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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제사장인데도 행복 못하면 등신>의 줄거리 :
등신(等神)은 "나무, 돌, 흙, 쇠 따위로 만든 사람의 형상이라는 뜻으로, 몹시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두 각각 제사장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굉장한 자격을 열거하십니다. 그런데 이 모든 대단한 자격이 알고 보면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혜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혜택들이 나의 자격이 되어서 제사장이 되면 도저히 기쁘고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과 이제 행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정말 등신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제사장인데도 행복 못하면 등신
(출애굽기 29:1~37)
1. 네가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일은 이러하니 곧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택하고
2. 무교병과 기름 섞인 무교 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 전병을 모두 고운 밀가루로 만들고
3. 그것들을 한 광주리에 담고 그것을 광주리에 담은 채 그 송아지와 두 양과 함께 가져오라
4.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5.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정교하게 짠 띠를 띠게 하고
6.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거룩한 패를 더하고
7. 관유를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르고
8.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9.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 그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
본문은 제사장의 위임식 규례에 관한 말씀입니다. 희생 제물로 준비한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순차적으로 속죄제, 번제, 화목제로 드리면서 위임식이 진행됩니다.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제사장인데도 행복 못하면 등신”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제사장이면 행복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위임식을 통해서 제사장의 자격을 보여주십니다. 이 자격에는 굉장한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격은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을 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혜택으로 주어집니다. 이렇듯 엄청난 자격을 혜택으로 받아서 제사장이 되었는데 행복하지 못하고 기쁘지 않다면 등신입니다. 본래 등신(等神)이란 나무, 돌, 흙, 쇠 같은 것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용법에서는 몹시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욕으로 쓰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제사장의 자격이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닌 혜택으로 얻는 것입니다. 이처럼 굉장한 자격들을 혜택으로 얻었는데도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야말로 등신이라는 것입니다.
1~3절은 제사장 위임식을 위한 제물에 대한 내용입니다. “…곧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택하고 / 무교병과 기름 섞인 무교 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 전병을 모두 고운 밀가루로 만들고 / 그것들을 한 광주리에 담고 그것을 광주리에 담은 채 그 송아지와 두 양과 함께 가져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위한 어린 수소 하나, 흠 없는 숫양 둘이 언급되고, 고운 밀가루로 만든 무교병, 무교 과자, 무교 전병이 언급되는데 이것들은 소제를 의미합니다. 다만 소제는 단독으로 드려지기보다는 번제나 화목제와 같이 드려집니다. 소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제사장의 위임식에서 중요한 개념은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제사가 제사장이 갖춰야 할 엄청난 자격의 의미를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속죄제의 혜택, 번제의 혜택, 화목제의 혜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제사장 노릇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보면 그 의미가 잘 설명되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제사장이 되어야 하지만 제사장 위임을 받기 해서는 자격이 필요합니다. 그 의미가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에 담겨 있습니다.
제사장의 첫 번째 자격은 속죄제로 주어집니다. 속죄제가 가리키는 자격이란 죗값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죗값이 지불되지 않고 체불되고 있는 상태라면 제사장의 자격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여기서 혼동하면 안 되는 것이 제사장도 죄가 있습니다. 사람 중에 죄가 없는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죄는 있으나 죗값은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앞서 말씀드린 죗값이 지불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마음과 행위로 저지른 죄에 대해 어떻게 값을 지불할 수 있을까요? 죄에 대한 응당한 대가는 목숨입니다. 여기서 속죄제의 필요성이 생깁니다.
4~14절을 보면 속죄제를 드리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수소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를 합니다. 흔히 예배당에서 목사님들이 교인들에게 안수 기도를 할 때는 대부분 축복의 기도일 때가 많습니다. 혹은 목사 위임식을 할 때 선배 목사님들이 안수를 합니다. 옛날에 농촌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은 송아지가 태어나면 안수를 했다고 합니다. 송아지가 잘 자라 새끼를 많이 낳기를 바라며 안수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기록된 수소의 머리에 행해진 안수는 그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이 안수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지은 모든 죗값을 수소에게 전가하는 의식입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죗값이 지불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아론과 그 아들들도 죄인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위해 수소에게 안수함을 통해 죗값을 옮긴 것입니다. 수소는 아론과 그 아들들의 모든 죄를 끌어안고 죽임을 당합니다. 이러한 속죄제를 통해 죗값은 지불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안수는 제사자와 희생 제물의 동일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 위임식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제사에 스며들어 있는 근원적 원리입니다.
