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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 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우상숭배를 낳는 미신에 먹힌 삶>의 줄거리 :
좋아하는 대상이 하나님 자신이 아니고 다른 신이면 이제 삶은 전체적으로 미신이 지배하는 삶이 됩니다. 하나님 이외의 대상들이 마음에 만족과 기쁨이 되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은 미신이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는 바로 이런 미신이 낳은 자녀지요. 다른 신을 마음에 두는 미신이 없다면 우상숭배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신의 자녀는 우상숭배뿐만 아닙니다. 과학 숭배, 지식 숭배, 전문가 숭배, 성공자 숭배, 스타 숭배 등 모두 다 미신이 낳은 자녀들입니다.
우상숭배를 낳는 미신에 먹힌 삶
(출애굽기 20:4~7)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미신(迷信)은 우상숭배를 낳는 어머니입니다. 미신은 옛날에 있던 우상숭배만을 낳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자녀를 낳고 있습니다. 세상은 미신이라는 어머니가 낳은 자녀들로 가득 차 있고, 많은 사람들이 미신에 먹힌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신이라는 어머니가 낳은 자녀들 중에 가장 대표적이고 장자에 속한 자가 우상숭배입니다.
십계명의 제2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너를 위하여 우상숭배를 낳는 미신을 타파하라’는 의미입니다. 미신이 있기 때문에 우상숭배가 생깁니다. 미신이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는 우상숭배가 장자로 태어나서 삶의 방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라는 말씀은 단순히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끊임없는 우상을 낳는 미신을 타파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미신 타파는 제1계명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하는 이유는 제1계명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인간이 만들었기에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며, 마주하여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우상을 만듭니다. 우상을 만드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우상숭배는 제1계명을 어길 때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1계명으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채움을 위해서 있음의 존재감과 좋음을 추구하게 됩니다. 마음의 평강을 위해 근원적인 있음으로써의 대상을 추구하고, 마음의 만족과 기쁨을 위해 좋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구조상 마음의 첫 번째 자리의 좋음으로 등장해야 할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것이 제1계명에서 말씀하신 다른 신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것이 신격화의 문제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신이 아닌 대상을 신으로 여김이 신격화입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있음과 좋음을 추구하는 첫 번째 자리는 본래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유일한 참 신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대상을 놓는다면 신격화하는 것입니다.
신격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확신 때문입니다. 그것을 가질 때 내 마음을 채워서 만족과 기쁨의 상태가 되리라는 확신이 있을 때 신격화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확신에는 근거가 없습니다. 근거가 없기에 미신입니다. 미신은 어떤 식으로든 정당성이 증명될 수 없는 마귀가 심어준 확신입니다. 마귀의 계략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대상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그것이 진정한 좋음이라고 확신하게 만듭니다. 그것을 가지기만 하면 마음이 채워지리라 믿게 합니다. 이 믿음이 미신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다른 신을 두는 미신이 생기면 다음 단계로 우상숭배가 나타납니다. 마음의 첫 번째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면 우상숭배는 절대로 생기지 않습니다. 마음에 다른 신을 두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관계성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에 다른 신을 두는 이유는 미신 때문이고, 그것을 가질 때 마음이 채워지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 때문입니다. 미신은 삶 전체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이때 끊임없이 미신에 의해서 붙잡게 된 다른 신을 얻기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삶의 가장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방식이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 미신의 장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보편적으로 퍼져있던 우상숭배를 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숭배가 대표적입니다. 형상으로 만들어진 바알과 아세라는 풍요와 다산을 관장한다는 신입니다. 실제로 바알과 아세라 숭배는 선민에게 탁월한 우상숭배로 여겨져서 선민을 위협하는 도전이 됩니다. 풍요와 다산을 관장한다고 여겨지는 우상에 대한 숭배는 시대를 불문하고 나타납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에베소 지방에서 아데미 여신이 숭배되고 있었음이 언급됩니다. 아데미 여신상을 보면 가슴에 스무 개 이상의 젖을 가진 흉측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당시 에베소 지방에서는 다수의 자식을 먹일 수 있는 많은 젖을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상숭배에 숨겨져 있는 진정한 신격화의 대상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만 들어오셔야 할 마음의 자리에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들여놓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좋아하는 대상은 바알이나 아세라나 아데미 같은 우상 그 자체가 아닙니다. 이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대상은 풍요와 다산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5절을 보면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이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알이나 아세라나 아데미에 대한 숭배는 풍요와 다산을 다른 신으로 마음에 두기로 결정한 다음에 나타나는 행동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질투하는 대상은 바알이나 아세라나 아데미가 아닙니다. 풍요와 다산을 좋아하여 추구함이 다른 신을 섬김입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우상숭배라는 행위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을 좋아하는 행위를 향하여 질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풍요와 다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이외에 인간이 좋아하는 모든 대상은 다른 신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에 만족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근거 없는 미신입니다. 이러한 미신은 우상숭배가 횡횡하던 고대 팔레스타인 지방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닙니다. 미신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제2계명을 대할 때 ‘나는 우상을 숭배한 적이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미신에 지배받음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이로부터 우상숭배의 동생쯤 되는 일들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으로 우상숭배를 하지 않더라도 미신을 모태로 삼는 일들이 우리의 삶에서 자라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2계명은 이것을 점검하게 하시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상숭배가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제1계명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둔 것이 문제입니다. 다른 신을 좋음으로 여기는 근거 없는 확신인 미신으로부터 우상숭배는 태어납니다. 우상숭배의 형태는 아닐지라도 미신이 유지되는 한 우상숭배의 동생들이 태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습니다.
