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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0)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0)’ 갈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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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신을 가질 자 숫자, 신이 가질 자 숫자_태승철

by 태승철 · 25-07-07 07:12 · 713

 

www.everyday01.com - 십자가(0,1)복음방송

 

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 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신을 가질 자 숫자, 신이 가질 자 숫자>의 줄거리 :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 중 20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남자의 숫자를 계수하면서 시작합니다. 성막이 완성되고 나서 불과 한 달이 지난 시점입니다. 성막 제작 때 이미 속전을 낼 20세 이상 남자의 숫자를 계수하였습니다. 두 번의 계수 결과가 같습니다. 왜 같은 수의 남자를 계수하는 일을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두 번 반복하였을까요? 이 계수 사건은 이제 이스라엘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암시합니다. 본격적인 가나안 행군을 위한 준비 단계로 돌입한 것입니다. 이런 국면 전환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앞에서 나온 출애굽기의 계수가 하나님을 가질 자들의 숫자였다면, 민수기의 계수는 하나님이 가질 자들의 숫자였습니다.

 

 

신을 가질 자 숫자, 신이 가질 자 숫자

 

(민수기 1:1~54)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4.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

 

44. 이 계수함을 받은 자는 모세와 아론과 각기 이스라엘 조상의 가문을 대표한 열두 지휘관이 계수하였더라

45.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 조상의 가문을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자손이 다 계수되었으니

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20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남자를 계수하게 하십니다. 1~4절까지는 계수하는 방법과 각 지파의 우두머리를 뽑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 우리가 읽지 않은 5~43절까지는 실제로 뽑힌 각 지파의 우두머리의 이름이 나열됩니다. 그리고 44~46절에는 계수 결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레위 지파는 성막을 관리하고 봉사하는 일을 했기에 계수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에 대한 말씀이 47~54절까지 이어집니다. 이러한 말씀 중심으로 신을 가질 자 숫자, 신이 가질 자 숫자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신이란 사실 쓰고 싶지 않은 단어입니다. 제목이 너무 길어서 어쩔 수 없이 신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만 본래의 의미대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을 가질 자들의 숫자, 하나님이 가지실 자들의 숫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民數記)는 백성의 숫자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백성의 숫자를 계수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래 민수기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에서 숫자들이라는 뜻의 아리트모이(Ἀριθμοί)입니다. 그렇기에 영어 성경에서도 민수기를 똑같이 Numbers로 부릅니다. 민수기라는 한국어 번역도 이로부터 기인합니다. 다만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민수기는 광야에서라는 뜻을 가진 베미드바르(במדבר)입니다. 민수기는 1장과 26장에서 인구를 계수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인구 계수는 38년 간의 광야 생활과 연관됩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본문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본문은 첫 번째 부분입니다. 출애굽 1세대는 시내산에서 11개월 정도 머물렀습니다. 그러면서 계명을 받고 성막을 짓고 5대 제사와 관련된 규례도 받았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레위기에서는 5대 제사의 취지가 잘 이루어지는 거룩한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수기의 첫 번째 부분은 시내산에서의 11개월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가나안을 향한 행군 준비를 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가나안 땅은 그냥 들어가면 되는 곳이 아닙니다. 죽음의 땅인 광야를 지나야 하고, 이스라엘과 비교할 때 우위에 있는 문명들과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은 이미 철기 문명을 발전시키고 국가 체제를 완비하였고, 이스라엘은 이들과 싸워 이겨야만 합니다. 이 과정을 뚫고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을 향한 행군 준비를 시키십니다. 이때 첫 번째로 지시하신 일이 20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남자의 수를 계수하고, 각 지파별로 우두머리를 뽑아 조직화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주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통과하는 행군과 가나안 원주민들과의 전쟁이 효율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250만 이스라엘을 조직화하십니다. 이것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준비 작업입니다. 물론 이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해나가시는 일들이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는 250만 이스라엘을 조직화하시며 20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남자의 수를 계수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조금 의아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8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성막 건축을 위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이때 건축을 위한 속전을 20세 이상 남자들에게 할당하여 반 세겔씩 내게 하셨습니다. 26절을 보면 계수된 자가 이십 세 이상으로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인즉 성소의 세겔로 각 사람에게 은 한 베가 곧 반 세겔씩이라라고 했습니다. 이로부터 이미 20세 이상 남자가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으로 계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다시 계수한 결과도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입니다. 본문의 시점은 성막이 완성되고 1개월이 지난 때입니다. 1개월 사이에 레위기가 주어지고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성막과 연관되어 속전을 냈고 성막이 완성된 지 1개월이 된 시점에서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20세 이상 남자의 숫자를 다시 계수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무척 불필요한 일처럼 여겨집니다. 결과적으로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라는 똑같은 숫자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민수기 146절을 보면 각 지파의 우두머리가 처음부터 다시 인원을 센 것은 아니라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성막 제작과 관련하여 속전을 낼 자들을 계수한 것을 토대로 하여 지파별 집안별로 보고하게 하여 정리하였을 것입니다. 그 사이가 1개월 정도이기에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 계수를 명하신 것에는 성막 제작과는 구분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이름을 둔 곳입니다. 이러한 성막 제작을 위한 속전을 낸다는 것에는 그 이름이 나에게 주시는 이름임을 자각하고 의식한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백성은 하나님이 나에게 당신의 이름을 주시려고 성막을 지으신다.’라는 것을 의식할 수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성막에 계신 하나님의 이름을 붙잡고 그 이름이 가리키는 실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나의 보물로 가지라는 것입니다. 반 세겔은 작은 돈이었지만 이러한 의미를 담고 속전을 내게 하셨습니다.