한편 우리에게도 속죄제는 필요합니다. 우리의 속죄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의 고난에 속죄제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보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고, 이사야서 53장 5절에서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기에 죗값을 치르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지독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죗값으로 주어지는 고난은 죄가 있는 자에게 유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기에 이 고난은 임자 없는 죗값입니다. 일개 사람이 아무리 큰 고난을 받아도 그것은 개인의 죗값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어떤 고난을 받아도 그 죗값을 지불하기에는 항상 모자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심을 통해 모든 사람의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평생 죄를 짓더라도 예수님의 임자 없는 죗값을 가져오기만 하면 죗값은 치러지게 됩니다.
말씀드렸듯이 죄 있는 사람이 받는 고난은 자기의 죗값을 치르기에도 부족합니다. 어떤 고난을 받더라도 죗값을 치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자 신으로서 죄가 없으십니다. 그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 오셔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 고난은 모든 인류의 죗값을 다 지불하고도 남을 죗값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는 해당하지 않기에 임자 없는 죗값이 됩니다. 누구든지 그 죗값을 가져다 쓰기만 하면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다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요한복음 8장을 보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의 법대로라면 공개적으로 여자를 끌어내 돌로 쳐 죽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돌로 치려는 사람들 앞에서 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다 떠나갑니다. 10~11절을 보면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신 것은 나도 너에게 죗값을 묻지 않고 책임 지우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간음을 해도 괜찮다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간음을 한 죄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으면서 죗값을 치러야만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죗값을 당신이 다 치르실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무런 죄가 없지만 고난을 받을 것이다. 내가 받을 고난으로 네 죗값을 치를 것이니 너는 가라.’라고 말씀하신 셈입니다.
속죄제는 제사장의 자격을 말합니다. 그 자격이란 죗값이 없어야 합니다. 죄는 지었으나 죗값은 없어야 합니다. 지불되지 않고 체불된 죗값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속죄제의 희생 제물 수소는 주님의 고난을 예표합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든지 죗값은 치러집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돌에 맞아 죽으면서 죗값을 치러야 하는 여인의 죗값만 치르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없는 분으로서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몸은 채찍에 맞아 살이 찢기시고, 손과 발에는 못이 박히시고, 허리는 창에 찔리시는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고난을 통해 우리의 죗값을 다 지불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임자 없이 남아도는 죗값을 내 것으로 가져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모든 죗값은 치러지고 제사장의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만들어 놓으신 죗값을 내 것으로 가져오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주님의 고난 받으심과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내게서 일어난 것으로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수소에게 안수하여 자기와 동일시했던 것처럼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나와 동일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잊지 않고 유지해 갈 수 있다면 무슨 죄를 지었더라도 죗값은 지불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엄청난 혜택으로 주어지는 제사장의 자격입니다. 이것만 해도 우리가 행복하고 기뻐해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지은 죄, 행위로 지은 죄에는 반드시 지불되어야 할 죗값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 속의 예수님과 십자가 죽음 속의 예수님을 나와 동일시하기만 하면 그 죗값은 다 지불됩니다. 죄가 없는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두 번째 자격은 번제로 주어집니다. 이 또한 내가 노력하여 시험을 통과하는 자격이 아닌 혜택으로 주어집니다. 번제도 두 숫양 중 한 마리의 머리에 안수하는 동일시의 원리와 일치합니다. 숫양은 물로 씻고 각을 떠서 번제단 위에 펼쳐놓고 불로 태워 완전히 재가 되게 합니다. 번제와 속죄제의 다른 점은 레위기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여기서는 위임식에 초점을 맞추어 속죄제와 번제의 차이와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속죄제는 이미 마음과 행위로 저지른 죄에 대한 죗값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한편, 번제는 죄를 짓는 근본적 이유인 인격의 체질을 문제시합니다. 