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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 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믿음은 예수님 업무까지 따라 하기>의 줄거리 :
예수님 따르기가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따름이란 그리스도로서 이루신 연쇄 과정을 통해 세상 탈출 천국 진입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따름이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님이 행하시는 업무를 따라서 하기까지를 다 포함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행하기’라고 말하면 우리는 공생애 때의 예수님을 따라 한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천국 보좌 우편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따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세상 탈출 천국 진입을 하였으면, 천국에서도 예수님을 따라 업무를 행하여야 합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따라가서 예수님을 따라 하기입니다.
믿음은 예수님 업무까지 따라 하기
(민수기 3:1~4:49)
5.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6. 레위 지파는 나아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7.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8.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성막에서 시무할지니
9. 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맡기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론에게 온전히 맡겨진 자들이니라
10.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무를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13.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우리가 읽은 13절 이후에는 레위 지파를 게르손, 고핫, 므라리의 세 종족으로 구분하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들 중 1개월 이상 된 남자의 수를 계수하게 하십니다. 이어지는 4장에서는 이 세 종족이 각각 회막에서 해야 할 업무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게르손 자손은 회막을 덮는 네 겹의 앙장과 회막의 포장을 관리하고 운반하고 세우는 업무를 합니다. 고핫 자손은 지성소와 성소 안에 있는 기구와 번제단과 물두멍 같은 기구들을 옮기는 업무를 하고,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뼈대가 되는 널빤지와 전체 뜰을 지지하는 수십 개의 기둥들을 옮기는 업무를 합니다. 이러한 내용의 3장과 4장은 맥락상 따로 떼어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두 장을 한 본문으로 엮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본문 중심으로 ‘믿음은 예수님 업무까지 따라 하기’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까지 이르신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따라 세상을 탈출하여 천국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만 본문에 의하면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예수님을 따라 해야 합니다. 믿음은 예수님 따라가기와 예수님 따라 하기를 포함합니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될 때 믿음은 온전해진다는 것이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따르는 것을 예수님이 공생애 때 보이신 모범적 행동을 따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면 지금 예수님이 하늘에서 하시는 일을 따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따라 하기는 예수님과 내가 분리된 상태에서 예수님을 모범으로 삼아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따라 하기는 예수님과 연합한 상태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서 “항상 기뻐하라 / 쉬지 말고 기도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접할 때 ‘내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들어갔으니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 죽은 자라는 고백을 유지함으로써 예수님과 연합하고 예수님 안에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머무는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늘에서 하나님과 마주하시며 하나님의 좋으심으로 기뻐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업무로써 본문에는 시무(視務)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천국에서 하나님을 마주하고 계시면서 하나님의 좋으심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들어가 예수님과 연합한 상태가 되었으면 예수님을 따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마주함으로써 항상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마주하시면서 하나님의 있음에 대해 존재감으로 충만하십니다. 이 또한 우리에게서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는 대상으로부터 얼굴을 돌리기 힘듭니다. 존재감을 강하게 느끼는 대상을 마주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인격체이기 때문에 마주함은 대화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마주함으로써 항상 대화하는 것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담긴 의미입니다. 이것이 천국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업무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업무를 우리가 따라 하고 참여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오셨다가 하늘로 가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자 되심이 24시간 작동하고 계심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주권의 행사에 대해 감사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업무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 쉬지 말고 기도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게 된 우리가 독단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마주 보고 계시면서 하시는 업무를 따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업무로써 아버지 때문에 항상 기뻐하시고, 아버지와 쉬지 않고 대화하시고, 아버지로 인해 범사에 감사하십니다. 이것을 따라 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것은 따라가기와 따라 하기를 다 포함합니다.
