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0,1)복음방송

생명책속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_태승철

작성일
18-06-22 10:02
작성자
태승철
조회
5,838
구원 받았다고 무조건 고집 부리듯 확신만 할 것이 아니라, 구원 받았음을 확인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 오해부터 제거해야지요. 내가 하는 것을 봐서 하나님 기준에 괜찮으면 비로소 생명책의 백지 부분에 내 이름을 기입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이미 생명책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다만 합당하지 못한 사람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나가시는 것이지요. 그럼 대체 무엇이 우리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지게 할까요? 마음의 무단이탈입니다.

생명책속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

(이사야 4:1~6)

 

 

2.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3.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5.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6.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생명책속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생명책속 이름이 지워지는 이유

생명책속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가 이름이 지워진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오늘 남은 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은 자사상은 신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용어이고 이사야에서 더욱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온 세상과 이스라엘조차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고 있었을 때에, 엘리야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키고 있는 자가 오직 나만 남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직 바알과 아세라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가 칠천 명이나 남아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남은 자가 이런 의미입니다.

이 남은 자와 생명책의 이야기가 본문에 같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생명책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명책은 내가 이 땅에서 사는 모습을 내려다보시던 하나님께서 저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해서 내 이름을 적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서 사는 모습을 봐서라는 얘기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면, 예수님을 믿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 35절에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사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올바르게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보아서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이름을 지워 가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생명책에서 나의 이름을 지우실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짓는 요소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바로 마음의 무단이탈이라는 것입니다.

무단이탈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우리의 마음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무단이탈을 할 때에 이름을 지워버리신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미군부대로 배치가 되어서 평택의 교육대로 갔습니다. 카투사들이 한 달 넘게 평택 교육대에서 미군부대 생활전반에 걸친 교육을 받고 자대배치를 받습니다. 교육을 받을 때에 미군부대에서 사용하는 중요한 단어들을 가르칩니다. 그 때에 배운 단어 중에 기억나는 것이 ‘AWOL(absent without leave, 무단이탈)이라는 단어입니다. 미군부대가 한국군대와는 다르게 느낌이 훨씬 자유스럽고 어떤 때에는 recreation센터에서 근무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 센터는 여러 가지 놀이기구들이 있어서 미군들이 와서 놀고 쉴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서 일을 하다 보면 노는 것인지 일을 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근무지를 이탈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무단이탈(AWOL)’이라는 단어를 제일 먼저 가르쳤습니다.

군대에서 무단이탈을 하면 영창에 가는 것처럼, 마음이 무단이탈하면 지옥으로 갑니다. 생명책에서 우리 이름을 지워버리는데,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1절 부분은 앞장에서 좋겠다.’라고 의지하는 모든 것을 제거할 때에, 우리가 의지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면 좋겠다, ~이루어지면 좋겠다, ~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의지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예를 여자들이 장신구들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도 의지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1절에는 하나님 이외의 이 세상을 향하여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하며 살았던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서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서 다 죽었습니다. 또한 여자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한 남자에게 붙어서 다른 여자가 많아도 괜찮고 먹고 사는 것 책임지지 않아도 좋다. 우리 스스로 벌어서 먹을 테니 제발 당신의 아내라는 이름만 갖게 해 달라고 하는 때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한편 같은 심판의 때가 임하는 그날에 아름답고 영화로움에 반하고 공감하고 취하는 장면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읽었습니다.

2절에 그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암호 같은 말입니다.

3절에는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책이고 생명의 책인데 여기에 시온에 남아 있는 자와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들이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날에라고 하는 말은 심판의 날이면서 동시에 수치의 날이고 아름다움과 영화로움을 발견하게 되는 날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남은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남은 자들은 바로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자들을 말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싹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호와는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전능하시고 강력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은 대지를 뚫고 나오는 초록색은 너무너무 연약해보입니다. ‘여호와의 싹이란 예루살렘 성전을 말하는 것이고, 예루살렘 성전의 의미를 완성시킨 예수님을 예언적으로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면 예루살렘 성전과 예수님이 여호와의 싹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온 세상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업신여기는 판국에, 마치 광활한 대지를 뚫고 녹색 점처럼 나오는 싹이 있습니다.

