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0,1)복음방송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_태승철

작성일
17-01-14 10:34
작성자
태승철
조회
7,759
모든 백성이 예외 없이 각자 몫의 생애를 최고치로 끌어 올려 살 수 있는 나라! 성전을 지어놓고 드리는 기도를 통해 드러난 솔로몬의 속내입니다. 그런 나라가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지요. 왜냐하면 성전이 모든 백성 각자에게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가 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카드를 이용해서 생의 모든 순간에 끊임없이 죽음을 지불하면 최고의 생애는 저절로 주어진다는 확신이지요. 이러한 죽음 직불카드의 완성본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

(역대하 6:18~42)

 

 

18.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19.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주의 종이 주 앞에서 부르짖는 것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0.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1.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오늘 말씀 중심으로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

직불카드는 물건을 사면 카드계좌에서 직접 결제금액이 나가게 되는데 Debit카드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죽음 직불카드란 무엇일까요?

20171월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9.8%라고 합니다. 계산방식은 잘 알 수 없으나 이는 사상최고치로서 청년실업은 큰 문제입니다. 정부에서는 실업률을 가능한 낮춰서 발표하기 때문에, 실업 중인 사람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구직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에 한해서 실업자로 판단을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생들이 졸업 전에 회사에서 인턴으로 있는 것까지도 전부 직업이 있는 사람으로 치기 때문에 실제 체감 실업률은 20%를 넘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이러한 국가적 상황에서 나는 도대체 어떻게 처신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직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생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최고의 생을 생각하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생계를 위한 가계부채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겨우 입에 풀칠이라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을 소원으로 갖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최고의 생애를 꿈꾸십시오. 일반적으로 꿈을 꾼다면 5년 뒤나 10년 뒤의 일을 상상하겠지만, 최고의 생애는 얼마든지 실현이 가능하며 오늘부터라도 시작할 수 있으니 꿈꾸는 것도 아닙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담을 지으시기 전에 아담 안에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동안 단 하루도 예외 없이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대로만 된다면 최고의 생애가 되는 것입니다.

태초에 계획된 나의 일 년 나의 하루는 분초 단위로 계획되어 있지만, 우리가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운명적으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로서 이제부터라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계획대로 최고의 생애를 살 수 있을까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실망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죄를 짓지 않으면 됩니다.

본문 36절에 주께 범죄 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죄만 없으면 하나님의 계획대로 다 이루어져서 최고의 생애가 되겠지만, 범죄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이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도 나오고 로마서에서도 나오고 오늘 솔로몬의 고백에서도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를 준비하셨습니다.

이 카드를 써서 죄가 발생하는 순간마다 끊임없이 죽음을 지불하면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죄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모르면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가 준비되어 있어도 지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생애가 하나님의 계획대로 움직여져서 최고의 생애가 되기 위해서는 죄가 없어야 하는데, 이미 나는 유전 죄로 인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죄가 발생하는 순간마다 죄를 지은 내가 죽는 것인데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입니다.

사도 바울의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한 것은 하루에 한 번씩 죽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기준으로는 죄가 발생할 때마다 죽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 동안 이 죽음 직불카드로부터 얼마치의 죽음을 지불하면서 살았을까요? 사도 바울도 죄를 짓는 것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날마다 죄를 짓기 때문에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우리와 다른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죽음을 지불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를 지불하며 살았던 것이 사도 바울의 위대함입니다.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데반 집사님도 이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로 무한히 죽음을 지불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최고의 생애는 대체 무엇입니까?

최고의 생애는 인간 세상에서 만들어 놓은 기준으로 경쟁에서 일등을 하는 삶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일등을 최고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최순실 국정농단사건 때문에 국회 청문회에 많은 사람들이 불려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일등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민정수석을 했던 우병우 씨 같은 경우에는 18살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서 20살에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을 했습니다. 일등의 삶이지만 최고의 생애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었으니 일등은 했지만 요즘 돌아가는 것을 보니 최고의 생애는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관련자 중에 윤전추 씨는 헬스클럽에 오는 사람들을 지도하던 사람이었다가 3급 공무원으로 청와대에 들어갔습니다. 기가 막히는 일이지만 최고의 생애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들에 핀 백합화를 봅니다. 그러나 그것을 볼 때에 어디에 더 손을 대야 완벽해질지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 자체로 완벽한 백합화이기 때문입니다. 길가에 피어서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민들레조차도 어느 부분을 빼거나 추가를 해야 최고의 민들레가 될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민들레는 그 자체로서 민들레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고의 생애인 것입니다.

