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0,1)복음방송

등 돌려야 일어나는 정면돌파_태승철

작성일
17-04-26 09:06
작성자
태승철
조회
7,208
'정면돌파' '정면승부'가 어려운 것은 종종 정면이 어디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도 위기의 회사가 있다면 정면돌파는 고리대금이라도 받는 겁니까, 그대로 부도 처리하는 겁니까? 모든 문제의 정면을 나는 정확히 대면하고 있기나 한 것일까요? 모든 문제나 난국의 정면은 오직 창조주시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만이 대면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만사의 정면은 오직 하나님 몫이요 특권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정면은 오직 하나님 얼굴의 정면일 뿐이지요.

등 돌려야 일어나는 정면돌파

(에스더 4:1~17)

 

 

9.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알리매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12.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등 돌려야 일어나는 정면 돌파>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등 돌려야 일어나는 정면 돌파

우리가 정면 돌파라는 말의 뜻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 정면 돌파를 경험해 보았는가를 돌아본다면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정면 돌파라는 말을 흔하게 사용하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요즘 대선이 한창이라 후보들이 토론을 합니다. 주어진 질문에 대해서 회피하기도 하고, 답을 미루기도 하며 동문서답을 하는 경우도 봅니다. 어떤 경우에는 문제시 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자료를 제시해 나가며 대처해 나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정면 돌파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면 돌파에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대하는 곤란한 상황들에 대한 정면 돌파는 단순히 직접 관계함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직접 다루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가룟 유다에 의해 팔리시면서 까지 놔두시는데 이것이 진정한 정면 돌파입니다.

요한복음 1910~1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실 때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신 후에 자기변호를 하지 않고 침묵하셨습니다.

당신을 재판하는 상황에 대하여 직접 관여하지 않으셨지만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정면 돌파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섭리하시기 때문입니다.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에도 예외 없는데, 더구나 선민은 머리털 하나까지 다 세신 바 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문제들과 곤란한 상황에 대한 정면이 무엇인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우리로서는 사건의 정면이 어디인지를 모르기에 정면 돌파를 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봅니다. 영어로 정면 돌파의 뜻을 가진 관용어가 있습니다. “take the bull by the horns(황소의 뿔을 잡는다)”라는 말입니다. 황소가 씩씩거리고 침을 흘리며 김을 뿜어대고 앞발과 뒷발로 밀어대고 있는데, 장사가 황소의 두 뿔을 잡고 버티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이것을 바로 정면 돌파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선민의 정면 돌파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와 상황과 사안에 대한 정면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문제의 정면을 바라볼 수 있는 당사자는 하나님뿐이시며 하나님의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황소 같은 문제의 뿔을 붙잡고 있다면 하나님의 정면을 가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달려드는 황소를 돌아가거나 회피하려 한다면 그 문제가 하나님 앞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황소가 달려들 때에 등을 돌리고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향해서 간다면 황소 같은 문제의 정면은 저절로 하나님 앞에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창조하신 피조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피할 필요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제들에 대하여 때로는 피하기도 하고 에둘러 돌아가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도 항상 정면으로 대하십니다. 다만 내가 하나님과 문제 사이에서 방해를 할 뿐입니다.

우리에게 허락 된 정면을 대할 권리는 하나님의 얼굴뿐입니다. 우리에게는 문제의 정면을 마주대할 권리와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언제나 우리 마음을 중심으로 이 세상의 문제에 대해서 대칭으로 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세상의 문제를 향한다면 하나님께는 등을 돌리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께 등을 돌리면 그 문제의 정면을 가리게 됩니다. 우리가 뿔을 붙잡고 있든지 도망을 가든지 한다면 하나님께서 문제의 정면을 마주하실 기회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를 대할 때마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문제의 정면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만 허락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가 온 문제들에 대하여 등을 돌리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서 문제에 등을 돌리고 하나님께 나간다는 것은 문제를 끌어안고 해결받기를 기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로 인해서 생긴 염려로 가득한 마음이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쁨과 평강으로 충만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모든 문제에 대한 정면 돌파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예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만에게 경배하라는 왕의 명령까지 어기면서 십계명의 제1계명을 목숨 걸고 지킨 모르드개로 인해 제국 내의 유다민족 전체가 멸절위기에 처하게 된 모습이 나옵니다. 이러한 위기에서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보여주는 대처 방법이 바로 선민들의 정면 돌파입니다.

먼저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이 왕이 내린 조서를 보고 애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금식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눕습니다. 모르드개는 굵은 베옷을 입고서 궁궐 안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했기에 대문 밖에서 대성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부정하게 여기는 베옷을 입고는 왕궁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왕후였던 에스더는 직접 그들에게 갈 수도 없던 입장이었기에 내시 중에 한 사람을 시켜서 사정을 알아보게 합니다. 모르드개는 왕후 에스더에게 민족말살의 위기에 대해 알리고 대처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왕에게 부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리며 왕 앞에 함부로 나갔다가는 죽임을 당할 것이리라 대답합니다.