본문 3~4장에서는 레위인에 관한 내용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레위인에 관한 내용과 예수님을 따라가기와 따라 하기로 이루어지는 믿음에는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레위인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길 수 있습니다. 앞서 우리는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최측근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의 최측근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곧 내 마음이 예수님의 몸을 입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내 마음과 하나님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있지 않은 최측근의 상태입니다. 이처럼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에 대한 언급은 나 자신을 향한 메시지를 담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레위인에 대한 말씀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레위인의 업무는 겉으로 보기에는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에 비해 직무의 중요도가 낮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신분의 차이를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레위인의 업무가 곧 예수님의 업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부분에서 레위인의 업무와 예수님의 업무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2절을 보면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이 하나님의 것임을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레위인 이외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선민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의 백성이라고 하신 횟수를 세려면 끝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레위인을 하나님의 것이라 강조하신 것일까요? 이것은 레위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둔 회막에서 평생을 머물며 업무를 수행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이어지는 13절을 보면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레위인이 회막에서 일하면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장자가 다 하나님의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각 가정에는 장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 장자를 다 하나님의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각 가정의 장자가 다 회막에 모여서 평생 회막과 관련된 업무만 해야 합니다. 여기에 레위인의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두 지파에 속한 모든 장자를 회막에 머무르게 하시는 대신 레위인을 대속하여 가지시겠다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을 보면 레위인 중에서 1개월 이상 된 모든 남자의 숫자를 계수하게 하십니다. 1개월 된 아기라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각 가정의 장자를 대신하는 역할을 합니다. 39절과 43절을 보면 실제로 계수한 이스라엘 전체 장자의 숫자가 22,273명이고, 1개월 이상 된 레위인 남자는 22,000명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레위인의 숫자보다 이스라엘의 장자가 273명 많은데, 이것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속전을 내게 하심으로써 대속의 의미를 확인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가정은 ‘우리 집안의 장자가 우리와 함께 머물며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장자를 대신하여 레위 지파 한 사람이 평생 회막에서 머물며 봉사하고 있다. 레위인 덕분에 장자가 집에 머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지금도 회막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레위인과 함께 해야 한다.’라고 여길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을 통해 대속의 방법을 취하신 것입니다. 단지 레위 지파를 따로 떼어서 일을 맡기신 것이라면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는 회막과 관련성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회막 업무를 그저 레위인의 일로 취급하여 나와는 무관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레위인과 이스라엘의 장자를 계수함을 통해 대속의 의미가 있음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가정은 장자를 볼 때마다 ‘우리 집안의 장자는 본래 하나님의 것으로써 회막에 있어야 할 사람이다. 그러나 레위 지파 한 사람이 장자를 대신하여 회막 업무에 봉사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회막에 봉사하는 레위인과 그 업무의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마음은 레위인의 회막 업무에 동참해야 한다.’라고 생각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동서남북 진영 짜기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막을 중심으로 세 지파씩 동서남북으로 진영을 짜게 하셨습니다. 모든 지파의 사람들이 천막의 문을 열고 나올 때는 정중앙의 회막을 향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선민 각자가 회막을 보며 마음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의식하여 살아 움직이는 회막이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다만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진정으로 인간 회막이 되기 위해서는 회막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의 의미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회막 일을 담당하는 레위인의 업무에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레위인은 진영이 전진할 때마다 회막을 해체하고 조립했으며, 각종 기구를 보존하고 배치했습니다. 선민들은 이러한 레위인의 업무를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길 수 없었습니다. 집안의 장자를 볼 때마다 레위인으로 대속이 이루어졌음을 떠올리며 마음으로 레위인의 업무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다시 13절을 보면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의 대속과 연관하여 출애굽 때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을 말씀하십니다. 죄인으로서 애굽 사람의 장자가 죽어야 했다면 이스라엘도 죄인인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대속의 의미로 각 가정에서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지방과 문설주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이로부터 이스라엘은 장자 죽음의 재앙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특별한 자격이 있어서 장자 죽음의 재앙을 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격이 없지만 어린양의 죽음을 보고 재앙은 뛰어넘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자를 살리신 것이기에 하나님의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유월절 어린양은 이스라엘의 장자 수대로 죽었습니다. 