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0,1)복음방송

자신감은 파국 점화 스위치_태승철

작성일
17-02-17 09:25
작성자
태승철
조회
7,816
자신감(自信感)이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사회는 그런 사람을 찾습니다. 자신감만으로도 괜히 있어 보입니다. 주저하고 걱정 많고 늘 불안과 열등감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 진취적일 수가 있겠습니까? 선망의 대상인 일류 직장에 취직이 되겠습니까? 괄목할 업적을 성취 하겠습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그런데 자신감을 복음과의 연관성 아래서 바라보면 이 모든 생각이 단지 오해일 뿐임이 드러납니다. 실제로 자신감은 엄청난 파국을 가동시키는 점화스위치입니다.

자신감은 파국 점화스위치

(역대하 25:17~28)

 

 

17. 유다 왕 아마샤가 상의하고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오라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18.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19. 네가 에돔 사람들을 쳤다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있으라 어찌하여 화를 자초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20.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자신감은 파국 점화 스위치>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자신감은 파국 점화 스위치

세상은 자신감이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자신감이 없어서 항상 주눅 들어 있고, 걱정과 염려를 달고 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열등감에 빠져 있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사람이 세상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루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자신감, 다른 사람들도 자신감 있는 사람을 찾고 나도 자신감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맥락에서 이 자신감은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입니다. 마침 오늘 본문이 그 자신감으로 인해서 파국으로 치닫는 아마샤 왕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신감이 복음적 맥락에서는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엄청난 파국을 가져오게 하는 점화 스위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게 닥쳐올 파국에 점등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복음적 맥락에서의 자신감은 무엇일까요? 자신감은 마음의 한 상태입니다. 무엇이든지 손대면 다 이루어질 것 같은 마음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여기며 어떠한 일이 꼭 될 것이라고 믿는 마음입니다.

마음은 비어있기 때문에 담게 됩니다. 먼저 이름이 담기고 그 이름이 가리키는 존재를 실제로 손에 쥐기 위해 추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마음의 작동원리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본래 하나님의 이름만을 담고 그 이름이 가리키는 하늘에 계신 존재를 추구하므로 마음의 빈 공간이 채워져서 만족하고 기뻐하라고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하나님 이외의 것을 담을 수도 있는데 곧 죄악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2절에서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라고 합니다.

마음에 돈을 담는다면 어떻게 해야 돈을 벌지를 생각하게 되고 돈을 버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들과 안 될 것을 가려냅니다. 이것이 마음에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게 실제로 추진한 끝에 돈을 손에 넣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이 자신감은 돈을 마음에 담은 상태를 굳히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자신감은 하나님 이외의 세상 것을 담은 상태를 굳히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감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는 성경에 자신감 있어 보이는 신앙의 선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법정에 섰을 때에 자신감이 있었고, 스데반 집사님이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도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런 자신감이 어디서 생겼을까요? 내가 믿는 복음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자신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자신감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목사님들은 교회가 크게 부흥해야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배우라며 세미나도 하고 개발한 프로그램을 자신감 있게 선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자신감은 사람이 많이 모였음에 근거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쫓아내시고 도망을 다니십니다. 그런데도 자신감이 있으셨습니다. 또한 다윗의 자신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단순히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마음에 하나님을 담고 기뻐할 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자신감(自信感)이 아니라 신신감(神信感)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아 보입니다. 저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믿고 저렇게 확신 있게 말하고 행동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자신감이라면 빠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는 얼마나 두려움과 겁이 많은지 모릅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아예 표방하고 나선 것이 겁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자신감은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마음에 담은 상태를 굳히는 것인데 오늘 본문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자신감이 닥쳐올 파국을 어떻게 점화시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아마샤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제 본대로 아마샤 왕은 이전에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이 독립하자 다시 복속시키고자 전쟁을 합니다. 삼십만 명 병력을 모집하고도 불안해서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십만 용병을 사왔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아마샤가 하나님보다 북 왕국을 의지했음을 책망했고 아마샤는 그 말에 따라 십만 용병을 돌려보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마샤는 전리품으로 얻은 우상을 숭배하게 됩니다. 이것을 선지자가 책망하자 아마샤는 오히려 역정을 내면서 16절에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라고 합니다. 그러자 선지자는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고 파국이 주어질 것을 예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일을 행하고라는 말이 바로 아마샤의 자신감입니다.

에돔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신 것은 앞으로는 국력신장이나 세력 확장의 가치를 마음에 담지 말고, 하나님을 담으라는 의미에서 전쟁의 승리를 통해 당신을 계시해 주셨는데, 아마샤는 전쟁에서 이기고 나자 하나님을 마음에 담는 대신에 세력 확장의 가치를 마음에 담은 상태의 굳히기로 들어갑니다.

