서히, 확실히 멸망으로 다가섭니다.

돈 맛은 역시 자랑 맛이다!?

(잠언 13:1~25)

 

 

7. 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8. 사람의 재물이 자기 생명의 속전일 수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9.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11.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돈 맛은 역시 자랑 맛이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돈 맛은 역시 자랑 맛이다!?’

만두에는 물만두 군만두 찐만두가 있는 것처럼 돈 맛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돈 버는 맛이 있고, 돈 쓰는 맛이 있고, 돈 자랑하는 맛이 있습니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자랑하는 맛이 최고입니다. 버는 맛이나 쓰는 맛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돈 자랑하는 맛을 알면 퇴색했던 버는 맛과 쓰는 맛도 되살아납니다.

돈을 버는 가장 큰 동기는 자랑하고 싶기 때문이고 돈 버는 맛이나 돈 쓰는 맛도 커집니다. 자랑하는 맛이 빠진 채로 돈을 쓰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랑할 수 없으면 그 의미도 퇴색합니다. 그런데 돈 쓰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부럽게 바라본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돈 쓰는 맛이 살아납니다.

 

1988년에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세계최대의 면세점기업인 DFS(Duty Free Shop)CEO인 척 피니(Chuck Feeney)를 기사화하였습니다. 그를 부유하고 냉철하고 단호한 돈만 아는 억만장자로 묘사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수전노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9년 뒤인 1997년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 회사 지분의 일부를 프랑스의 루이뷔통 사에 넘기는 과정에서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천하의 수전노로 불리는 척 피니의 회계장부가 만천하에 공개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1982년부터 시작해서 1997년까지 95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금액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던 것입니다. 15년간 2900회에 걸쳐서 돈이 빠져나갔습니다. 아주 가까운 측근들조차도 이 돈의 행방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구두쇠가 어디로 돈을 빼돌렸는지를 추적하자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빠져나간 돈의 99%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회사의 지분을 팔아서 모두 기부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무려 2900회에 걸쳐서 기부한 돈이 가난한 자들과 돈이 없어서 공부하지 못하는 청년들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척 피니는 구두쇠로 정평이 났던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돈의 쓰임을 측근들조차 몰랐습니다. 1988년에 포브스가 한 비판에 대해서도 웬만한 사람이라면 항변이라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척 피니는 이미 82년부터 막대한 돈을 기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함구하고 있었습니다.

이 밝혀진 사실 앞에서 기자들이 척 피니에게 대체 왜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기부를 했냐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척 피니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 배웠던 인생관에 대해 말했습니다. 척 피니의 어머니는 자랑하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돈을 주더라도 받는 사람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면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따랐던 척 피니는 그 맛있는 돈 맛을 거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돈을 버는 맛이나 쓰는 맛은 모두 자랑하는 맛에서 활성화됩니다. 그런데 척 피니는 무려 95천억 원이나 되는 금액을 기부하면서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척 피니는 201783세까지 자기 소유의 집이나 차가 없이, 자기가 운영하고 있는 재단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행기를 탈 때도 항상 이코노미 석을 고집하며 항상 허름한 식사를 즐기고 25달러짜리 플라스틱 손목시계를 차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에게 남은 재산이 200만 불이 있는데 그것도 마저 기부하고 죽겠다는 의사를 밝힌바 있습니다. 기부를 많이 하는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가 영웅으로 칭한 사람이 바로 척 피니입니다. 돈은 맛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돈 맛을 거부하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지혜와의 연관성 안에서 재물에 대한 훈계가 나타납니다.

재물에 대한 훈계는 앞에서도 여러 번 반복되어 왔습니다만 오늘 본문에서는 지혜와 연계하여 재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있는 자는 돈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반대로 어리석은 자는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비교하고 있습니다.

앞서 의인과 악인이라는 전제가 잠언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자입니다. 매사 매 순간에 자신의 판단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판단을 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곧 하나님 없이는 못 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마음가짐이 지혜 있는 자 곧 의인의 마음가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선악과 곁에는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지혜와 생명을 언급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처럼 지혜와 생명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스스로의 판단을 죽이고 하나님의 판단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러면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 차서 연합하게 되는데 이게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되기를 바라시며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 크기의 마음 공백을 지으셨습니다. 이 하나님 크기의 마음 공백은 선악과를 따먹지 않음으로써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성전의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상번제 어린양을 통해 판단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신 뒤로는 성전 의미의 완성인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판단을 죽일 때에 하나님께서는 내 안에 들어오셔서 진정한 생명이 되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도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살펴보도록 합니다.