속죄제는 죄가 체질화 되어서 마음과 행위에서 빗나감의 범죄에 대한 죗값을 치름이라면, 번제는 빗나감의 죄악들이 나타나게 하는 죄적 체질이 되어버린 나의 존재 자체를 조각내서 태워죽이는 것입니다. 번제는 히브리어 올라(עוֹלָה)로써 희한하게도 우리말 ‘올라간다’와 뜻이 똑같습니다. 이처럼 번제는 하늘로 올라가야만 하는 마음이 올라가지 못하고 세상 친화적이 되어서 세상에 묶여있는 체질 자체를 불태워 죽이는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그 숫양 전부를 제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라고 했습니다. “향기로운 냄새”라는 표현은 앞서 본 화목제에서도 언급되었습니다. 원문을 보면 ‘안식하게 하는 냄새, 쉬게 하는 냄새’라는 뜻입니다. 번제에는 우리 마음이 이 땅을 탈출하여 올라가야 한다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는 세상 친화적인 죄적 체질의 나를 태워죽이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에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을 생각하고, 세상 것을 염려하고, 세상 것을 좋아하고, 세상 것의 존재를 느끼고, 세상 것으로 무르익고 충만해져 있습니다. 번제는 이러한 세상 친화적인 체질을 태워죽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세상 친화적임을 깨닫고 그러한 나를 태워죽이는 일이 왜 하나님께는 안식하는 냄새가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사람들을 내려다보시며 노심초사하십니다. 선택하신 자들의 마음이 하늘로 올라오지 못함을 염려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는 내가 창세 전에 예정하고 선택한 나의 아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너의 마음이 세상에 붙어있느냐? 너는 지금 세상 것을 담고, 세상 것을 생각하고, 세상 것을 이루기에 여념이 없구나.’라고 말씀하고 계신 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심정으로 노심초사하시고 안절부절못하시며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이로부터 번제의 필요성이 생겨납니다. 선민이 하나님의 바람대로 하늘로 바로바로 올라가지는 못할지라도, 세상에 묶여있음을 자각하고 이러면 안 된다고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번제를 통하여 나를 죽여야 한다고 깨달을 수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쉬실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함에 대해 노심초사하시고 안절부절못하시던 상태에서 안심하시고 안식하시며 쉬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하늘로 잘 올라가기 때문에 안식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묶여있는 상태를 자각할 수 있기만 해도 하나님은 안심하실 수 있습니다. ‘뱀이 배를 땅에 붙이듯이 내가 마음을 땅에 붙이고 있구나. 이래서는 안 된다. 이러한 나는 죽어야 한다.’라고 자각할 때 번제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범죄는 지금 보다 더 나은 상황을 추구함으로부터 발생합니다. 세상 안에서 더 좋음을 추구하느라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더 나쁜 것을 좋아하고 더 나쁜 것을 추구하는 것을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더 좋은 것이 무엇이고 더 나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 갇힌 마음은 세상 것들만이 더 좋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자들에게 준비하신 최고의 좋음이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추구해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최고로 좋은 당신 자신과 천국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갖지 않는 것을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좋은 것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에서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나쁜 것을 가지려고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좋음을 하늘에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번제가 혜택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번제는 이 세상 것을 추구함에 대한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것을 아무리 가져도 이룰 수 없는 좋음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기에 우리의 마음은 하늘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이것을 알았다면 더 나쁜 것을 추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좋음 앞에서는 이 세상 좋음을 다 모아놓아도 그것은 좋음일 수 없고 죕니다. 하나님의 좋음을 알면서도 세상 좋음을 추구한다면 바보이고 멍청이입니다. 세상 모든 좋음보다 더 큰 좋음인 하나님을 가지기 위해서는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번제를 혜택으로 제시하신 것입니다. 번제는 죄의 체질 때문에 이 세상 것을 좋아하는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가장 좋은 것이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번제의 역할을 합니다. 세상 것은 아무리 가져도 마음을 채우지 못합니다. 마음을 채우지 못할 것은 좋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쁜 것을 좋아하는 너는 십자가에서 나와 함께 죽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 제시된 번제의 의미이고 혜택입니다.
