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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 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지구에 갇힌 소망들의 대환장 파티>의 줄거리 :
소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구에 갇힌 소망이 있고 지구를 떠난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 지구는 환경 파괴, 이상 기후, 전쟁, 지진, 국제 질서 파괴 등등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난장판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80억의 마음들이 지구 안에 갇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80억 인류가 지구 안에서 맞이할 미래에 자기들의 소망을 두기 때문입니다. 어떡하든지 내 마음이라도 지구를 빠져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지구에서 마음을 빼도록 도와야만 합니다. 지구 밖에 둔 소망이 개인의 구원이며 가정과 사회와 나라와 지구의 유일한 숨통입니다.
지구에 갇힌 소망들의 대환장 파티
(로마서 8:24~25)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오늘부터 25년 하반기의 말씀으로 드리는 오늘의 번제 방송을 재개합니다. 오늘은 하반기 방송을 재개하면서 앞으로의 방송과 나눔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하여 민수기가 아닌 다른 본문을 택했습니다. 로마서 8장 24~25절 말씀 중심으로 ‘지구에 갇힌 소망들의 대환장 파티’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대환장 파티란 말은 비속어가 아닙니다. 상황이 혼란스럽거나 극단적인 경우로 치닫는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한편, 우리는 소망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의 소망은 지구에 갇힌 소망이면 안 됩니다. 소망은 지구를 떠나야 하고 지구 밖에 두는 소망이어야만 합니다.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똑같이 지구에 갇힌 소망을 유지한다면 어디든지 대환장 파티인 난장판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집안도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지구에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난장판이 벌어지는 이유는 80억 인구가 똑같이 지구에 갇힌 소망을 하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을 바람, 혹은 바라는 내용’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소망이란 ‘미래에 있을 일에 지금 마음이 가 있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년 뒤에 20억을 벌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마음은 10년 뒤에 벌게 될 20억에 지금 가 있습니다. 이 상태가 바로 소망입니다. 미래에 있을 일에 마음이 지금 가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지금 가 있다는 점에서 소망은 미래의 일이 아닌 지금의 일입니다. 진짜 미래의 일이라면 내 마음은 상관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은 결국 마음으로 지금을 삽니다. 내 마음은 언제나 지금을 살고 있습니다. 다만 그 마음이 과거를 향할 수 있고 미래를 향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과거를 향하는 동안 과거의 경력, 과거의 자랑거리, 과거의 잘못한 일들에 마음이 붙어있고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과거를 사는 것입니다.
물론 과거에 마음을 붙인다고 해서 실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미래에 마음을 붙인다고 실제 미래로 가서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을 살 수 있을 뿐입니다. 지금 내가 가진 재산에 마음을 붙이고 있다면 현재를 사는 것이고, 언젠가 모을 재산에 마음을 붙이고 있다면 미래를 지금 사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은 마음으로 지금을 사는 존재입니다. 마음을 과거에 붙이느냐 현재에 붙이느냐 미래에 붙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마음을 지금 미래에 붙이는 상태가 소망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소망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요? 24절을 보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 얻음을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특이하게도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소망의 의미를 염두에 두자면 구원은 마음이 지금 미래에 가서 붙어있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과거에 붙어있으면 구원이 아니고 현재에 붙어있어도 구원이 아닙니다. 마음이 지금 미래에 가서 붙어있고, 미래에 가서 머물러 있는 상태가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표현에 담긴 의미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연합하여 세상에 대해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보좌 우편에 이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따라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되리라는 미래의 일이 일어나는 그곳으로 지금 마음이 가서 머무는 상태가 믿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예수님과 연합합니다.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따라 예수님께로 갑니다. 그곳은 미래에 내가 육체를 벗고 신령한 몸으로 갈아입고 삶이 진행되는 환경도 물질적인 환경에서 신령한 환경으로 바뀌는 곳입니다. 새로운 삶의 미래가 펼쳐질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라고 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10년 뒤에 20억을 벌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사람은 10년 뒤에 벌게 될 20억에 지금 마음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의 몸을 벗고 신령한 몸을 입고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살 일이 벌어질 그 천국에 마음이 가서 머무는 상태입니다. 마음이 미래에 가서 머물고 있기에 소망입니다. 똑같이 지금 마음이 미래를 향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우리 소망의 대상은 지구 밖에 있다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본문은 이처럼 지구 바깥에서 일어나는 소망이 구원을 얻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마음이 과거나 현재에 머물고 있다면 구원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다고 나름대로 확신을 가질 수는 있지만 실제로 구원을 얻은 상태는 아닙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가신 천국까지 마음이 따라가야 합니다. 