TV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들을 들어보고 사람들이 산책하면서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거기에 어디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많이 가지면 좋겠다는 소리가 없습니다. ‘~하면 좋겠다.’라는 소리뿐입니다. 예외 없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업신여긴 상태의 생각들과 상황들과 사건들이 이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점과 같이 작은 지점에서만 하나님의 상징인 말씀의 돌판이 하나님이 인격적 존재임을 가르치십니다. 즉 말씀하시므로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대지를 뚫고 나오는 연약한 싹처럼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희미한 등불처럼 보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유대나라 예루살렘조차도 성전을 돈 버는 장소로 바꾸었습니다. 또한 의롭게 사는 척하는 바리새인들을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대제사장도 돈이 좋아서 로마와 결탁하고 장사꾼들과 결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온 땅이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하나님을 버린 영적상태가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오직 나사렛 청년 예수 안에만 하나님이 살아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만 하나님 아버지를 더 가지면 좋겠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들을 더 많이 이루어야겠다.’라고 하면서 살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의 싹은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가 법궤를 품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어서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바로 번제단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의미합니다. ‘땅의 소산은열매를 의미합니다. 번제단에서 이루어지는 일의 결과들을 영화롭고 아름답게 보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들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것만 향해서 좋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피난한 자들은 이상하리만치 지성소의 살아계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말씀의 돌판이 모셔져 있는 것을 아름답고 영화롭게 본다는 것입니다. 영화롭다는 것은 영광스럽다는 것인데 영광스럽다는 것은 일등 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들 중에서 최상급으로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지성소에 하나님의 법궤가 보존되어 있는 모습이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고, 또한 번제단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역시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나,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보고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1장에서 이스라엘의 영적타락을 책망하는 가운데 성전 뜰만 밟을 뿐이라고 하시면서 제사를 지긋지긋하게 여기신다.’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에서 피난한 자라는 의미는 3절에서 나옵니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받으리니라는 말씀입니다.

즉 아름다운 것들 중에 일등으로 아름다운 지성소가 있는 성전과 아름다운 열매들 중에 내가 먹을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열매들 중에 일등으로 아름다운 번제단이 있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마음이 피난 온 것을 의미합니다.

여전히 몸은 예루살렘 성전을 들락거리며 하나님이 지긋지긋해 하실 정도로 제사를 많이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이 다른 데 가있습니다. 마음이 돈에 가있고 자식에 가있고 건강에 가있고 승진에 가있고 오락에 가있고 취미에 가있고 여행에 가있고 친구들이랑 노는 데 가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은 다른 데 가있으면서 예배당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난 한다는 것은 몸이 어디에 있든지 마음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마음을 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여호와의 싹인 성전의 지성소를 아름답게 보고 번제단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름답게 봅니다.

몸이 사업장에 있다면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마음까지 사로잡힙니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 몸이 함께 있는 그 장소에서 가족에 마음이 묶입니다. 그런데 이 피난하는 사람들은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묶여 있는 것을 죽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만주에서 피난을 내려오셨는데 공산당이 싫어서였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와 함께 있다면 내 마음에는 배우자가 공산당 같은 존재입니다. 내 마음은 지금 공산당 같은 배우자를 피해서 빨리 피난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 앞에서 가족 앞에서 직장에서 몸이 있는 곳에서 공산당들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피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공산당에게 잡혀버립니다. 공산당에 잡히면 다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그런 것처럼 몸이 있는 곳에서 마음이 같이 묶여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싹이 아름다운 것 중에 가장 아름답고, 번제단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내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열매이고 가장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몸이 어디 있든지 마음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피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일부는 기록되고 일부는 기록되지 않고, 일부는 거룩하다 칭함을 받는 자가 있고 그렇지 못한 자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이 피난한 자들 중에서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결국 예루살렘에 남아서 생존하는 자들은 기록된 이름이 다 유지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이 예루살렘 성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 살아계심을 증거 하는 말씀의 돌판이 안치되어 있는 지성소이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것 중에 최고로 아름다운 것이 있기에 예루살렘으로 피난 가는 것입니다.

