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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0)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1) 창1:2

십자가 양옆으로 숫자 0과 1을 배치한 모습은
성경에 나오는 ‘임마누엘’의 의미를 디지털 시대에 맞추어
단순하게 상징화 한 것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임마누엘’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은 아직 몸을 입고 이 땅에서 살고 있는 하늘 백성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며 선민을 선민 되게 하는 정체성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십자가 양옆으로 숫자 0과 1을 배치한 모습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0)과 하나님(1)이 하나로 연합하고 있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즉 나 자신은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십자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로 묶여 있다는 뜻입니다.
즉 가정이나 직장이나 시장이나 학교나 군대나 심지어 전쟁터에서 싸울 때나 데이트할 때 등 그 어디서나 말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묶임 안에서 왜 나는 0로 표현되어야 할까요.

숫자 0은 하나님 자신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함께 할 때, 우리 인간이 취해야 할 유일하게 합당한 마음가짐을 상징합니다.
임마누엘의 사건은 사실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의 실현입니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두 인격의 연합입니다.
거룩하시고 지존하신 하나님과, 그분 앞에 절대로 나갈 수도 머물 수도 없는 추악하고 부패한 존재인 인간의 연합이기 때문입니다.
이 불가능한 연합을 가능토록 하는 기적의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제시합니다.

그 구체적인 길은 단순히 마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비록 몸은 살아있지만 나 자신이 십자가 위의 예수님과 함께 연합하여 이미 죽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앙고백으로서 예수님과 연합된 나의 죽음은 추상적이거나 교리적인 차원에 머무는 내용이 아닙니다.
또 세례 받을 때 일회적으로 일어난 뒤에 종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바울의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전15:31)는 고백처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다양한 사건들 앞에서 끊임없이 죽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사건과 상황에 대한 내 생각이 죽어야 합니다.

내 생각이 죽는 다는 것은 내 판단 일체와 내 소원과 비전 그리고 내 계획이 죽음을 뜻합니다. 사함 받은 죄인으로서 우리가 매일, 순간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의 죽음을 반복해서 확인하지 않는 한 우리의 생각이 움직이는 사이 우리의 판단과 소원과 계획에는 필연적으로 우리 존재의 뿌리 깊은 죄악의 기운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스며들어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죄악의 악취가 풍기는 내 생각 안에 있는 판단 소원 비전 계획을 내가 고집하는 한 거룩하신 영으로서 하나님은 구체적인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나와 함께 하실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렇게 십자가를 붙잡고 날마다 실행하는 내 생각 속의 판단과 소원과 계획 등의 죽음을 숫자 0으로 단순화하여 상징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매사에 내가 죽을 때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선악 판단의 주체가 되었을 때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이렇게 죄악 된 원죄적 주체성이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자발적으로 십자가에서 부인되고 죽어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삶은 비로소 에덴동산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삶에 관해 필요한 생각과 판단과 소원과 계획의 주체는 오직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숫자 1로 상징한 것입니다.

1이 열 번 모이면 10입니다. 억 번 모이면 일억입니다. 그래서 숫자는 사실 단지 1 하나뿐인 셈입니다. 1이 얼마나 모였는가에 따라 무한한 숫자들이 부수적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 한 분의 생각이면 전 우주도 창조되고 삼라만상도 질서를 따라 운행됩니다. 다양한 모든 삶의 분야에 관한 모든 열쇠가 하나님 한 분 안에 다 있습니다.

  • 숫자 0과 1의 이진법 원리.
  • 꺼짐(off)과 켜짐(on)의 원리.
  • 그리고 끊어짐(- -)과 이어짐(ㅡ)의 원리.

이 모든 것이 같은 의미로서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특징짓는 디지털 원리 아닙니까?
그러나 이 원리는 이미 창조의 때로부터 계시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가장 완전하게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이렇게 디지털 원리를 이미 이천 년 전에 선취한 제로원(0,1)원리의 전형이고 원천입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실제의 일상에서 함께 하시려면, 즉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시려면 우리는 십자가를 붙잡고 날마다 죽어 나 스스로의 생각 소원 판단 계획 등이 0 되어 꺼져야(off) 하나님의 생각 판단 소원 계획이 유일한 길로서 1 되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켜지는(on) 것입니다.

내 생각이 죽을 때(off) 하나님의 생각이 나타나기(on) 시작합니다.
내 판단이 죽을 때(off) 하나님의 판단이 드러나기(on) 시작합니다.
내 소원이 죽을 때(off) 하나님의 나를 향한 소원이 표현되기(on) 시작합니다.
내 계획이 죽을 때(off)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on) 시작합니다.

바로 이러한 기독교 신앙의 핵심내용을 사도바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0)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1)이라……” (갈2:20)

십자가는 내가 있는 지금 여기서 나의 모든 것을 죽게 하고, 꺼지게 하고, 끊어지게 하는 스위치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모든 것 즉 나를 향하신 그분의 사랑 생각 소원 계획 능력 등이 살고 켜지고 이어지게 하는 스위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