내 생애를 개선시키기 위해 무엇을 빼거나 더 첨가를 시켜야 될지를 모를 정도의 삶을 산다면 그것이 최고의 생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만을 위해 계획하신 것이 있습니다. 내 생애에서는 누구도 나처럼 살 수가 없는 삶입니다.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배운 것이 많고 아무리 외모가 출중할지라도 그 사람들이 나를 대신할 수는 없는 삶이라면 최고의 생애일 것입니다.

실업률 고공행진 속에서도 입사 1년 내의 퇴사비율이 27.7%라고 합니다. 그 이유 중의 많은 부분은 회사에서의 삶이 회장 한 사람을 위한 노예생활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노예생활을 하면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월급을 주는데, 나로서의 삶은 살 수 없기 때문에 취업자의 1/3은 그 귀한 취업 자리를 박차고 1년 내에 퇴사를 합니다.

그렇다면 100명으로 구성된 회사에서 각자가 최고의 생애를 살 수 있는 회사는 없을까요? 그러한 회사가 있다면 최고의 회사가 될 수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이 꿈꾸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고 지성소에 법궤까지 들여놓은 후에 기도의 내용을 보니 솔로몬의 속내가 드러납니다. 왕으로서 자신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 각자가 최고의 생애가 되기를 바라는 꿈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대단한 욕심인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에게 있어서는 성전이 건축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소원입니다. 성전은 곧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고 죄가 발생하는 순간마다 죽음이 지불되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계획은 분초 단위로 이루어지면서 최고의 생애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백성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은 솔로몬의 능력이 아닙니다.

성전의 두 기둥인 야긴과 보아스가 뜻하는 대로 그가 세우시고 그의 능력으로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백성 각자가 성전을 생활화해야만 합니다. 즉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를 가지고 죽음을 지불하며 사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향해서 하는 기도의 내용을 보면 한 마디로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것인데 너무 황당하지 않습니까? 성전을 지었으면 그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칭기즈칸과 같은 대제국을 이루기를 소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은 백성들이 함포고복하는 태평성대의 삶을 바랄 수도 있었습니다. 중국의 요순임금과는 비할 수도 없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 이름을 두시기 위하여 유일하게 선택하신 성전을 지었는데, 이 성전을 끌어안고 있는 나라와 백성들이 바라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솔로몬이 빈 것은 기껏해야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에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것이었는데 이게 끝입니다. 솔로몬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최고의 생애가 계획되어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망치는 것은 죄인데 범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들이 최고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성전을 생활화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지 성전을 향해 기도하여 죄를 사함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죄의 능력이 무효화되기만 한다면 누구나 최고의 생애를 살 수 있게 됩니다.

직장이 없고 돈이 없고 미모가 없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취직을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소원은 최고의 생애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최고의 생애를 위해서는 죄가 없어야 하는데, 나는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아셔서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를 준비하셨는데 죄의 상태가 되어버린 내가 죽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죄가 무엇인지를 반복하여 이야기합니다. 죄를 범함으로 일의 불통으로 표현이 된다고 상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 사람의 기준으로 불통한다고 해서 무조건 죄 때문인 것은 아닙니다. 초대교회의 순교한 사람들도 그러했고, 사도 바울도 몸에 말뚝이 박힌 것 같은 질병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상징적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죄는 구체적으로 범죄와 죄로 구분이 됩니다. 죄의 상태가 형성되면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범죄가 됩니다. 죄의 상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므로 성전을 향해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상태가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여기에서 죄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지 않음 자체가 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다 범죄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성전을 향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죄의 상태에서 죽게 되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최고의 생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는 것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 반복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구절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가리키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데 솔로몬이 이것을 명확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름과 이름이 가리키는 존재 사이에 거리가 있는데,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으로 붙잡고 이 거리를 없애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돈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가졌다면 마음에는 이 이름이 있지만 실제로 내 손에는 쥐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름으로서의 돈과 실제 존재로서의 돈의 거리가 있는데 이 거리를 좁혀서 돈을 손에 쥐려고 하는데 이것이 이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은 이름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붙잡을 수도 있는데 자식들의 성공하는 모습을 마음에 갖습니다. 그러나 자식은 아직 그 자리에 가 있지 못합니다. 이 거리를 좁혀가는 것이 자식의 이미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이미지를 쥐거나 이름을 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쥐고 있는 이미지나 이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간격을 좁혀가는 것을 말합니다.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저의 마음에 기억되고 있어도 실제 대통령의 자리와의 간격을 좁히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대통령의 이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재인 씨나 안철수 씨는 대통령이라고 하는 이름을 마음에 지니고 대통령의 자리까지의 간격을 좁혀 가려고 애를 쓰는데 그 이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간격을 좁히고 싶지 않거나 간격을 좁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간격 좁히는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하는 것입니다.