이러한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님을 예표 함과 동시에 장자이자 레위인의 상징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예수님과 유월절 어린양과 레위인이 동일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의 업무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레위인이 회막에서 업무를 수행할 때 이스라엘의 모든 집안은 그것을 자기 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레위인은 모든 집안의 장자를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레위인이 회막에서의 업무를 자신과 무관하게 여길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대속의 장치를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전체가 마음으로 레위인의 회막 업무에 동참하게 만드십니다. 레위 지파 한 사람, 한 사람은 각 가정의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으로 장자가 살았듯이, 레위인이 장자를 대신하여 회막 업무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결국 3~4장은 레위인을 통해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마음으로 레위인의 회막 업무에 동참해야 했듯이, 우리가 유월절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의 업무에 마음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3~4장은 독특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업무 개념이 포함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레위인의 회막 업무는 곧 예수님의 업무를 가리킵니다. 회막 업무는 결국 하나님을 위한 일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요한계시록 5장을 보면 보좌 앞에 있는 어린양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15장을 보면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증거란 언약의 돌판이라고 불리는 십계명 돌판을 가리킵니다. 이 십계명 돌판이 안치된 언약궤는 증거의 장막인 회막에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회막과 보좌 앞의 유월절 어린양이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본문의 내용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민수기 3~4장에 의하면 예수님을 믿음이란 예수님의 업무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십자가에서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과 함께 죽어서 세상을 떠나 하늘로 진입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최측근인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이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하늘로 끌고 올라가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전하고 듣는 이 시간에도 천국의 증거 장막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고 계십니다. 땅의 증거 장막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신 곳이라면, 하늘의 증거 장막은 하나님 자신을 모신 곳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붙잡는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레위인으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업무를 수행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장자를 볼 때마다 마음으로 레위인의 업무에 참여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업무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업무에서 가장 기본적인 일은 하나님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온 천하는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천하가 창조되기 전부터 예수님께서는 인격체로서 하나님을 마주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근본 업무입니다. 이것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고 예수님은 그 생각을 받아들이시는 말씀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또한 본문을 염두에 두자면 예수님께서 수행하시는 일은 레위인의 업무로 상징될 수 있습니다. 업무라는 표현을 통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임을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기본적 업무는 하나님과 직접 마주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에는 무엇도 끼어있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바탕에서 예수님께서는 다른 업무들을 수행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마주하시며 만족감으로 기뻐하시기를 업무로 수행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이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면 예수님의 업무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장자를 볼 때마다 레위인을 생각함을 통해 레위인의 업무에 참여하듯이, 예수님이 아버지의 좋으심을 상대하여 업무로 받아들이고 계심에 우리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좋으심으로 만족감을 누리고 기쁨을 충만히 갖기를 업무로 수행하십니다. 업무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업무에 참여한다면 반드시 기쁨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 하나님의 좋으심은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만 믿음은 하나님께만 적용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돈이 좋다고 믿습니다. 평생을 거쳐 돈의 좋음을 믿게 된 것입니다. 돈 뿐만이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 세뇌되듯 건강이 좋다, 형통이 좋다, 승진이 좋다, 합격이 좋다, 순조로움이 좋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이로부터 세상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좋음도 믿음으로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써 예수님의 업무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마주하시며 항상 하나님의 좋으심으로 인해 기쁨이 충만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업무로 삼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을 따라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존재감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사람을 향하고 그의 말을 듣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마주하시며 하나님의 존재감을 제일 크게 느끼시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생각을 다 받아들이고 계십니다. 