몸이 있는 곳에서 마음이 사로잡히면 공산당에게 잡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잡아 죽이는 것은 공산당입니다. 북쪽에서 만주에서 남쪽으로 피난 가는 것처럼 피난 가야 합니다. 돈 문제가 있으면 돈 문제는 공산당입니다. 이 공산당을 피해서 피난 가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 피난 가는 사람의 이름만 남게 되고 거룩하다는 칭함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은 지워 가시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의 이름은 다 생명책에 기록해 놓으시고, 이 땅에서의 삶의 모습을 보시면서 지워 가시는 것입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잔치를 열었습니다. 훌륭한 잔치일수록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다 뽑아서 초청장을 보냅니다. 심지어 자리에 이름까지 붙여놓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실 때에는 하늘나라에 우리의 이름을 다 붙여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자리에 이름을 붙여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는 동안을 기간으로 삼고 기다리십니다. 우리 마음이 하늘나라 좌석에 올라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인 지성소를 최고로 아름답게 보는 이유는 눈길이 그리로만 가기 때문입니다. 눈길은 아름다운 곳으로 가고 추한 곳으로 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눈길이 지성소로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연약한 싹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 하는 장소라고는 지성소 이외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마음의 시선을 주는 것이고 그리로 마음이 달려가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갖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4~5절에서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의 좌석이 있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보존되어 있는 지성소를 바라보듯이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완벽하게 성취된 곳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곳에 나를 향해서 사랑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 발견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에 자꾸 시선을 줍니다. 아름답기 때문에 시선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몸이 있는 곳에 머물러 있으면 공산당 같은 배우자, 공산당 같은 남편, 공산당 같은 귀여운 자식, 공산당 같은 재물, 공산당 같은 사업, 공산당 같은 컴퓨터게임, 공산당 같은 나의 취미 등에 의해서 마음이 붙잡힐 수밖에 없기 때문에 피난 가는 것입니다.

 

피난 가면 그곳에서 번제단의 열매가 가장 귀합니다.

번제단의 열매는 이 세상 것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근성의 체질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그리워하고 하나님만 좋아하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열매 즉 부활의 열매를 가장 아름답게 보게 되므로 계속해서 마음이 십자가로 피난 가는 것입니다.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이름을 기록해놓으신 자리로 마음이 오고 있나 보십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이 세상 중에서 있어야 될 유일한 자리 즉 배우자 자식 가족 직장 일 건강 등에 묶여 있으면 안 됩니다. 마음이 올라가려면 하나님께서 천지간에 정해놓으신 우리 마음의 지정 좌석이 있습니다.

내 마음이 있어야 될 자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골고다 언덕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있기만 하면 계시록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너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게 되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됩니다.

이 자리로 피난 가야 합니다. 배우자에게 잡히지 않고, 돈에 잡히지 않고, 건강에 잡히지 않고, 자식에게 잡히지 않고 마음이 피난 가야 합니다. 붙잡히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 자리에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 자리에 가지 못하는 것이 무단이탈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아예 무단이탈의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벗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우자와 대면하고 있을 때에 마음이 벗어나는 것을 무단이탈로 생각합니다. 돈 문제가 있으면 돈 문제를 벗어나는 것을 무단이탈로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이미 무단이탈된 상태이기 때문에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름표를 적어놓으신 하늘에 있는 내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연합해서 부활승천하신 주님 따라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이 내 이름표를 써놓으신 좌석에 내 마음이 가서 앉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책을 드시고 출석을 부르십니다.

홍길동이라고 적힌 좌석에 홍길동 마음이 없으면 기다려 보십니다. 끝내 오지 않을 때에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지우십니다. 이름표가 붙은 좌석에 마음이 앉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마음이 앉아 있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기쁨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만족으로 여긴다는 것이고 만족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적 체질은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여전히 돈이 만족이고 건강이 만족이고 자녀의 형통이 기쁨입니다. 그래서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이 세상에 대해서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승천하신 주님을 따라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서 내 이름표가 붙은 좌석에 내 마음이 앉게 합니다.

내 마음이 앉지 않은 좌석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생명책의 이름을 지우십니다. 태승철 이름을 불렀는데 지금 이 세상에서 십자가 복음방송을 잘되게 하겠다고 마음이 다 가있습니다. 하늘에 올라가 있지 않은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방송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 내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끝내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지 않으면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십니다.

모세도 내 이름을 지울지언정 이 백성을 살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실 때에 여러분의 마음이 하늘에 올라가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지워 가십니다.

우리 마음이 있어야 할 장소인 하늘에 어떻게 올라갑니까?

이 땅에서 유일하게 마음이 머물 장소는 예수님의 십자가요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마음이 머물도록 지정하신 자리에 마음이 머물러 남은 자가 됨으로써,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여전히 뚜렷하게 기록되어 보존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십자가가 가장 아름답고 영화로운 것 중에 일등인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믿게라도 해주셔서, 오늘도 하루 종일 하나님께서 있어야 될 장소로 지정해주신 십자가에 내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맬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럼으로써 생명책에서 뚜렷이 빛나는 이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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