풍요와 다산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다른 신입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돈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 하는 일마다 결실을 얻고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풍요와 다산이 마음에 좋음을 주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신으로부터 우상숭배가 나옵니다. 당시 우상숭배는 일종의 재테크 방법입니다. 풍요와 다산을 늘리기 위한 자산운용의 방식이 우상숭배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풍요와 다산에 대한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다만 우상숭배가 예전과는 다른 식으로 활성화되어 나타나고 있을 뿐입니다. 풍요와 다산은 지금도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입니다. 말씀드렸듯이 바알이나 아세라나 아데미 같은 우상 자체는 하나님의 라이벌이 아닙니다. 풍요와 다산으로 상징되는 재물과 성공에 대한 바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라이벌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알은 재물을 얻기 위한 방법론일 뿐입니다. 바알이 풍요와 다산을 관장하는 신이라고 정해놓고, 바알의 마음에 들도록 뇌물을 바치면서 제사를 드리고 헌신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결국 바알이 내가 원하는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바알 숭배는 결국 재테크의 방법일 뿐입니다. 요즘은 재테크의 방법이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좋아하는 돈을 벌기 위하여 부동산 투기, 주식, 외환 투기, 돈놀이 등의 다양한 방법을 동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신이 만들어 낸 우상숭배의 동생들입니다. 겉모습은 우상숭배와 달라 보일지 몰라도 그 유전자는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많은 월급을 바라며 승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사람이 승진에 바치는 노력과 시도는 바알을 숭배하는 자들의 노력과 똑같습니다. 미신이라는 같은 어머니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재물이 많아지면 만족하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서 나온 두 번째 아들이 부동산 투기이고, 세 번째 아들이 주식 투자이며, 이것은 네 번째, 다섯 번째 아들들로 이어져 나갑니다. 형태를 다르게 할지라도 결국 우상숭배와 같은 유전자를 타고났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절에 가서 불상에 절하지 않으니 우상숭배와는 관계가 없다.’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독교 종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다른 신을 담은 것이 문제입니다. 내 기쁨과 만족을 위해 돈이 많아야 유효하다고 믿는 근거 없는 확신은 미신입니다. 내가 원하는 다른 신을 위해 동원한 방식이 종교라면, 그것은 우상숭배의 다른 방식일 뿐입니다. 부동산 투기, 주식 투자, 외환 투기, 저축, 승진 등이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에서 재물을 다른 신으로 삼았다면 무슨 행동을 하든 우상숭배와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현대 사회가 우상숭배와 같은 미신적인 행동에 대해 많은 계몽이 이루어졌으며 인식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과거에 비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돈벌이 방식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 근본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경제학을 비롯한 돈벌이와 연관된 학문이 있고, 다양한 투자 방법을 소개하는 책과 미디어가 있습니다. 돈벌이 방법을 가르치는 탁월한 스승들이 있고 제자들이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부자 되는 방법으로 우상숭배 대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론을 의지합니다. 각종 투자 이론과 자기개발서가 홍수를 이룹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도가 결국 재물로 대표되는 풍요와 다산을 향한 것이라면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재물이 내 마음을 채워주고 만족과 기쁨을 가져다주리라는 확신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 확신은 마귀가 넣어준 근거 없는 미신입니다. 일단 마음에 재물이 좋다는 미신이 생기고 나면 이로부터 어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이 동원되더라도 결국은 다른 신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본질적으로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는 성격과 유전자를 가진 행위인 것입니다.
