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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0)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0)’ 갈6:14

탄핵 정국을 통해 보는 참 믿음_태승철

by 태승철 · 17-01-17 09:44 · 7,258
해가 바뀌었지만 연일 나라 전체가 대통령 탄핵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습니다. 헌정사상 두 번째로 일어난 탄핵소추는 한 마디로 현직의 대통령이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합당한 사람인가를 헌법에 의거하여 판가름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드문 일인 탄핵은 실상 선민에게는 일상적으로 생활화 되었어야 하는 과제요 믿음의 절대적인 표현 방식임을 깨닫게 됩니다. 신의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생활화 된 탄핵 없으면 믿음도 없는 것이지요.

탄핵정국을 통해 보는 참 믿음

(역대하 7:1~22)

 

 

1.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2.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3.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탄핵정국을 통해 보는 참 믿음>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탄핵 정국을 통해 보는 참 믿음

탄핵이라는 말로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십자가 진리를 찾아보고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다 아시겠습니다만 탄핵은 일반적인 사법절차로는 처벌이 어려운 정부의 고급 공무원이나 신분이 강력하게 보장된 법관 등에 대해서, 국회가 헌법 또는 법률이 정한 바에 소추하여 처벌하거나 파면하는 제도입니다.

지금도 대통령 탄핵이 진행되고 있는데 현직에 있는 대통령이 대한민국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자리에 맞는 사람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자리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어서 탄핵이 결정되면 현직 대통령을 파면시키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실을 강조하며 말씀드리는 이유는 대통령의 자리에 맞는 사람이냐 아니냐를 우리 마음에 적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대통령의 자리는 한 나라의 권력이 집중된 가장 높은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에 맞지 않는 사람이 앉아 있다면 나라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력의 경계가 엄청나게 커지게 됩니다. 탄핵이 결정되면 국민은 또 새로운 대통령을 그 자리에 앉히기 위해서 누가 그 자리에 합당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 권한이 크기 때문에 걸맞지 않은 사람을 앉힌다면 결과는 엉망진창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보니 속된 말로 야매로 시술을 하는 사람들이 청와대를 들락거렸습니다. 그중에 간첩이라도 있었으면 대통령은 야매로 시술되는 도중에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는데 끔찍한 일입니다. 근본적으로 최순실이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 탄핵의 가장 큰 이유인데 우리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것이나 과장이나 부장 자리로 승진하는 것이나 내가 그 자리에 합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올라가기를 바라고, 그 자리에 합당한 사람이냐 아니냐를 찾는 것만을 문제시합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신의 자리가 있음을 망각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나라에 대통령 자리가 있고, 회사에는 과장이나 부장의 자리가 있듯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신의 자리가 있습니다. 대통령 자리는 나라마다 하나밖에 없지만 신의 자리는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요즘 연예인을 신격화하는 말들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유재석씨를 유느님이라고 부르고, 김연아씨는 여느님이라고 합니다. 또는 외모가 아주 뛰어난 여자연예인을 여신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 것처럼 신의 자리에 누구를 올려놓느냐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는 대통령의 자리에 최순실이 올라간 것인데, 우리에게 있는 신의 자리에는 도대체 누구를 올려놓고 신격화하느냐는 것입니다. 신의 자리에 누구를 올려놓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쑥대밭이 될 수도 있고 최고의 생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의 자리에 신의 자격이 있는 대상이 올라가 있느냐를 따져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탄핵은 헌정사상 두 번째입니다만, 우리는 탄핵을 일상화해서 살아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탄핵을 생활화하는 것이 참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의 모습인데 오늘 말씀의 주제가 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있는 신의 자리에 합당한 신이 올라오게 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읽었습니다. 솔로몬이 기도를 드리고 나자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서 번제물과 소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게 됩니다. 이를 본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는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것이 신의 자리에 합당한 대상이 올라왔을 때 나타나는 노래입니다.

영광이 가득하다는 것은 계속해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마음에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변화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을 때에 산 아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인데, 우리에게 있는 신의 자리에 합당한 신이 올라오게 될 때에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이렇게 신격화된 존재 앞에서 사람들이 갖게 되는 감정은 영광을 느끼며 신 외에는 보이지 않게 됩니다.

