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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0)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0)’ 갈6:14

말살위기 대한 말살위기 처방_태승철

by 태승철 · 17-04-25 10:27 · 7,487
“영적자아는 만족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 자아는 존재하는 것 자체로 만족합니다. 존재의 뿌리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수도승이었던 토마스 머튼이 '묵상의 능력'이라는 책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존재의 뿌리'와 '만족'이라는 단어의 연결이 흥미롭습니다. 만족을 가져오는 존재의 뿌리를 어디에다 두느냐 하는 점에서 선민 됨이 성립합니다. 선민 됨의 말살위기를 선민의 말살위기로 처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말살위기 대한 말살위기 처방

(에스더 3:1~15)

 

 

1.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2.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3.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4.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

5.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6.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말살위기 대한 말살위기 처방>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말살위기 대한 말살위기 처방

말살위기가 초래하여 그에 대한 처방을 내렸는데 그것이 또 다른 종교의 말살위기가 된다는 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우아하고 세련된 스타일의 와인이 생산되는 프랑스의 보르도 지방에는 지롱드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왼편으로는 메독 지역이 있고 다시 그 남부에는 마고 지역이 있습니다. 이곳은 보르도 강 유역에서도 땅이 가장 성글고 자갈이 많은 토양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포도나무를 심으면 나무는 물을 찾아 땅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마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다른 지역에 비해 맛이 섬세하고 우아한 단맛과 귀족적인 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마고에서 가장 유명한 포도원인 샤토 지스쿠르 같은 경우에는 1ha당 무려 1만 그루가 넘는 포도나무를 심는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토양이 성글어서 물과 양분이 부족한데 포도나무 간의 생존경쟁에 의해서 뿌리는 더 깊게 내려갑니다. 이러한 이유에 의해서 이곳에서만의 포도주의 다양한 매력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토마스 머튼 수도사는 영적 자아는 만족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 자아는 존재하는 것 자체로 만족합니다. 존재의 뿌리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존재의 뿌리를 내렸다면 이 세상에서 만족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일 것입니다. 존재의 뿌리와 만족을 연결시킨 것이 참 탁월합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마음이 비어있음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 빨아들이는 힘을 발휘하고 그것이 삶의 존재양식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빨아들이기 위해서는 뿌리를 내려야만 합니다. 마고의 포도나무들이 뿌리가 닿는 곳으로부터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듯이 사람의 살아있는 증거가 나타나게 됩니다.

생목과 사목의 차이는 뿌리가 있고 없고 입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마음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빨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빨아들임의 성공적인 결과가 만족입니다. 빨아들이는 것이 곧 삶이고 마음이 이러한 작용을 하기 때문에 존재를 뿌리에 비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존재의 근거는 뿌리가 닿는 곳에 있습니다. 마고의 포도나무들이 12m아래까지 뿌리를 뻗어서 양분과 물을 빨아들이듯이, 존재의 근거는 뿌리가 닿는 대상에 의해 결정됩니다. 내 마음의 공백을 채워 주리라고 믿어지는 대상이 바로 존재의 근거가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제1계명에서 나 외의 다른 신을 신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곧 하나님 이외의 다른 대상을 존재의 의미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마음의 공백에 만족과 기쁨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 외의 다른 대상에게 뿌리를 내려서 빨아들이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빨아들임으로서 마음의 공백을 채우라고 말씀하신 것이 제1계명의 의미입니다.

에스더서에서는 선민이 말살위기에 처한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데 선민은 누구입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의 존재의 뿌리는 이 땅의 대상을 향해 있습니다. 그러나 선민은 차별화를 위해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의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리는 자들이 아니라, 하늘로 높이 뿌리를 내리라고 선택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선민 됨과 오늘 본문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내용을 보면 왕이 하만을 총애하여 총리의 자리에 등극시킵니다. 그리고 특별한 명령을 내려서 예를 갖추어 하만에게 경배하도록 하는데 하만이 혁혁한 공을 세웠던 것 같습니다. 이 공로에 대한 상으로 총리에 앉혔는데 주변의 모든 대신들이 볼 때에는 이 승급의 절차가 부당할 정도로 급작스럽고 파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만을 품은 대신들이 총리자리에 앉은 하만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고 업신여기거나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을 염려해서 특별히 하만에게 경의를 표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상급자에 대해서 하급자가 예의를 갖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굳이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명령을 내렸다는 것에서 앞서 말한 것 같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왕의 명령이 모르드개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모르드개가 스스로를 유다인임을 밝힘으로서 알 수 있듯이, 유다인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유형의 경배를 요구하였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의 판단에 의하면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경배를 하는 것은 단순히 상급자에 대해 예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제1계명을 어기는 것으로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한 사람의 저항 때문에 페르시아 제국 내에 살고 있던 모든 유다 민족이 멸절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하만이 모르드개가 예를 갖추지 아니하고 경배하지 않는 것을 보고 화가 났는데, 주변 사람들이 모르드개가 유다인임을 알려줍니다. 그러자 하만은 모르드개 한 사람만을 벌하려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그가 속한 유다민족 전체를 죽이겠다고 계획하고 왕에게 인가를 받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가 궁금해집니다. 앞서 에스더가 왕후로 간택되고 모르드개가 왕의 암살음모를 드러내어 왕의 목숨을 구합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 되는 하만의 유다민족 말살정책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한 결정적인 준비 작업으로 나중에 밝혀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병 주고 약 주는 것처럼 유다민족의 말살위기라는 병이 오기에 앞서서 모르드개와 에스더라는 약을 준비해 놓으신 것일까요?