나쁜 것을 좋아하는 나를 죽일 수 있는 자각 능력이 제사장의 자격입니다. 돈과 건강이 아깝게 느껴질 때 ‘나는 왜 돈과 건강을 아깝게 여기는가? 이것들은 아무리 모아도 천국 좋음에 비교할 수 없다. 나쁨을 원하는 나는 죽어야 한다.’라고 자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죽일 수 있도록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죽음은 임자가 없는 죽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죽음을 가져다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나를 동일시함을 통해 나쁜 것을 좋아하여 세상에 묶여있는 나를 죽일 수 있습니다.
제사장의 세 번째 자격은 화목제로 주어집니다. 화목제에는 속죄제나 번제와는 다르게 특별한 의식이 있습니다. 20절을 보면 “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것의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부리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제단 주위에 뿌리고”라고 했습니다. 귓부리 다시 말해 귓볼에 피를 바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게 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제사장의 자격입니다. 또한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피를 묻혔습니다. 이는 곧 손과 발로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게 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들은 말씀대로 손을 움직이며 일을 하고 발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이끌림을 받으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화목함이 유지될 수 있는 조건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의 화목함이란 하나님과 일체가 되는 상태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하나님의 일만 하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만 살게 됩니다. 우리의 화목제는 예수님의 몸을 입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번제로 죽고 나면 우리 마음은 예수님의 몸을 입고 부활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몸을 입는 것이 우리의 화목제입니다. 근원적으로 따지자면 올라감은 번제의 의미 속에 들어있습니다. 다만 그 올라감은 예수님의 몸을 입기 때문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는 내 마음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몸을 입고,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있는 내 몸을 입으실 때 이루어집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말씀대로 행동하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만 살게 됩니다. 하나님과 화목의 절정은 내 마음이 독생자 예수님의 몸을 입고 하나님을 마주하는 상태를 유지하고, 이 땅에 남아있는 내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입으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움직여 가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단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단계, 십자가 죽음의 단계, 부활 승천의 단계를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나의 죽음을 이루셨고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이다.’라는 동일시의 고백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죗값이 하나도 없는 자격, 하늘을 내 것으로 갖기 위해 땅을 가지지 못해 안달하는 나를 죽여야 한다고 자각하는 자격, 내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땅에 있는 내 몸은 하나님의 성령과 화목하는 엄청난 자격들이 내 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내가 죽은 것이고 죽기 위해 받으신 고난도 내 죗값을 위한 것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의 몸은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 내 마음이 입을 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은 지금 나를 위한 사건입니다. 이것을 믿으면 엄청난 세 가지 자격은 혜택으로 주어집니다. 우리가 말하는 십자가 생활화는 곧 번제의 생활화입니다. 나쁜 것을 좋아함이 죄악입니다. 천국에 비하면 나쁜 세상 것들을 마음으로 가지려고 하는 나는 죽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세상 모든 것을 다 모아놓아도 감당이 안 될 만큼 좋은 하나님과 천국을 내 것으로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을 잊지 않고 나를 죽이는 것이 번제의 생활화입니다.
제사장의 자격이란 죗값이 없어지는 자격,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과 천국을 내 것으로 가지는 자격,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과 화목함의 절정을 이루는 자격입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자격은 우리에게 혜택으로 주어집니다. 그런데도 행복하지 못하고 기쁘지 않다면 그야말로 등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혜택을 실제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게 해주시고 그럼으로써 혜택으로 주어지는 엄청난 제사장의 자격들을 온전히 구비하고 갖추어 행복과 기쁨이 끊이지 않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