연애를 할 때에 상대방이 내 마음을 다 차지하게 되어서 오직 그 사람 외에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격화된 존재가 나에게 주는 특징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신격화 되어서 돈 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는 노래는 구약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장 정례화 된 문구입니다.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는데 우리는 이 의미를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선하다는 말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는 데가 있다라고 나옵니다. 우리도 이 선하시다라는 말을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하나님은 옳으시다, 하나님은 착하시다라는 하나님의 객관적인 도덕적 기준에서 보는 평가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의 선(Good)과 악(Evil)을 구분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선과 악은 도덕적인 윤리기준에서의 선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드렸듯이 모든 인간은 마음에 공백을 가지고 있고 그 공백을 채우려는 힘이 사람의 생명력으로 나타납니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의지와 결단을 가지고 추진하고 행동하게 되는 모든 일들이 마음을 채우기 위한 흡입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과 악은 내 마음을 채워서 그것만 가지면 만족할 것이라고 믿는 믿음의 분별력입니다.

철학자 헤겔은 선과 악을 분별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간이 사고하는 주체가 되었다는 것으로서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과 악의 구분은 사고를 하는 게 아니라 믿기 시작함으로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이외에 내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기 시작하는 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요새 입시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시에서 떨어진 학생이 정시를 보아서 서울대 합격을 했다면 부모님들의 마음이 정말로 좋을 것입니다. 바로 이 좋음이 본문에서 말하는 선함입니다. 입학을 비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내 자녀의 서울대 입학이십니다.’라는 말입니다.

또는 남편이 퇴직하여 사업을 시작했는데 2년 동안을 힘들어하다가 3년째에 대박이 났습니다. 들어간 모든 비용과 그동안 손해 본 것을 다 갚고도 넘치도록 돈을 벌었습니다. 이때에 사업이 가족들의 마음에 얼마나 좋게 느껴지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선하다는 말의 의미인데 하나님은 대박 난 사업이십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선하시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내 마음에 가득 채워질 때의 너무나 좋은 상태입니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은 그렇게 나를 좋아 하는 하나님이 바로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티끌 같은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비하심으로 내 안에 들어오셨다고 밖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는 노래는 자식이 서울대에 합격한 것 같은 좋으심으로 내 안에 들어와 계시고, 사업이 대박 난 것 같은 좋으심으로, 대선후보들이 대통령이 된 것 같은 좋으심으로 내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으로 인해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내 안에 들어오시게 된 것은 내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나를 긍휼히 여기셨고 나에게 이 좋음을 허락하시기 위해서 나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나를 창조하신 이유가 하나님을 주셔서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모습으로 느끼게 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전의 기능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들어오시기 위해 만드신 공백으로서의 신의 자리가 있습니다. 거기는 하나님이 들어가시려고 만드신 자리이기 때문에 마음의 공백은 신의 자리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솔로몬의 기도가 끝나고 번제물과 소제물에 하늘에서부터 불이 내려와서 번제가 드려지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복을 받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성전까지도 없애시겠다고 하시는데 뒷내용이 이상합니다.

13~14절에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가뭄이 생기고 병충해가 생기고 전염병이 생기는 참담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럴 때에 성전을 향해 기도를 한다면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치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자리에 최순실이 들어서서 대통령출마후보 수락연설과 대통령이 된 뒤의 기조연설에서도 최순실의 생각이 들어가고 내각회의뿐만 아니라 외국에 나가서 연설을 할 때도 최순실이 영향력을 미침으로서 이 사단이 난 것과 같은 상황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아무리 사업을 해도 돈이 안 벌려서 먹고 살기에 급급하고 빚을 져서 난리가 나고 병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상징적인 이야기로서 이것들 자체가 저주이거나 악한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몸에 말뚝과 같은 병이 있었던 것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겸비하여 하나님을 더 잘 섬기도록 하시기 위해서 주신 방침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구약에서의 이러한 재난들은 상징적으로 내 삶에 불행이 임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자리에 최순실로 인해서 나라에 난리가 났듯이, 우리 삶에 난리가 나는 이유는 마음의 신의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의 자리에 합당하지 않은 존재가 들어와서 지금 우리의 생활이 불행하게 되었고, 기쁨과 만족이 사라지고 감사가 없어졌습니다. 그럴 때에 뉘우치고 겸비하여 성전을 향해서 기도함으로 신의 자리인 마음에 들어와서 신격화된 대상을 탄핵하라는 것입니다. 신의 자리에 걸맞지 않은 것이 들어와서 신격화된 마음의 상태를 번제단 곧 십자가에서 죽이는 것입니다.