우상은 내 마음에 무엇을 담더라도 나무라는 법이 없습니다. 돈을 담았으면 담은대로, 세력 확장의 가치를 담았으면 담은대로 그것을 위해 뛰라고 침묵합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모두가 다 굳히기로 들어간 상태입니다. 이 굳히기가 바로 자신감입니다.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 전쟁인데도 막상 이기고 나니 그것이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럴 때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마음에 하나님 이외의 가치를 손에 쥐고 싶어 할 때에 추진하게 되고, 그 때에 소기의 성과를 얻게 된 마음은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굳히기로 들어가게 됩니다. 성공한 것을 보니 이 길이 맞는 길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감에서 아마샤는 북 왕국 이스라엘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게 되고 전쟁의 결과 완전히 망해서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가고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지고 모든 금과 은이 약탈당합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뒤에도 신하들에게 배반을 당해 죽임을 당하고 끝이 납니다.

그런데 본문 16절과 20절에 보면 아마샤가 자신감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즉 자신감을 가지면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력 확장을 마음에 담지 않고 하나님 자신을 마음에 담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세력 확장에 대한 마음을 굳히기에 들어간 것입니다. 16절에서는 그것이 바로 자신감의 기초가 되고 그로 인해 멸망할 것임을 선지자가 예언했습니다. 20절에서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라고 또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멸망이 준비되어 있고 멸망을 준비하신 증거가 자신감으로부터 선전포고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감은 왜 파국의 점화 스위치가 될까요?

하나님 섭리 속에 자신감을 가질 때 파국으로 향한다.’라는 논리적으로 정해진 원칙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깊은 복음적 의미가 있는데 이 자신감을 복음의 본질적인 핵심으로부터 이해를 해보기로 합니다.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여기서 는 마음에 하나님 이외에 이 세상가치들을 담는 것입니다. 행동하기 전에 행위로 어떤 범죄를 행하기 전에 하나님 이외의 다른 가치를 마음에 담습니다. 그것이 있으면 마음이 만족하고 기쁠 것이라고 믿는 것들이 가치입니다.

여자들이 명품백을 들 때에 자신감이 생긴다고 합니다. 반대로 명품백이 없으면 자신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명품백이라는 가치가 마음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돈이라는 가치를 담고 나면 돈을 많이 벌 때에 자신감이 생기고 돈을 못 벌면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명품백을 진짜 가졌든지 못 가졌든지 행동으로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명품백이 있으면 기쁘고 만족하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 자체가 죄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자식을 담으면 그것이 죄입니다. 마음에 돈을 넣었다면 돈을 벌려는 행동 이전에 이미 그 자체가 죄입니다.

심지어 돈을 마음에 담고 교회에서 충성한다면 그것도 죄입니다. 마음에 돈을 담고 있는 상태에서 기도하면 그 기도도 죄가 됩니다. 마음에 자식의 형통을 담고서 기도하는 것도 죄가 됩니다. 마음에 나라를 담고서 나라의 형통을 위해 기도하면 그것도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이외에 마음에 담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 드린 대로 자신감은 하나님 이외의 것을 담은 마음을 굳히기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이 자신감이 파국 스위치가 됩니다. 주님이 나의 죄 때문에 죽으셨는데, 그 죄는 바로 마음에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 대신에 자식이나 나라나 취직을 담았다면 그것이 죄가 됩니다. 마음의 첫 번째 관심사가 마음에 담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셨다라는 것은 곧 마음에 돈을 담은 상태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죽으신 사건은 역사적으로 한 번 일어난 유일회적인 사건이지만, 그것이 신앙의 사건이 되면서 나의 모든 죄의 순간에 주님의 죽으심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마음에 하나님 이외의 자식을 담았다면 자식의 형통이 나의 기쁨이고 만족으로 여기는 마음의 상태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식을 담고 돈을 담고 직장을 담은 상태자체는 누구나 다 똑같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먼저 직장을 담은 것이 죄이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에서 그 마음이 죽은 것임을 보는 것입니다. 돈을 벌고 싶을 때도 주님의 십자가에서 내가 죽었음을 보는 것이고 명품 백을 갖고 싶을 때에도 주님의 십자가에서 그 마음이 죽었음을 고백하는 것이 복음 신앙이고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명품백을 갖고 싶어 하는 생각은 저주받은 상태이고 죄악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저주받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명품백을 갖겠다고 추구하면 죽음을 끌어안고 죽음을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23:27절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저주하시는데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죽으신 것이 지금 마음에 하나님 이외의 것을 담고 있는 상태의 죽음인데 돈을 벌고 싶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돈을 벌고 싶다는 상태를 전제로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은 죽음을 실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시체를 주무르는 것입니다. 죽음을 추진해 나가는 결과가 파국인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아마샤 왕이 북 왕국 이스라엘을 점령해서 세력 확장에 대한 가치를 마음에 담았습니다. 그 상태가 죄악입니다. 하나님을 담았는데 하나님께서 세력 확장에 대한 계획이 있으셔서 아마샤를 통해서 세력 확장을 하실지언정, 하나님을 담지 않고 세력 확장을 담았다면 상번제에서 어린양이 죽을 때에 번제단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그 죽음을 끌어안고 진행시키는데 사망을 진행시키는 것입니다.

