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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0)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0)’ 갈6:14

콜로세움 방식과 돔 방식의 믿음_태승철

by 태승철 · 16-10-22 11:37 · 8,199
중세 유럽의 성당 지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돔(Dome)이 요즈음은 주로 대형 실내 스포츠 경기장을 일컫는 말로 많이 사용됩니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의 돔 야구장들이 유명하지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하늘이 차단된 점이 특징인 돔 야구장의 시조인 미국 휴스톤의 애스트로돔은 하늘에 완전히 노출된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믿음의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콜로세움 방식과 돔 방식. 그러나 돔 방식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철거하십니다.

콜로세움 방식과 돔 방식의 믿음

(열왕기하 17:1~23)

 

 

1. 유다의 왕 아하스 제십이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구 년간 다스리며

2.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다만 그 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

3.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올라오니 호세아가 그에게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더니

4. 그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가 배반함을 보고 그를 옥에 감금하여 두고

5. 앗수르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에 두루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그 곳을 삼 년간 에워쌌더라

6. 호세아 제구 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콜로세움 방식과 돔 방식의 믿음>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콜로세움 방식과 돔 방식의 믿음

196549일에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 지름이 무려 220m나 되고 높이가 63m나 되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돔 야구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람들이 이제껏 이런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신선한 충격을 받아서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아닌 8대 불가사의라는 찬사를 쏟아냈습니다. 이 야구장의 이름은 애스트로돔(Astrodome)으로서 천체관측 창이라는 의미입니다.

휴스턴에 이런 거대한 실내야구장이 생기게 된 이유는 텍사스의 휴스턴이 무척 습하고 덥기 때문이고, 또한 여름이 되면 벌새만한 모기떼가 극성이라고 합니다. 초저녁에도 기온이 섭씨 36도 안팎을 오르내리면서 모기떼의 습격으로 도저히 관중석에 앉아서 야구 경기를 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휴스턴 시장 출신과 판사이기도 했었던 휴스턴의 야구 구단주였던 로이 호프파인즈가 팬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야구 붐이 일어날 것을 꿈꾸면서 이 애스트로돔을 짓게 됩니다. 이 사람이 돔 경기장을 지을 때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애스트로돔이 역사상 첫 돔 야구장이다 보니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돔 구장들도 이것을 모방해서 짓게 되었습니다. 일본에는 12개의 프로구단이 있는데 도쿄돔을 시작으로 무려 6개의 돔 구장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30개의 구단 가운데 7개의 구단이 돔 구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스트로돔이 처음 지어진 건물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천연잔디를 위해서 햇볕이 필요했기 때문에 투명 유리로 지붕을 만들었는데, 그 유리가 빛을 통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도에 따라서 빛을 반사하므로, 야구 선수들이 뜬 볼을 잡으려고 할 때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애스트로돔에서 경기를 할 때에는 검은색의 야구공을 쓰기로 결정까지 했지만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천장에 색을 칠해서 아예 하늘을 차단시켜 버렸는데 이번에는 잔디가 자라질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애스트로 터프(Astro Turf)’라는 인조잔디였습니다. 스포츠구장에 인조잔디가 깔리게 된 것도 애스트로돔이 최초입니다.

그런데 50년 이상이 지난 요즘은 애스트로돔의 안전문제 때문에 철거 논의가 한창이라고 합니다. 안전문제가 있으면 그냥 철거하면 되겠지만 역사적 가치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논의가 되는 것입니다. 야구나 미식축구뿐만 아니라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 엘비스 프레슬리의 공연 등이 그곳에서 있어왔기에 철거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찮게 나오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천체관측 창의 이름을 가진 최초의 돔 구장인 애스트로돔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영감을 얻어 지어졌습니다. 또한 애스트로돔에서 영감을 얻어 지어진 모든 돔 야구장은 결과적으로 모두 콜로세움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콜로세움은 하늘을 향해 완전히 개방되어 있으나 돔 구장은 하늘에 대해 굳게 차단되어 있습니다. 모순적이게도 천체관측 창이라는 이름이 애스트로돔이고 애스트로돔이 첫 번째 실내 야구장인 것입니다.