탄핵은 곧 죽이는 것입니다.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대통령이 아니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탄핵을 일상화하는 것은 마음에 들어와 신격화된 대상을 죽이는 것이고, 그것을 신격화시키는 내 마음 자체를 없애야만 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여론이 대통령의 탄핵과 더불어 새누리당의 해체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자리에 최순실이 들어와서 농단을 할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의 신의 자리에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들어오실 수 없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대상이 들어와 신격화가 되었을 때에 문제는 그 신격화된 대상만이 아니라 그것을 신격화 한 것은 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내 마음 전체가 그것을 신격화하는 동안에 죄악에 찌들어버렸기 때문에 그러한 내 마음 자체가 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그렇게 죽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 마음으로 다시 출발하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탄핵해야하는 신들이 무엇입니까?

배우자일 수 있습니다. 돈이 많은 부모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 최순실 사건에서 보듯이 돈이나 권력일 수도 있는데 돈과 권력을 신격화 한 사람들의 마지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최순실의 농단의 최종목적은 돈입니다. 이들 중에 머리가 좋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언론에서는 최순실을 무식한 아줌마로 취급하지만 실상은 몇 십 년 동안을 박근혜의 그림자로 붙어서 박근혜가 이 나라에서 갖게 되는 위상에 같이 접목돼 있으면서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정치를 익혀온 나름대로의 정치전문가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은 돈을 신격화하였고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을 만족하고 기쁘게 할 것이라고 믿어지는 대상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기뻐하거나 기쁘지 않은 이유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것을 통해 내가 지금 신격화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식이라면 자식을 신격화하는 나를 십자가에서 죽여야 합니다. 자식은 나를 기쁘게 할 수 없다며 탄핵하는 것입니다. 배우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로 인해서 기쁘거나 슬플 때에 깜짝 놀라며 그들을 마음에서 탄핵해야합니다. 마음 밖에서 존재하는 이들을 탄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 안에서 신격화된 이들을 탄핵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 마음의 신의 자리에 들어온 것은 내가 끌어들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박근혜 대통령을 대통령 자리에 앉힌 것도 국민이고 탄핵으로 이끄는 것도 국민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만 이루어지면 만족하고 기쁠 것 같아서 마음에 끌어들인 신격화된 대상들을 날마다 탄핵하는 것인데 이것이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나를 기쁘게 할 것이라고 믿어서 신격화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기에 내 삶을 걱정과 근심이 휩싸이게 만들었고 내 생활에 농단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탄핵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애초부터 하나님만을 최고로 여기며 섬길 것을 기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다른 것을 섬기는 악한 체질이 우리에게 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이 단순히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마음속에 돈을 신격화 했을 때에 신격화된 돈을 섬기는 방편으로 우상숭배가 채택되는 것일 뿐입니다.

가정이나 자식을 형통하도록 위한 것이 내 마음에서 신격화 되었을 때 불상을 채택한 것이지, 불상이 신이기 때문에 채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상숭배는 신격화된 것들을 섬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입니다. 우리는 내 마음에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있다고 믿어지는 그 대상을 신의 자리에 앉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원래 하나님으로만 채워지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자리에 다른 것을 올려놓는 상태를 일상적으로 탄핵하고 타파해나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죄의 체질로 태어났기 때문에 육체를 통해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것들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 자체로 우리를 멸망으로 규정하지는 않으십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탄핵할지를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신의 자리에 맞지 않는 모든 신격화된 것들을 일상적으로 탄핵하는 삶이 십자가 생활화인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는 탄핵정국이 우리 각자에게 있어서 일상화되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만이 나의 마음에 있는 신의 자리에서 유일한 신으로 경배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그럼으로써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통치하시는 일이 일어남으로 악한 마귀의 농단이 종식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