그 천국에서 신령한 몸을 입고, 신령한 환경에 둘러싸여서,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를 모시며 살게 될 미래에 마음이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라는 말씀에 담긴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읽지 않은 19~23절을 보면 피조물의 탄식이 나오고 피조물의 속량과 하나님의 아들들의 속량이 언급되며,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과 함께 자유롭게 될 것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육체로 살면서 물질적 환경에 싸여있지만 이제 미래에는 신령한 몸으로 바뀌고, 환경도 물질로 이루어진 환경이 아니라 신령한 환경과 신령한 피조물들로 둘러싸인 상태에서 살게 되리라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는 지금 마음을 그 미래에 있을 일에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은 결과로 천국에 마음을 둘 때 일어나는 일이 1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25절의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라는 말씀과 상통하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지금 마음을 두는 미래에 일어날 삶은 천국에서 이루어질 그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이고 기쁨이기에 지금 내 몸이 처해있는 고난을 능히 이겨나갈 수 있게 해준다는 뜻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미래에 마음을 붙이고 있기에 미래에 일어날 기쁨으로부터 힘을 받아서 현재의 고난을 능히 이겨나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의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소망은 미래를 향하기 때문에 현재의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소망이 없는 상태입니다. 마음을 현재에 붙이는 것은 구원받은 자의 삶도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과거에 붙이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구원이 없는 상태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내 마음을 끌고 올라가신 하늘에서 살게 될 미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미래로부터 기쁨을 받게 됨으로써 현재 몸이 처해있는 고난도 이겨나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소망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은 아닙니다. 10년 뒤까지 20억을 벌겠다는 강력한 바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현재는 20억이 없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고 재정적 압박을 받기에 여러 가지 불편함과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10년 뒤에는 20억을 손에 쥐겠다는 미래에 붙어있기 때문에, 미래에 얻을 기쁨을 앞당겨서 느끼게 됩니다. 20억을 미래에 쥐게 될 때 만족과 기쁨이 현재의 어려움을 능히 이겨나갈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지구에 갇힌 소망조차도 이러한 기능을 갖고 있는데 하물며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서 발휘되는 소망이라면 어떨까요? 마음이 신령한 몸을 입고, 신령한 환경에 둘러싸여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영원히 살게 될 그 미래에 일어날 일에 붙어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당연히 미래의 신령한 몸을 입고 사는 삶의 만족과 기쁨으로부터 힘이 나옵니다. 현재 삶에 고난이 있을 수 있지만 미래에 마주할 그 일들에 대한 소망의 내용이 너무 굉장하고 엄청나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을 아랑곳하지 않게 됩니다.
사도들과 초대 교인들의 순교의 모습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현재의 고난을 아랑곳하지 않았는지 잘 드러납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돌에 맞아 죽었고,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도 바울은 톱에 켜져서 죽었다는 전승이 있으며, 사도 베드로 또한 참혹한 방식으로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들이 순교까지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미래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살게 되는 그 일을 너무나 크고 굉장한 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그러한 미래에 붙이자, 몸이 죽는 것조차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구에 갇힌 소망조차 현재의 어려움을 이기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소망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그 힘은 더욱 강해집니다. 다만 지구에 갇힌 소망들의 한계는 뻔합니다. 20절을 보면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허무한 데 굴복함이란 일시적으로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지구에 갇힌 소망은 결국 없어질 것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런데도 그 소망이 강렬하면 현재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마음을 두게 되면 지금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달라집니다. 우리는 지금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마음을 과거에 두면 과거에 두는 대로 생각과 말과 행동은 달라집니다. 지금 마음을 현재에 두면 현재에 두는 대로 생각과 말과 행동은 달라집니다. 지금 마음을 미래에 두면 미래에 두는 대로 생각과 말과 행동은 달라집니다. 결국 마음을 과거에 두느냐 현재에 두느냐 미래에 두느냐에 따라서 삶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미래에 소망을 두는 것이 구원을 얻은 사람의 상태입니다. 다만 세상 사람들은 지구에 갇힌 미래에 소망을 둡니다. 피조물은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들이기에 결국 소망대로 얻었다 하더라도 그 마음 자체가 허무함에 굴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것도 손에 남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모른 채 지금도 지구 안에 갇힌 상태에서 과거를 살거나, 현재를 살거나, 미래를 살아갑니다.