 

7절을 보면 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부한 체 하다라는 말은 돈이 많아 보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없는 자가 왜 돈이 많은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고, 반대로 재물이 많으나 가난한 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여기에 기가 막히는 지혜와의 연관성 안에서 재물이 갖는 중요한 성질이 나타납니다. 재물은 사회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공백이 있습니다. 악인 즉 어리석은 자들은 이 공백을 하나님으로 채워야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어제 말씀에서 사람을 나무에 비유했습니다. 나무가 뿌리를 내려 물과 양분을 흡수하듯이 사람도 마음의 공백을 채울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대상에게 뿌리를 내려 채우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흡수하려는 대상이 바로 재물입니다.

계획한대로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니다. 그러나 돈을 벌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음의 공백이 채워지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이제 돈을 씀으로서 마음을 채워보고자 합니다. 이것저것 사들이고 남이 못하는 일들을 하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기쁨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루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무감각해집니다. 명품 백도 한 두 개 살 때까지는 좋았는데 쌓이기 시작하니 가치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고급 차를 사도 처음에는 좋았지만 여러 대가 되고 보니 각각의 문제점만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님 크기의 마음 공백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에 이번에는 돈 자랑하는 맛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이 고급차를 타는 자신을 부러워하자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여기서 돈의 사회성이 생겨납니다. 스스로 벌고 쓰는 것에서 느끼는 기쁨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돈 벌어서 기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랑을 해야 하기 때문에 타인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거의 예외 없이 돈에 굶주려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굶주린 마음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대신에 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돈에 대해 굶주려 침 흘리고 있기 때문에 돈 번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보고 부러워하는 소리가 마음에 상당한 기쁨을 줍니다. 돈 맛 자랑하는 것이 죽여줍니다.

돈이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돈이 없으면서도 돈이 있는 척합니다.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집을 팔아서라도 명품으로 치장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오늘 본문은 지혜의 관점에서 돈의 사회성을 고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랑함으로써 돈의 맛은 절정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들입니다. 척 피니는 겉으로 보기에는 집도 없고 차도 없습니다. 시계는 25달러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다닙니다. 돈이 갖는 사회성에 대해서 신경이 완전히 죽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지혜자의 모습은 돈 맛에 대해서 신경이 죽은 사람입니다.

 

재물에 대해서 신경이 죽어버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음이 돈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비어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하는 지혜자는 하나님으로 마음을 꽉 채운 자들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돈을 벌어도 돈 맛을 모릅니다. 자랑하고 싶은 생각도 의욕도 없습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데에 쓰지 않는 돈이 달리 쓸 곳이 없자 기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지혜자의 모습은 돈이 많은 데도 일부러 가난함을 가장하는 수전노의 모습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쓰는 돈에 대해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자를 칭하는 것입니다. 시계로 인해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25달러짜리 플라스틱 시계로 만족했던 것입니다.

8절 상반절을 보면 사람의 재물이 자기 생명의 속전일 수 있으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재물이 자기 생명의 속전일 수 있으나라는 말은 재물을 자랑하는 자에게는 그 재물이 몸값이 됩니다. 그래서 호시탐탐 그 재물을 노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어리석은 자들과는 다르게 생계로 인해 돈을 벌어야만 하는 처지에 계신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돈이 가지는 사회성을 탐닉하는 자들 즉 남에게 자랑하고자 돈을 추구하는 자들에 대한 훈계인 것입니다.

이어지는 8절 하반절을 보면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한 자는 실제로 돈이 없는 자이기도 하지만 돈 맛을 느끼지 못하는 자이기도 합니다. 돈을 벌고 돈을 쓰고 돈을 자랑하는 것에서 기쁨을 찾으려하지 않는 사람들은 온전한 자유함을 누리리라는 것입니다. 돈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돈이 있으면 자유로울 것 같고, 돈이 있어야 가난으로부터 해방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이 곧 마음의 자유는 아닙니다. 돈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얽매임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9절을 보면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의 빛이 환하게 빛난다라는 것은 하나님으로 마음을 채운 상태를 말합니다. 척 피니가 기독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재물의 사회성을 부인하는 가치관과 인생관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 가치관이 마음에서 빛을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돈 쓰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남모르게 기부하는 것은 곧 사회에 대한 만행에 가깝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치관은 15년간의 기부를 통해 실질적인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등불은 꺼진다라고 했습니다.