한편, 민수기에서 20세 이상으로 남자를 계수하게 하신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광야를 지나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도하실 일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하심에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손에 쥐시고 전쟁을 치를 도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게 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계수는 똑같은 숫자를 세는 과정이지만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선민들이 성막과 연관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붙잡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속전을 내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내 것으로 붙잡을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게 하신 것입니다. 한편, 민수기에서는 국면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전쟁에 나갈 사람들을 계수하게 하십니다. 이는 곧 하나님이 가지시고 당신의 계획대로 이 땅에서 뜻을 펼쳐나가실 때 쓰시기 위한 도구들의 숫자를 세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질 자들의 숫자, 하나님이 가지실 자들의 숫자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이와 같습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하나님을 가질 자들의 숫자, 하나님이 가지실 자들의 숫자가 완전히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계수와 민수기의 계수에는 1개월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사이에 죽는 사람도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수해 보니 똑같은 숫자가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의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가질 자들의 숫자, 하나님이 가지실 자들의 숫자를 똑같이 맞추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당신의 뜻을 펼치시기 위하여 가지시는 사람의 숫자는 언제나 당신을 갖는 자들의 숫자와 같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을 갖는 자만을 가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갖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이 가지시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에게 하나님을 갖게 하기 위하여 당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또한 출애굽의 열 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내리시는 기적을 통해 당신의 전능하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성막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제공된 하나님의 이름을 갖는 자들의 숫자를 계수하니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그대로 가지시고 이 땅에서 전쟁을 펼쳐나가시겠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본문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출애굽은 출세상을 예표합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단순한 죽음으로 본 것이 아니라 별세라고 했습니다. 별세는 엑소도스(ἔξοδος)입니다. 출애굽을 세상에 대입하자면 출세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621절에서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선민이 어떠한 자들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을 하듯 세상을 탈출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보물로 여기며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마음을 두는 자들이 선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론으로는 하나님이 보물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데 마음에서 하나님을 보물로 여기지 못합니다. 실제로 내 마음에서 보물로 여겨지는 것들은 세상 것들입니다. 죄의 체질이 나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빗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보물입니다. 그런데 죄의 체질은 보물이 아닌 세상 것들을 보물로 삼아 마음을 두게 합니다. 이러한 죄의 체질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을 출애굽 시키신 이후에 시내산에서 11개월을 머물게 하시며 십계명을 주시고 성막을 제작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율법과 계명과 5대 제사의 규례도 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한 가지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입니다.