페르시아는 인종과 종족의 박물관과 같은 나라였습니다. 유다민족도 포로로 잡혀 이 나라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인종 박물관 속에서 유다민족이 선민답게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들이 선민 됨의 말살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혈통으로만 유다인일뿐 선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인식은 전무했던 것입니다. 다른 이방민족과 다를 것 없이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선민 됨의 말살위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시키기 위해서 채택한 처방전이 바로 하만을 통한 선민의 말살위기였습니다. 유다라는 한 민족 전체의 말살위기를 통해서 선민 됨의 말살위기를 극복케 하려 하신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라고 왕의 승인한 조서의 내용이 나옵니다.

이러한 조서가 온 나라 안에 공포되자 혈통상의 유대민족들이 다른 모든 민족과는 구분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유다인들 스스로도 이방인들과 똑같은 존재의 뿌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돈이나 사업형통이나 농사의 형통에 존재의 뿌리를 내린 채로 살고 있다가, 유다민족에 대한 말살위기에 처하게 되자 잃었던 정체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유다민족으로서 죽게 된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죽게 된 이유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결과 왕이 있는 도성에서 관리로 살고 있던 모르드개가 제1계명을 지키기 위해 왕의 명령을 어기고 하만이라는 총리에게 경배를 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이로부터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던 십계명 중에 제1계명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던 제1계명은 곧 마음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뿌리를 내릴 때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 이외의 이 땅의 어떤 것에 대해서도 뿌리내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쁨과 만족을 위해서 배우자와 자녀를 향해서도 안 되고 사업과 돈을 향해서도 안 됩니다. 지위와 승진을 향해서도 안 되고, 일류대학 합격을 향해서도 존재의 뿌리를 내려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늘을 향하여 뻗으라는 것이 제1계명의 의미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민들이 존재의 뿌리를 돈을 향해 뻗고 기쁨과 만족을 얻기를 원했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에 여호와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돈을 벌어 기쁨과 만족을 누리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것을 신앙으로 생각하고 선민으로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선민 됨의 말살위기를 극복하게 하시기 위하여 선민의 위기를 주셨던 것입니다. 선민의 위기를 앞둘 때에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되고, 그 정체성의 핵심인 제1계명의 준수를 생각하여 선민 됨을 되찾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은 우리 존재의 뿌리가 뻗어가야 될 길을 만드신 것입니다. 앞서 토마스 머튼의 영적 자아는 만족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 자아는 존재하는 것 자체로 만족합니다. 존재의 뿌리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보면 믿는 사람은 저절로 마음이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가 예수 믿고 세례 받고 나면 존재의 뿌리가 하나님께 고정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수면 위의 백조의 우아함 밑에는 끊임없이 헤엄치는 발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존재의 뿌리가 하나님께 있기 위해서는 우리의 원죄적 성향을 십자가를 생활화함으로서 날마다 시간마다 분초마다 죽은 것으로 고백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 존재의 뿌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가서 닿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싸움이 있어야만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할 때에 직장 동기보다 더 앞서서 승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러한 뿌리의 방향을 십자가로 끊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뿌리가 하늘에 닿으면 직장 안에서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들이 우리를 통해 내려오며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열매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요셉입니다. 하늘에서 계획된 일들이 땅에서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총리의 자리에서도 오직 하늘에 뿌리를 내림으로 하늘에서 계획된 열매가 땅에서 맺히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존재의 뿌리를 하늘이 아닌 이 땅에 있는 대상으로부터 마음을 채우려 할 때에 선민 됨의 말살위기가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선민 됨의 말살위기를 제거하시기 위해서 선민들에게 위기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을 향한 나의 주체와 인격을 십자가에서 말살해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선민 됨의 말살위기는 극복될 수 있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십자가 생활화를 통하여 이 세상을 향하려는 나의 주체와 존재의 뿌리가 말살됨으로서 선민 됨이 이 땅에 나타나 하늘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