믿음의 방식도 콜로세움 방식이 있고 돔 구장 방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은 하나님에 관한 것인데 어떻게 하늘에 대해 닫힌 돔 구장 방식이 믿음의 방식일 수 있을까 질문할 수 있는데 바로 잔디를 비유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천연잔디는 햇빛을 받아야 자라지만 인조잔디는 햇빛이 없어도 됩니다. 하늘이 닫힌 돔 구장에도 잔디는 있는데 다만 생명이 없는 인조잔디입니다. 하늘이 닫힌 채로도 하늘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고, 하늘과 연관된 모든 의식을 거행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제천의식을 가진 모든 종교나 하늘에 대한 사상을 가진 모든 철학과 사고와 사상들이 예외 없이 돔 구장에서의 인조잔디와 같은 하늘이 닫힌 생명 없는 인조 하늘에 대한 행동들이 됩니다.

이 세상에 십자가 복음에 대한 것이 아닌 다른 모든 종교는 돔 구장의 인조잔디처럼 실제로는 하늘이 차단된 상태에서 인조 하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자신들은 하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선민에게도 있어서도 가장 큰 문제로 등장합니다.

돔 구장 방식의 믿음 안에서 인조 하나님을 숭배하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인데, 그 결과 바로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선민의 나라 북 왕국 이스라엘이 기어코 패망하여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읽은 1~6절까지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패망하게 되는 직접적 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앗수르의 강압에 조공을 바치던 마지막 호세아 왕이 견디다 못해 남쪽의 애굽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애굽에는 여러 왕이 난립하고 있던 때라 누구를 도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3년간 앗수르의 군대가 사마리아를 비롯해서 북 왕국 이스라엘 전역을 초토화 시키게 되었고, 애굽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의 손길을 주지 못했으므로 북 왕국 이스라엘은 3년 만에 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조공을 바치기를 거부하고 애굽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앗수르의 살만에셀 왕이 쳐들어와서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있던 중에, 기록되지 않은 이유로 인해 살만에셀 왕이 죽게 되자 그의 동생이자 왕위계승자인 사르곤 2세가 결국 선민의 나라 북 왕국 이스라엘을 완전히 패망시킵니다.

우리가 읽지 않은 부분을 보면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에 정치적 외교적 차원의 계기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면에서는 영적인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따르지 않고, 이방인들의 규례를 따랐고 이스라엘 왕들이 정한 규례를 따랐기 때문에 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행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권고하셨지만 그들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이러한 영적인 내용적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이렇게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직접적인 계기와 영적이고 신학적인 패망의 이유가 나열되어 있는 연관성에 초점을 두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찾아봅니다.

대내외적인 계기가 의미 없는 빈 껍질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실질적인 패망의 원인이 신학적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에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호세아가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애굽에 손을 뻗은 것은, 앞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 베가와 아람의 왕 르신이 동맹을 맺어 반 앗수르 전선을 펼치면서 남 왕국 유다를 강압할 때도 아하스 왕은 앗수르에 손을 내밀었는데 같은 유형의 행동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앞에서도 계속 있어 왔습니다.

오늘의 사건도 특별히 새삼스러울 것은 없어 보이지만 이러한 호세아의 외교정책이 갖는 의미가 큽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 원인이 되어서 직접적인 패망의 계기가 되었지만, 오늘 외교정책으로 반영된 호세아의 믿음이 신학적인 패망의 이유들을 결과 지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외교정책이 호세아의 믿음의 방식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방식은 다른 신을 섬기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며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것으로서 열매 맺게 됩니다.

굳이 호세아의 상태를 불신앙이라고 하지 않고 믿음의 방식으로 보는 이유는 북 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나라를 세울 때부터 마지막 왕인 호세아에 이를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포기한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방식이 바로 콜로세움의 방식이 아닌 돔 구장 방식이었습니다.

이 땅의 평면상의 북쪽에서 앗수르가 쳐들어오자 마찬가지로 평면상의 남쪽의 애굽에 손을 내밉니다. 지금 호세아의 마음은 하늘에 대해서는 닫힌 채 평면상에서만 움직이고 있는데 돔이 형성된 것입니다.

호세아는 여호와의 이름을 놓지 않았고 다른 왕들보다는 덜 악했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여로보암이 북 왕국 백성들이 남 왕국 예루살렘 성전에 절기 지키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금송아지에 여호와의 이름을 붙여서 섬기게 하였으나, 호세아는 역대하를 보면 적어도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절기를 지키는 것을 방임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가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지막 왕으로 결정된 것은, 그의 믿음의 방식이 이스라엘의 패망을 받아들일 정도로 충분히 악하고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앗수르가 쳐들어오자 호세아는 오직 남쪽의 애굽만을 구원의 방책으로 생각하면서 이 땅의 평면상에서만 마음이 움직일 뿐 하늘은 닫혀 있었습니다.