풍요와 다산이 기쁨이 되리라는 미신에서 출발했다면 과학도 우상이고 지식도 우상이 됩니다. 풍요와 다산은 재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이고 지금 죽으면 불행하고 불쌍한 것이라는 미신에서 출발했다면 건강을 위한 모든 시도는 우상숭배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미신의 자식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이외에 다른 대상을 좋아하는 것이 다른 신을 섬김이고 미신입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을 위해 추구하기 위해 동원되는 모든 방법은 본질적으로 우상숭배와 같습니다.
두 사람을 비교해 봅니다. 첫 번째는 가나안에서 풍요와 다산을 관장한다는 바알을 숭배하던 부자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과학적이고 확실한 객관적 자료를 동원하여 주식 투자에 성공한 부자가 있습니다. 바알 숭배로 부자 된 자와 주식 투자로 부자 된 자 중에 어떤 것이 부자 될 확률이 높을까요? 그래도 과학적이고 객관적 자료에 기반한 투자를 했으니 바알 숭배보다는 확실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부자가 된 비율로 따지자면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그것을 따지고 연구하여 객관적 자료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무지몽매한 바알 숭배자들 중에서 부자가 된 확률이나 과학적이고 객관적 자료를 활용하는 주식 투자자들 중에서 부자가 된 확률이나 결국 비슷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과학적이고 객관적 자료나 지식을 따라 투자했다고 해서 그것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혹시 부자가 되었다면 그 방식이 남들보다 과학적이라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감이 좋아서 성공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엇인가 다른 뜻을 위하여 돈을 두신 것입니다.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방법론을 동원했기에 돈을 번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미신입니다. 마음에서 좋아하여 얻고자 하는 다른 신이 재물인 상태에서는 그것을 얻고자 아무리 과학적이고 객관적 방법을 동원해도 결국 미신을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만 진리입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있게 하거나 없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과학적 근거를 통해 돈을 있게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미신입니다.
물의 화학식은 H2O로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이 그렇게 존재하는 것은 단순히 과학적인 원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가 만나서 물이 되라고 지시를 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과학적 원칙이나 법칙이라고만 이해하지만, 하나님의 지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물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과학과 자연법칙은 하나님의 인격적인 결정입니다.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을 제외하고 근거로 삼으려고 한다면 그 자체로 미신입니다.
과거에 확실한 지식이라고 여겨진 대단한 이론도 새로운 이론이 나타나면 미신이 되어버립니다.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이 변함없는 절대적 기준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면서 시간과 공간의 불변성은 미신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인격적 창조주이시자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이루어졌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은 시기까지 지속되라 명령하셨기에 자연법칙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원칙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에 우선하는 원칙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지시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지시를 거두신다면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가 아무리 만나더라도 물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원래 그렇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미신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되게끔 하셨다고 믿는 것만이 진리입니다. 자연법칙조차도 그러한데 투자 이론이나 자기개발서를 진리라고 믿는 것은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는 미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금지하신 이유는 우리 마음에서 세상 것을 좋아하는 것 자체가 다른 신을 섬기는 미신에 사로잡힌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좋다고 여기는 세상 것을 가진다고 해서 기대하는 만족이나 기쁨은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크기로 비어있는 마음의 공백을 세상 것이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다는 믿음은 마귀가 족집게로 심어놓은 미신입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제3계명인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망령되게”라는 말은 히브리어 ‘라솨웨’로써 ‘라’는 부정어이고 ‘솨웨’는 무질서함과 소모하는 것, 다시 말해 헛되고 쓸모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망령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아무리 불러도 하나님이 응답하실 수 없는 마음 상태를 의미합니다. 쓸모없이 부름이고, 소용없이 부름이고, 헛되이 부름이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거스르며 부름입니다. 백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실제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마음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음에 다른 신을 둔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미신에 사로잡혀 부르게 됩니다. 이것이 어떤 상태인지는 우상을 어떨 때 찾는지 떠올려 보면 좋습니다. 마음에 다른 신으로 두고 그것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우상숭배를 합니다. 이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풍요와 다산을 좋다고 여기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우상숭배가 나타나는 단계에 하나님을 위치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가 다른 신을 신격화하는 것이었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우상시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다른 신이 내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미신이 지배하는 상태가 됩니다.