좋은 차를 타고 명품을 걸치면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빛은 금세 사그라집니다. 별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인의 등불이 사그라지는 이유가 10절에서 나타납니다.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는 재물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재물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재물로 인해 드러나는 빛은 교만함입니다. 행복과 기쁨으로 인한 빛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돈을 벌고자 하는데 그 중에 내가 돈을 버는데 성공하여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합니다. 그럴 때 교만해집니다. 돈 있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이 교만함의 특성이 잘 드러납니다. 싸움과 갑질이 일상입니다. 이들의 삶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교만해진다라는 것은 곧 내가 법이 되는 상태입니다. 내 말과 생각이 그대로 실현되어야만 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과 생각은 썩어 문드러진 부패한 죄성이 여과 없이 나타난 것일 뿐입니다. 그 말과 생각대로 이루어질수록 삶은 파괴되어 갑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저주는 하고 싶고, 사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돈은 사람을 한없이 교만하게 만듦과 동시에 삶은 한없이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에게서 나온 악함이 여과됨이 없이 스스로의 삶과 이웃의 삶까지도 망가뜨립니다.

 

또한 11절을 보면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주석들을 보면 이 말씀을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망령되이 얻은 재물을 부정한 수단을 통해 얻은 재물로서 보는데 상식적 해석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망령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샤베라고 하는데 헛되다, 공허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입장에서 볼 때에 이 헛되고 공허한 재물은 단순히 부정하게 얻어진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도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것은 곧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신 십계명의 의미를 유지하시며 표현만 달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명령되게 일컫는다라는 것은 입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마음에는 그 이름이 가리키는 존재를 담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이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고 즉 공허하고 헛된 것입니다. 실제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그것은 공허하게 일컫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이해를 통해 망령되이 얻은 재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마음의 공백에는 재물을 추구하면서도 입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얻는 재물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크기의 마음 공백을 재물로 채우고자 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결코 재물은 마음을 채우지 못합니다. 얻은 재물이 마음을 채우지 못하자 쓰고자 합니다. 그러나 돈을 써도 채워지지 못하기에 기껏 얻은 재물도 헛되게 줄어들어 갑니다. 재물이 내 마음의 기쁨과 만족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자가 벌어들인 돈은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주석서들을 살펴보면 앞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말씀도 상식선에서 해석합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재물을 모으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손으로 모았다라는 것은 돈을 버는 일에 있어서 마음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진 사람도 장사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는 장사해서 이윤을 많이 남기겠다는 돈에 대한 추구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으로 만족해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내가 만나게 되는 사람의 필요를 생각하게 됩니다. 장사를 해도 사는 사람에게 득이 되는 좋은 물건을 팔고자 합니다. 이렇게 해서 번 돈은 마음으로 번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하나님으로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행한 결과가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손으로 모은 것입니다. 망령되이 얻은 재물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마음으로부터 출발해서 벌어들인 재물입니다. 반면 손으로 모았다는 것은 마음이 하나님으로 채워진 상태에서 얻어진 재물입니다. 이미 하나님으로 충만하기에 나를 위해 쓰고자 하는 재물이 제한됩니다. 그렇기에 그 돈을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척 피니가 95천억 원이나 되는 돈을 기부한 것이 신앙에 기반을 둔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기부함으로 기쁨을 느껴서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서 행동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손으로 모은 것은하나님으로 기쁨을 누리면서 돈 맛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기쁜 상태에서 버는 돈을 마음으로 번 돈이 아닌 손으로 번 돈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버는 돈은 공허합니다. 그 마음은 돈으로는 채워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돈 맛을 느끼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돈 맛의 최고는 자랑하는 맛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악인이자 어리석은 자들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돈 맛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14절에서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십자가만 자랑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마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욕구만큼 하나님을 벌고 하나님으로 배부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해야만 합니다.

돈으로 무엇인가를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마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 최고로 좋은 것은 비싼 학원에 보내서 과외 시키고 싶을 때마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자식을 위해서 최고로 좋은 것은 내가 먼저 하나님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돈 자랑하고 싶을 때마다 십자가에서 죽고 십자가를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돈과 관계되는 일을 할 때에도 마음이 아닌 손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비록 수입이 보잘 것 없을지라도 오히려 모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모인 돈은 하나님께 용도를 묻고 지시하시는 곳에 쓰면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또 더 주실 수도 있고 안 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생활화함으로써 돈 맛에 대해서 죽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장 맛있어 하는 것이 돈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으로 돈 맛을 대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럼으로써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벌고 그 맛에 취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돈과 관계된 일을 할 때에도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하는 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