돈을 담은 상태는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었으므로 그것을 인정하고 돈을 담은 상태에서 죽고 주님의 부활과 승천을 따라서 마음을 하나님께로 보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고 사망을 그대로 밀고 나갑니다. 그러다가 돈을 한 번 많이 벌었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돈을 벌면 되겠다고 그 사망의 상태를 굳혀버리는 것입니다.

자신감은 사망의 상태를 굳히고 사망의 상태를 밀고 나가는 것이고 사망을 추진하는 것이므로 파국입니다. 이게 복음의 핵심적인 원리로부터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자신감이라는 단어의 의미입니다.

 

오늘 하루 종일 사실 때에 무슨 생각을 골똘하게 합니다. 생각하는 것은 이미 마음에 담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골로새서에서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이야기를 맨 처음에 들으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이게 훨씬 쉽습니다.

생각하면 마음에 담은 것이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죽었음을 시인하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을 따라 마음을 하늘로 보내서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오셔서 직장문제 돈 문제 자식문제 배우자문제 나라문제 등을 다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납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처음부터 복음을 이렇게 배우고 가르쳤어야 하는데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담은 상태에서 복음을 얘기하다 보니 이상하게 되고 본래의 복음이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이 드는 것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대로 돈을 담았다면 돈을 담은 대로 추진해 나가는데 이게 어려운 일입니다. 돈을 벌겠다고 달려든 사람이 백 사람이라면 한 사람이나 법니까? 0.5사람이나 법니까? 사망을 밀고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이고 파국입니다.

삼성의 이재용 씨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돈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구속영장이 청구되느니 어쩌느니 하고 있는데 이게 사람 사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돈 소용없습니다.

자신감은 파국을 점화시키는 스위치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십자가 생활화로 자신감을 철저히 부수고 신신감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전체2785개, 현재1/전체186페이지
게시물 검색
No. 제목 주제 작성자 조회
2785 (S) ‘마라나타!’ 말로만 아닌 실제 준비_태… 요한계시록 22장 16절~21절 태승철 67
2784 속히 오신다더니 말을 실수하셨나?_태승철 요한계시록 22장 6절~15절 태승철 61
2783 일상적인 의식 안에 새하늘 새땅 담기_태승철 요한계시록 22장 1절~5절 태승철 64
2782 (S) 땅에 살 동안 천국 속 내 구역 짓기_태승철 요한계시록 21장 18절~27절 태승철 78
2781 새 예루살렘 성, 크고 황홀한 어우러짐_태승… 요한계시록 21장 9절~17절 태승철 93
2780 새 하늘과 새 땅 전에 헌 하늘과 헌 땅_태승철 요한계시록 21장 1절~8절 태승철 87
2779 (S) 행위책과 생명책의 증거 재판주의_태승철 요한계시록 20장 11절~15절 태승철 106
2778 천년 왕국 살다 잠든 사이 벌어지는 일_태승… 요한계시록 20장 7절~10절 태승철 103
2777 천년 왕국의 왕이냐, 세상 나라 노예냐_태승… 요한계시록 20장 1절~6절 태승철 106
2776 (S) 세상 실감 뭉개고 하늘 실감 북돋자_태승… 요한계시록 19장 13절~21절 태승철 90
2775 음녀 죽고 어린 양과 결합, 그다음은?_태승철 요한계시록 19장 11절~13절 태승철 112
2774 어린 양과 완전한 결합이 목표였다_태승철 요한계시록 19장 1절~10절 태승철 157
2773 (S) 왕과 재벌이 보면 벌벌 떠는 자들_태승철 요한계시록 18장 1절~24절 태승철 154
2772 하나님 없는 박탈감과 열등감의 광기_태승철 요한계시록 17장 9절~18절 태승철 162
2771 바벨론 음녀, 성공과 번영의 다른 말_태승철 요한계시록 17장 1절~8절 태승철 201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끝
onair온라인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