우리가 앞서 모르드개가 내시들의 모반을 고발하여 왕을 구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왕에게 가장 가까운 자들이 왕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에, 항상 시위대가 숨어서 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왕의 허락을 받지 않은 사람이 나타나면 호위병이 쏜살같이 나타나서 보자기를 씌워 데려간 후에 칼로 죽였다고 합니다. 왕후 에스더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나갔다가 왕의 의심을 받는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호위병들에 의해서 참수를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에스더의 대답에 대해 모르드개는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합니다.

이 모든 위기가 제1계명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으로부터 시작되었기에, 이 위기에 같이 대처하지 않는다면 제1계명에 대한 각오도 없는 것으로 여기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하고 왕 앞으로 나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살펴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민족말살이라는 대규모 위기는 모르드개 한 사람에 의해 일어난 일입니다. 모르드개는 왕이 내린 하만에 대한 경배 명령을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충돌하는 것으로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제1계명을 기억하는 선민으로서 하만에게 경배할 수 없었기에 이러한 난리가 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경배했다면 이러한 위기가 닥치지도 않았을 것이고, 다른 선민들도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경배를 했든지 말았던지 관심도 없었을 것입니다. 설령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민족말살의 위기를 생각해서 신앙적 고집을 꺾고 하만에게 찾아가 용서를 빌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민족을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모르드개의 태도는 무책임합니다. 지금 현재 하만에게는 유다 민족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권세가 있는데도 그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재 위에 앉아서 재를 뿌리면서 통곡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유대인들이 곤란에 처했을 때에 그 원인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향하려 하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 세상에 대해 마음이 죽고 하나님을 향하려 할 때에 이러한 태도를 취했던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경배하는 것을 거절함으로서 발생한 멸절위기에 대해 정면 돌파를 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정면 돌파를 위해서는 하만을 찾아가야 합니다. 뇌물을 바쳐서라도 용서를 구하고 경배를 약속하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이러한 정면 돌파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더 다가가기 위해 금식하고 재 위에 앉아서 통곡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민족의 멸절위기조차도 스스로 손을 댈 수 없음의 고백입니다.

에스더에게 관여하라고 한 것 또한 정면 돌파의 책임을 넘긴 것이 아닙니다. 1계명으로 인해서 온 민족이 위기에 처했는데 에스더 또한 이 제1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기를 촉구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에스더가 제1계명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다른 선민들을 구원하실 때에 에스더는 망하게 될 것이라는 조언입니다. 민족의 위기에 참여하지 않음은 결국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것이라고 설득했던 것입니다.

결국 에스더도 소뿔을 잡으려는 정면 돌파를 포기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을 합니다. 왕 앞에 나가서 죽을지 살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음으로는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왕이 잠시라도 의심한다면 호위병들이 번개처럼 나타나서 에스더를 칠 것입니다. 왕에게 갔을 때 왕이 졸고 있기라도 해서 규를 허락받지 못한다면 어떡할 것입니까? 더 날카롭게 주변을 살피던 호위병들이 달려들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앞두고 에스더는 이미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곧 문제에 대해 마음이 죽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든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민의 정면 돌파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돈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선민으로서의 정면 돌파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황소의 뿔을 붙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우회해서 돌아가려 한다면 문제라는 황소는 하나님의 정면을 벗어나 이탈할 것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에 의한 정면 돌파는 방해를 받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정면을 대할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자격 없는 피조물에게 허락하신 유일한 정면은 오직 하나님의 얼굴뿐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닥쳤을 때에 그 문제에 깊이 관여되기를 원하고 고민하고 생각합니다. 유일하게 허락된 하나님의 얼굴에서는 등을 돌리고 이 세상을 향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결심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관여하고 있는 문제가 어떻게 되든 나와는 상관이 없으며, 문제에 대해 죽고 제1계명처럼 하나님만을 향하는 결심입니다. 그럴 때에 문제의 정면은 하나님 앞에 놓이게 됩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손대실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선민들의 정면 돌파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정면 돌파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십자가를 생활화하는 것은 내 생애에 주어지는 크고 작은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정면 돌파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면 돌파는 십자가에서 그 문제에 대해 죽고 등 돌리는 것입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등 돌리고 죽은 문제에 대해서는 이 문제가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은 십자가에서 문제에 대해 죽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문제가 어떻게 되든 그것으로 기쁨이나 슬픔의 이유를 삼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자녀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고민을 정면 돌파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정면 돌파는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녀 문제로 인해 슬퍼하거나 기뻐하지만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의 부활 승천의 길을 따르는 자들은 문제로 인해 슬퍼하거나 기뻐하지 않습니다. 자녀 문제가 어떻게 되든지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정면 돌파하고 계심을 믿고 문제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으로 인해 기쁘고 만족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에 대해 죽는 것입니다.

말은 죽는다고 하면서도 실눈을 뜨고 하나님이 어떻게 해결하시는가를 지켜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 문제와 상관이 없는 기쁨을 하늘로부터 얻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할 때에 문제의 정면은 하나님을 향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마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황소의 뿔을 붙잡으시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품에 안겨서 평강을 누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문제의 황소 뿔을 붙잡으시고 뜻대로 펼쳐나가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면 돌파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믿음 없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없는 등 돌리고 이루는 정면 돌파가 십자가 생활화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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