이것이 쉬지 않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쉬지 않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따로 생각하실 수 있는 인격적 주체이시지만 당신의 생각의 능력을 중지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것을 쉬지 않고 받아들이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업무로 수행하시는 쉬지 않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몸을 입고 세상을 탈출하여 하늘로 올라갔다면 예수님의 업무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집안의 장자를 대신하는 레위인을 생각하면서 마음으로 회막 업무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유월절 어린양이시며 레위인이신 예수님을 따라 올라갔다면 쉬지 않고 아버지의 생각을 받아들이시는 예수님의 업무 수행에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갔으면 예수님을 따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업무입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키우는 것이 업무가 아니고, 가정 살림을 돌보는 것이 업무가 아닙니다. 직장 생활을 해서 월급을 받는 것이 업무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 천국으로 갔으면, 천국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마주하여 수행하시는 업무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직업이고 우리의 업무입니다. 세상에서 몸이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업무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하여 행하시는 업무입니다. 자녀를 관계하는 것은 하나님의 업무입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하나님의 업무입니다. 그리고 나는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을 따라 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마음이 예수님을 따라서 직장이라는 세상을 탈출했다면 이제 예수님의 업무에 참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의도에서 “항상 기뻐하라 / 쉬지 말고 기도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요구하시는 업무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계십니다. 그러나 목석처럼 가만히 보고만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아버지의 좋으심에 반응하시고, 아버지의 있음에 반응하시고, 아버지의 주권자 되심에 반응하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주권자 되심에 대한 반응으로써 세상에 대해 전능자이자 주권자 되심을 사랑으로 행사하시는 아버지를 향해 계속 감사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에 오셨다가 하늘로 가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이끄시는 예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세상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전능하심과 주권자 되심에 감사할 수밖에 없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지금도 업무를 수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좋으심으로 인해서 만족과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심을 업무로 수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있음에 대한 존재감을 느끼시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생각을 전부 받아들이시는 일을 업무로 수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24시간 작동하고 계신 전능하심과 주권자 되심으로 발휘하시는 사랑에 대해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현재 진행 중인 예수님의 업무에 참여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업무를 따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에 대해서 ‘지금 예수님께서는 업무를 수행하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좋으심에 대해 충만한 기쁨을 유지하는 업무를 하고 계십니다. 저도 예수님을 따라 항상 기뻐함을 업무로 삼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업무에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생각을 받아들이시는 쉬지 않는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나 개인의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과 문제와 상황을 대할 때 하나님은 이미 생각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그 생각을 받아들이시고 계신 것처럼 나도 예수님의 업무에 참여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는 내 몸을 통해 당신의 업무를 수행해 가십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성령이 임하심으로 내 몸을 장갑 삼으셔서 하나님의 업무는 진행되어 갑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대해 전능하심과 주권자 되심을 사랑으로 행사하시는 아버지를 향해 계속 감사하고 계십니다. 나도 예수님의 업무에 참여하여 감사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일은 하나님의 업무입니다. 나의 업무는 예수님의 업무에 참여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업무를 따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민수기 3~4장은 레위인에 관한 말씀을 통해 예수님 믿음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십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고, 예수님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레위인의 회막 업무로 비유되는 하나님을 향한 천국 업무를 지금도 수행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레위인으로 비유되시는 이유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비유되시는 것과 같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장자를 대신하여 죽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레위인이 장자를 대속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이시고, 동시에 레위인이십니다. 모든 선민은 마음으로 레위인의 업무에 참여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마음으로 예수님의 업무에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하늘의 증거 장막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향한 업무를 수행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그 업무에 참여해야 합니다.
땅의 증거 장막은 하나님의 이름을 둔 곳입니다. 천국의 증거 장막은 실제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늘의 증거 장막에서 하나님을 향한 업무를 수행하고 계십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업무에 항상, 쉬지 않고, 범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내 몸과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기능을 장갑으로 끼시고 당신의 업무를 수행하실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령께서 모세를 감동하심을 통해 민수기 3~4장에서 믿음의 업무라는 독특한 개념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이 오셔서 뼛속까지 그 의미가 새겨지게 하시며,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따라가기를 넘어서 지금 천국 증거 장막에서 행하시는 예수님의 업무를 따라 하기로 발전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