이번 여름 휴무 기간에도 지구 위에서는 늘 그렇듯 대환장 파티가 벌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난장판이 있다면 기후 변화입니다. 기후 변화에 의해 북극 냉기를 가두어 두는 제트기류가 느슨해졌다고 합니다. 북쪽에 갇혀 있어야 할 냉기가 내려오면서 북극의 빙하는 녹고 남쪽의 기후는 혼란스러워집니다. 이러한 유기적 연관성에서 해수의 온도가 높아지고 폭염과 폭우와 가뭄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국제 정세도 난장판이었던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하는 중에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캄보디아와 태국의 분쟁이 발생하고 인도와 중국의 국경 분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의해서 관세 전쟁이 발발하여 세계 경제가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일본과 중국은 영역 확장을 위하여 끊임없이 주변국들을 도발하고 있습니다. 사할린 북쪽의 캄차카반도에서 큰 지진도 발생했고, 태평양에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섬을 이루어 떠돌고 있는데 그 면적이 프랑스의 3배 크기에 달하는 160만㎢라고 합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미세 플라스틱을 어류가 섭취하고 우리는 다시 그 어류를 먹고 삽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극한 호우가 반복되며 엄청난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있는 강릉에는 수원지인 오봉댐의 저수량이 25% 아래로 떨어져서 제한 급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수도를 다 잠가놔서 해변에 놀러 온 사람들이 발에 묻은 모래와 몸을 씻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강릉 인구가 20만 명인데 하루에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20만이 넘습니다. 각종 대형 리조트와 호텔들이 들어서며 20만이 써도 부족한 물을 40만이 써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근본적 이유가 무엇일까요? 80억 인구가 거의 예외 없이 지구에 갇힌 소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지구 전체의 것을 다 몰아줘도 한 사람의 마음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 80억 개가 지구에 갇혀서 각자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휴무 기간을 지내면서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구를 다 가져도 사람의 마음은 채워질 줄을 모르는데, 그러한 사람 80억 명이 전부 지구에 있는 것들을 얻겠다고 복닥거리며 싸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복음을 알고 진리를 생활화하는 우리는 이러한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지구에서 단 하루를 살더라도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동안 우리가 지내온 과정을 돌아봅니다. 일주일에 세 번 ‘오늘의 번제’를 합니다. 주일 저녁에는 ‘십자가 온라인교회’를 통해 세 번의 오늘의 번제를 더 깊이 들이 들여다보면서 믿음의 성숙을 꾀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이제 밖으로 향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지구 위에서 만족을 얻겠다는 소망을 품은 80억 명의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대환장 파티에서, 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지구에서 빼내 예수님을 따라가 천국에서 신령할 몸을 입고 살 미래에 마음을 붙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구에서 마음을 빼내는 프로젝트가 필요합니다. 내 마음을 지구에서 빼내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갈 뿐만 아니라 이제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주님이 보여주신 미래에 마음을 두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마음을 지구 바깥으로 빼내서 천국으로 옮겨가는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나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나는 아직 소망의 힘으로 현재의 고난을 능히 이겨나갈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미래의 삶이 펼쳐질 천국에 가서 머물고 있지도 않다. 이 세상 사람이 20억을 벌겠다고 결심했을 때 마음이 가서 붙어있는 것만큼 강렬하게 마음이 하늘에 가서 붙어있지 못하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지구 바깥으로 나가서 소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이 이 세상에 붙어있을 때마다 ‘이러면 안 된다. 내 마음은 지금 예수님을 따라 천국에 가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 신령한 몸을 입고 아버지 모시고 살 천국에 마음이 머물러 있어야 한다. 천국이 나의 소망이 되어서 지금 마음이 천국에 가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면 이 사실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양심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구에서 마음 빼내기 프로젝트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지구에서 마음이 빠져나가야 하고, 지구에 갇힌 소망이 아니라 지구 바깥의 천국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따라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 지구로부터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이 양심이 된다면 이 세상을 향해 마음을 붙이지 못합니다. 지구에 갇혀 있는 상태를 편하게 여기지 못하는 마음 상태가 됩니다. 반대로 이러한 양심이 없다면 마음 놓고 지구에 마음을 붙이고 지구에 갇힌 소망을 갖고 살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를 비교해 보자면 적어도 마음이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고 하늘의 소망이 굳건하지 못함을 괴로워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훨씬 복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구 안에 갇힌 소망에 마음을 푹푹 담그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복됩니다.