하늘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평면적으로만 움직이는 믿음의 방식이 돔 구장 방식입니다.

그러나 호세아의 마음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잊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부른 하나님은 애스트로돔의 인조잔디와 같은 인조 하나님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불리고 있었지만 그 이름은 인조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인조잔디가 깔린 애스트로돔이 철거되느냐 마느냐를 논의 중인 것처럼, 하늘이 닫힌 돔 방식의 믿음으로 일관한다면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그 돔을 철거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늘을 향해 개방될 수 있느냐는 것인데 다윗이 골리앗을 마주 대할 때에 알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이나 개념들과 언어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하나님은 선택받은 백성을 사랑 하신다라는 것이었는데 이런 정도의 믿음과 연관된 사상과 개념과 언어들은 그 자리에 있던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와 백성들 또한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사울 왕이 알고 있던 하나님은 하늘이 닫힌 인조 하나님이었고, 다윗이 아는 하나님은 하늘이 열린 상태의 생명 있는 잔디처럼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같은 하나님을 부를 지라도 돔 구장 방식으로 하나님을 부른다면 인조 하나님이고, 하늘이 개방된 콜로세움 방식이라면 진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부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콜로세움처럼 하늘을 향해 개방된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기 때문이고, 선민 이스라엘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패망을 겪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하늘이 개방된 콜로세움 방식의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보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세례를 받고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총회장이 되고 교황이 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내가 콜로세움처럼 하늘이 열린 믿음의 방식으로 살고 있느냐, 아니면 돔 방식으로 하늘이 막힌 믿음의 방식으로 살고 있느냐를 구분할 수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려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목사나 장로나 총회장이라는 타이틀은 없어도 되고 심지어 교회에서 말하는 세례식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땅에 대해서 죽어야만 하늘이 열립니다.

땅에 대해서 죽는 것은 이 땅에서 만족거리와 기쁨거리를 찾지 않는 것입니다. 땅에 대해 죽을 때에 하늘이 개방되고 하늘과 연결되는 콜로세움 방식의 믿음의 삶이 우리에게 가능해집니다.

땅에서 만족거리와 기쁨거리를 찾으면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킬 수는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면 땅에서 풍족하게 살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23:33절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하셨습니다. 뱀은 땅에 배를 붙이고 다니는 생물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족거리와 기쁨거리를 위해서 마음을 땅에 붙인 자들이 독사의 새끼들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누구보다 잘 지켰으나 땅에서의 성공을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읽고 잘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성공이라는 열매를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인데 이것이 다 돔 구장 방식의 믿음 생활입니다.

철야하고 봉사하고 충성하고 교회에서 살면서 돔 구장 방식의 믿음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인조잔디를 깔아놓고 살듯이 인조 하나님을 부르면서 사는 믿음의 방식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나를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오늘도 기뻐하거나 근심할 때가 있다면 나를 들여다보고 그 이유를 찾아야만 합니다. 내가 아직도 땅에 있는 것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려고 하고, 그로 인해 우울해하거나 두려워하면서 조바심을 내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땅의 것을 찾으려는 우리의 체질은 유전되어서 주어진 것이기에 이것이 발동되기 시작하면 우리의 삶은 돔 구장이 되어서 하늘이 차단되어 인조 하나님을 부르며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을 끊임없이 관찰하면서 깨어서 십자가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기쁨을 얻으려는 내 마음을 죽이는 일을 평생 하다가 뒤돌아보았을 때에, 내 몸과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풍성하게 맺어 가셨음을 보게 될 것인데 하나님께서 다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서 인생을 끊임없이 돔 구장 방식으로 만들려는 죄적 성향에 맞서야 합니다. 땅에 대해서 완전히 죽어서 기쁨과 만족을 기대하지 않겠다고 날마다 기억하고 상기해야 합니다.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다는 칭찬을 들었던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명령을 받고 성전 안에 앗수르 식의 제단을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순식간에 뒤집어지기 쉽습니다.

오늘도 콜로세움 방식으로 비유된 하늘이 개방되어진 믿음의 삶을 살아서 인조 하나님이 아닌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르면서 그 하나님과 연결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콜로세움 방식의 하늘을 향한 개방형 삶을 살기 위하여 오늘 아무리 급박한 일과 환경이 주어질지라도 내 마음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를 밝히 보며 살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