계명과 율법과 규례도 마음이 하나님을 가진 때와 그렇지 못한 때를 명확하게 구분하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가졌다면 그 증거로 십계명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과 규례들은 지켜지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가지지 못했다면 어떠한 명령과 지시도 지켜지지 않습니다. 결국 계명과 율법과 규례는 내가 하나님을 가졌는지 못 가졌는지를 알게 해주는 기준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죄의 체질 때문입니다. 이 죄와의 싸움과 다스림을 위해 5대 제사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5대 제사에 담긴 취지를 깨닫고 생활화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이를 수 있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내 것으로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삼각관계를 통해 이해했습니다. 내 마음과 몸을 통해 만나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언제나 삼각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예 없다고 생각하기에 삼각관계가 무시됩니다. 행여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삼각관계에서 하나님의 있음과 좋음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세상에 몰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과거 우리 삶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삼각관계에서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십계명을 받고, 성막을 제작하고, 5대 제사의 규례를 받고, 레위기에 기록된 모든 내용을 받을 때까지의 기간은 삼각관계에서 세상을 등지고 탈출하여 하나님께 몰입하고 하나님을 가지기 위한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민수기에서는 등지고 탈출했던 세상에 대해 이제는 하나님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과 함께 다시 세상을 향하여 관계하는 국면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하나님이 나를 가지시는 것으로써 나타납니다. 마음이 하늘에 올라가도 이 땅에는 몸과 생각과 의지와 감정이라는 정신의 기능이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나를 이루는 요소를 하나님이 가지시고 세상과 관계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지기 위하여 등지고 떠났던 세상에 대해 하나님이 나를 도구 삼아 관계하시고, 대처하시면서 뜻을 펼쳐나가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하여 2개월 만에 시내산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11개월을 머물며 하나님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갑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인 이유는 우리의 죄의 체질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이 유일한 있음이고 유일한 좋음이라는 사실을 이론으로는 압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마음은 자꾸 세상 것의 존재감을 느끼고, 세상 것을 보물로 여기고자 합니다. 자꾸 세상 것을 가지려 하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빗나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의 체질을 다스리기 위해 시내산에서 여러 가지 필요한 장치와 조건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선민들은 하나님을 가질 수 있는 자들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이제 자발성과 능동성과 적극성을 갖고 하나님을 가지고자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에서 이제부터 가나안 땅을 향한 진격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는 곧 땅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갖는 선민들을 가지시고 일하십니다. 이것이 민수기 1장의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삼각관계에서 출애굽을 하듯이 출세상을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이것이 시내산에서 11개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존재감만을 느끼고 하나님의 좋음으로 만족해집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나를 가지시고 세상을 향하여 당신의 뜻을 펼쳐나가시기 시작합니다.

 

한편 47~54절에는 레위 지파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인은 따로 계수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성막을 유일한 대상으로 삼고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동 중에 성막을 설치하고 해체했으며, 성막과 관련된 모든 기물들을 관리하고 보존했습니다. 이처럼 레위인은 선민이 하나님을 가지는 일을 위해 평생을 봉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선민이 하나님을 가질 때 하나님은 선민을 가지시고 세상에서 당신의 뜻을 펼쳐나가십니다. 그렇기에 선민에게는 하나님을 갖는 것이 과제입니다. 하나님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보존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가리키는 하늘로 마음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레위인은 이것을 돕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이것은 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제가 태어날 때부터 목회자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를 따라 기도원을 다니고 새벽기도에 참석했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성경과 경전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평생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이르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저를 포함하여 이 땅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가질 수 있는가를 전하는 것에 평생을 종사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복음을 함께 나누는 것은 하나님을 가질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갖는 자들을 가지심으로써 당신의 뜻을 세상에서 펼쳐나가십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만 민수기는 순조롭고 논리적으로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민수기 중간 부분을 보면 큰 탈선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는데, 이들 중 열 명은 하나님을 가진 자라면 할 수 없는 보고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하나님을 가진 자로서의 보고를 합니다. 250만 이스라엘은 열 명의 정탐꾼의 이야기를 듣고 절망하고 분노했습니다. 자기들을 가나안 땅에서 죽이려고 애굽에서 불러냈느냐며 여호수아와 갈렙은 물론이고 모세와 아론까지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행태에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이스라엘은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38년간 광야를 배회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머물 때까지가 약 1년이었고, 광야에서 지낸 기간이 38년이었으며, 요단 동쪽을 정복하고 요단 서편 가나안으로 진격해 들어가기까지 1년이 걸렸습니다. 이 기간이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40년입니다. 민수기는 가데스 바네아 사건으로부터 38년 간의 광야 생활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수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가질 수 있도록 선택하셨고 당신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이 가리키는 실제 하나님을 출애굽 사건을 통해 성경의 각종 말씀과 예수님을 통해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을 마주했을 때 전혀 하나님을 가지지 않은 자로서의 반응을 세상에 드러낸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어떻게 처리하시는가를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38년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본문에서는 계수된 인원을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두 명을 제외한 모든 20세 이상의 남자가 죽어야만 했습니다. 20세 이상 남자가 다 죽었다는 것은 결국 20세 이상의 여자도 다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20살 이하였던 출애굽 2세대들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은 38년 동안 출애굽 1세대가 다 죽고 완전히 물갈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으로부터 민수기 전체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렇게 많은 조건을 허락하셨고 가능성의 길을 열어두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심을 통해 구약의 모든 계명과 율법과 규례의 의미를 다 이루셨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가지지 못한다면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졌는지 아닌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지려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세상을 탈출해야만 합니다. 세상을 탈출하고 하나님을 가지면 하나님은 나를 가지십니다. 그리고 내가 등진 세상을 향해 필요한 대로 당신의 뜻을 펼쳐가십니다. 그런데 내가 세상을 대할 때 마치 열 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원주민들을 보았을 때와 같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세상을 향해 스스로 반응하는 태도가 나타난다면 민수기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들려야만 합니다.