아직은 하늘에 둔 나의 소망이 온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돈 20억을 벌겠다는 사람의 소망처럼 절실하지 않습니다. 신령한 몸을 입고 하늘에 올라가서 살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마음 붙이기가 약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래야만 한다는 양심이 있다면 말씀을 전해서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지구 바깥으로 빠져나가 천국을 향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80억 인구의 마음은 지구에 갇혀 있으면 안 됩니다. 지구를 다 가져도 한 사람의 마음조차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지구 안에서 80억 인구가 복닥거리며 소망을 찾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대로 대환장 파티입니다.
휴무 기간에 십자가 복음 방송의 유튜브 채널에 ‘7분 설교’라는 제목으로 두 편의 설교가 올라온 것을 보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오늘의 번제 시즌1에서 신약성경 마태복음부터 설교의 핵심 개념과 핵심 통찰을 모아서 7분 정도로 요약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화요일과 목요일에 ‘7분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시도를 해보는 이유는 이 시대 사람들의 습성에 맞추어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복음의 맛을 알기 때문에 주일 저녁에 1시간 반이 넘는 십자가 온라인교회의 나눔도 참여하고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매체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긴 설교가 꺼려지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천국을 미래로 생각하여, 지금 예수님을 따라 마음을 천국에 보내는 이 소망의 언어를 그들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 사람들의 습성에 맞게 한 편 한 편의 설교를 7분으로 줄여서 다시 재생해 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의도는 여러분께도 적용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내가 온전한 소망의 사람이 되지 못하고, 아직도 소망이 양심의 단계에 있어서 세상에 마음을 두는 나를 괴로워하는 단계일 수 있습니다. 그 양심의 단계가 확고하기만 하다면 우리는 지구에서 마음 빼내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하나님께 청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청함을 받았다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유튜브에 많은 쇼츠 영상이 올라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7분 설교’와 관련된 쇼츠 영상도 업로드 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십자가 복음 방송의 설교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있으시다면, 쇼츠 기능을 활용하여 영상 클립을 만들어서 공유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십자가 복음의 언어, 십자가 생활화의 언어를 널리 퍼트려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십자가 복음 방송에 전해지는 말씀은 소망의 언어이자, 십자가 복음의 언어이고, 십자가 생활화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별히 내게 맞는 부분이 있고, 인상적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앞뒤 맥락이 없더라도 60초 쇼츠로 만들어서 소망의 언어, 복음의 언어를 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7분 짜리 설교 하나를 만드는데, 십자가 온라인교회 말씀을 전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갑니다. 재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존의 설교의 개념과 통찰을 7분이라는 시간에 담아 재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7분짜리 한편의 설교를 만들기 위해 몇 번의 수정을 하고 있음에도, 기존 설교에 담긴 개념과 통찰을 다 담을 수조차 없을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해보니 제 능력으로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7분 방송을 하기 위해서는 십자가 온라인교회 모임을 계속 이어가기가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십자가 온라인교회 모임 대신에 화요일과 목요일에 7분 설교를 방송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취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십자가 복음의 언어,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 마음을 하늘로 보내는 소망의 언어를 파편으로라도 만들어서 어떻게 하든지 퍼트리고자 하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듣든 듣지 않든,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십자가 복음의 언어를 세상에 퍼뜨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80억의 마음이 지구에 갇힌 상태에서 복닥거리며 대환장 파티를 만들어 내는 상황을 묵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이 복음의 언어, 소망의 언어, 구원의 언어를 자꾸 퍼트리는 일에 참여하여 열심을 낼 때 진정으로 우리 마음에도 지구 바깥에 있는 천국에 마음을 두는 소망의 구원이 점점 확고해질 것입니다. 아무쪼록 새롭게 허락하신 하반기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 담긴 취지를 따르며, 또 한 번 새로운 길로 접어들어 이 시대 사람들의 습성에 맞추어서 복음과 소망과 구원의 언어를 온 세상에 퍼트려 나가는데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참고로 민수기 설교는 돌아오는 수요일부터 진행될 것이고, 다음 주 화요일부터 동서남북 모임도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이 세상, 아버지의 주권적 계획만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길로 접어듭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 안에 있는 것으로 믿고 발걸음을 내딛으오니, 걸음걸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장갑 삼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지구에 갇힌 소망으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이 답답함 속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숨통이 되게 하시고, 하늘로 이어지는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들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