바리새인은 돈을 좋아하면서 율법을 잘 지켰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면서 내가 좋아하는 돈을 많이 주실 것이다.’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리새인은 돈이 많은 기득권층으로써 잘사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로 여겼지만 이것은 미신입니다. 기독교 종교인들에게서 발견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예배당에 충성 봉사하면 하나님이 건강과 장수를 주시고 가족의 형통을 허락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을 우상 숭배하듯이 관계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배당에서 헌신하고 충성하여 하나님 마음에 들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신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상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미신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입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를 사했다.’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으로 십자가를 생활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빗나가는 죄는 여전히 활성화된 상태입니다. 계속해서 마음으로 추구하는 대상은 하나님 아닌 다른 신입니다. 다른 신 두는 것을 막으려면 십자가 생활화를 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날마다 짊어지고 다닌다는 사도 바울을 본받아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항상 의식해야만 빗나감의 죄는 중단됩니다. 그래야만 마음에 다른 신을 두지 않게 되고 미신도 끊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죄 사함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도 십자가를 생활화하지 않는다면 죄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도 미신에 불과합니다.
십자가를 생활화하지 않는 십자가 보혈에 대한 죄 사함은 다 미신입니다. 교리가 미신이 된 상태입니다. 생활화하지 않는 교리는 미신일 뿐입니다. 종교의 역할이 여기에서 생깁니다. 종교는 교리가 미신이 된 상태를 괜찮다고 인정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생활화하지 않는 기독교의 모든 교리는, 그 교리 자체에 틀림이 없을지라도 미신이 되고 맙니다. 내가 십자가를 생활화하지 않는데 십자가가 내게 죄 사함을 줄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생활화하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죄 사함을 받았다고 믿고 있을 뿐입니다. 암을 고치는 약이 있어도 복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생활화하지 않으면서 죄 사함을 받았다고 믿는 것은 ‘암이 고쳐지는 약이 만들어졌으니 내 암도 나았다.’라고 믿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생활화하지 않는 십자가 복음은 미신입니다. 생활화하지 않는 기독교의 모든 교리는 미신입니다. 그럴 때 나타나는 일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알았다면 믿음을 생활화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주권자이시라면 내 주권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내 주체성을 발동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죄 때문에 내 주체성이 발동되기에 그러한 나를 십자가에서 죽여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유일한 있음이라는 교리를 안다면 하나님의 있음을 생활화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죄 때문에 자꾸만 내가 스스로 있는 자로 행동하려 합니다. 그러한 나는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여호와 하나님이 있게 하신다는 교리적 가르침이 살아있는 가르침이 되고 피와 살이 되는 가르침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서 모든 교리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십자가를 생활화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버젓이 다른 신을 섬기는 행태가 나타납니다. 재물이란 다른 신, 건강이란 다른 신, 형통이란 다른 신, 승진이란 다른 신을 섬깁니다. 내 삶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가졌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모든 좋음을 다른 신으로 섬기는 미신에 빠집니다. 그것들은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만족과 기쁨이 생기지 않습니다. 죄만 수미산처럼 쌓을 뿐입니다. 다른 신을 얻기 위하여 애쓰는 동안에 불상에 절하지 않더라도, 미신이라는 어미가 낳은 우상숭배의 동생들로 내 삶이 가득 차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미신을 출발점으로 삼는 삶의 방식들은 모두 우상숭배의 동생들입니다. 직접적인 우상숭배는 아닐지라도 우상숭배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삶의 방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제1계명을 어겼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제1계명을 어길 때 다른 신을 두게 되고, 미신이 지배하는 삶을 살며 제2계명을 어기게 됩니다. 또한 이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며 제3계명을 어기게 됩니다. 많은 기독교 종교인들이 마음에 다른 신을 두고 미신에 빠져있으면서도 ‘나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죄가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구원 받았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7절에서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당을 다니는 기독교 종교인들 중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가 씻겨 구원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십자가를 생활화하며 다른 신을 좋아하려는 성향을 십자가에서 죽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에게 ‘지옥을 향하는 너희의 죄악은 그대로 남아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2계명인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와 제3계명인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이러한 상황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신을 마음에 두는 미신을 타파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상숭배를 장자로 하는 동생들이 삶의 방식으로 채택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일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이 우리 삶에서 완전히 근절되는 2025년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미신이 낳은 우상숭배와 우상숭배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삶의 방식들로 삶이 지배되어 왔음을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다시 한번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하여 분발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불쌍히 여겨주셔서 미신을 근절하게 하시고, 그리하여 미신이라는 어미가 낳은 우상숭배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삶의 방식들이 뿌리째 뽑히고 발붙이지 못하도록 은혜 위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