 

본문 말씀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는 천국을 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천국은 주님이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과 더불어 삼위일체로 기쁨을 누리며 계신 곳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천국으로부터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어 가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이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갖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가지시고 이들을 통해 주체적이고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뜻을 펼쳐나가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동시에 이루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가지기 위해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마음이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가진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가지십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주권적인 뜻과 계획을 펼쳐나가실 때 땅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물론 마음이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을 갖지 않고도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사회 개혁과 종교 개혁을 부르짖으며 스스로 주체가 되어 활동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보며 마음의 안쓰러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산다고 자부할지라도 이들은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광야에서 죽는 출애굽 1세대에 포함된 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나를 가지시고 이루어 가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가지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질 때 하나님은 나를 가지십니다. 나는 하나님을 가지는 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민수기는 두 가지 전쟁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첫 번째는 천국 전쟁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향하려는 죄의 체질과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을 이겨야 천국에 계신 하나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 전쟁입니다. 이 땅은 하나님을 가지지 않은 자들이 공중 권세 잡은 마귀에 의해서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이끌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창조적이고 주권적인 뜻이 펼쳐지려면 전쟁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영토를 넓히기 위한 전쟁은 우리가 싸울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는 천국 전쟁만 이기면 됩니다. 천국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가지기 위하여 내 속에 있는 죄의 체질과의 전쟁에서 이기면 됩니다. 천국 전쟁에서 나의 죄의 체질을 이기고 아버지를 가지면, 하나님 나라 전쟁은 아버지가 싸워서 이기십니다. 사탄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과 말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적인 뜻과 계획의 범위를 확장해 가실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우상이 지배하는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여 정복해야만 합니다. 이는 곧 땅에서 하늘나라의 영토를 넓혀가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민수기를 통해 두 가지 전쟁의 승리를 쟁취해야만 합니다. 천국 전쟁의 승리를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죄의 체질을 이겨서 세상을 기필코 탈출해야만 합니다. 마음이 세상을 탈출하여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을 가지는 자가 승리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질 때 하나님은 나를 가지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 나라의 전쟁은 승리하게 됩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창조적이고 본래의 계획과 뜻대로 확장되어 감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민수기를 통해 천국 전쟁과 하나님 나라 전쟁이라는 두 가지 전쟁을 살펴볼 것입니다. 민수기를 통해 승리하는 자로 거듭나는 은혜가 주어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처럼 보배로운 말씀이 기록된 민수기를 허락하셔서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두 가지 전쟁을 승리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민수기를 끝낼 때는 천국 전쟁과 하나님 나라 전쟁이 토대가 되어 승리를 거머쥐기도 하는 영적 전사들이 되어 우뚝 설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