 

오늘 기도를 보면 삶의 다방면에 대해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몇 가지를 골랐습니다. 돈이라는 이름을 붙잡고 있으면 실지로는 없어도 그 간격을 좁혀가려고 하면 돈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소위 말하는 소원으로 나타납니다.

통일이 소원이라면 통일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분단이므로 실제 통일까지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 거리를 좁혀 가는 것이 통일이라는 이름을 인정하는 것이고 소원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붙잡았지만 실재이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므로 이 간격을 좁히는 것을 소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갖는 것을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게 죄가 아닌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을 갖고 싶어 하고 돈을 갖고 싶어 하고 통일을 소원하고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합니까? 내가 이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 존재가 내 손에 쥐어져야 기쁘고 만족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기쁨과 만족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죄입니다.

예를 들어 먼 갈릴리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면 좋겠다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이때에 그 상태가 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체질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대로 소원을 갖게 되는데 이게 죄를 생활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가 멋진 핸드백을 들고 가면 나도 저런 핸드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소원이 있습니다. 이럴 때에 명품 핸드백이라는 이름이 있고 실제 없는 간격을 좁혀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명품 핸드백이라는 이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죄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이름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만 적용됩니다. 이게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내 마음에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신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채워져야 기쁘고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께서 들어가시려고 만들어 놓은 자리입니다. 만족과 기쁨은 신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참 신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기적을 일으키고 못할 것이 없는 게 아니라, 인격적 관계에서 가장 첫 번째 속성이 기쁨과 만족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식도 애인도 배우자도 그 누구도 아닙니다. 대통령 자리도 돈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렇게 믿는데 이게 이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게 죄입니다.

그렇게 갈릴리 지방에 사는 사람이 이런 소원을 갖게 되면 그 순간에 상번제에서 일 년 된 어린양이 번제단에서 죽어가는 것을 생각하며 이것이 죄임을 깨닫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 죄의 상태에서 어린양이 죽는 것을 나의 죽음으로 제사장들이 계속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에 입금하고 있는데 이 입금되고 있는 죽음을 계속 쓰는 것입니다.

방금 그 죄의 상태에 대해서 죽었는데 자식 놈의 사고소식을 듣게 되자 자식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형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의 이름이 인정되지 않고 있는 마음의 상태가 죽음으로 지불되어서 없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식의 건강도 소원하지 말아야 되느냐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소원하지 말고 성전의 두 기둥인 야긴과 보아스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자식도 나보다 하나님이 더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십니다. 자식이 아프고 사고를 당했다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계획 속에서 사고를 통하여 깨닫기를 바라시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식이 사고를 당해서 당황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을지라도 그 사고자체도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음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자식의 손을 잡고 사자 밥으로 죽으면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자식이 나처럼 사자 밥이 되어서 죽는 한이 있어도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가 세우시는 것이고 그의 능력으로 행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 아이가 사자가 달려드는데도 두려움이 없는데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사자 밥이 안 되고 사는 게 하나님이 세우시는 게 아니라 사자가 달려드는데도 굳건하게 서있는 자식이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병우 씨처럼 사법고시 최연소합격이고 일등이 최고의 생애가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다른 이미지나 이름을 붙잡아서 소원이 생기는 자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내 마음의 기쁨은 하나님뿐이라야 됩니다.

모든 사람은 믿고 삽니다. 마음의 지성소에 붙잡는 것이 믿음입니다. 돈이나 자식이나 건강을 붙잡아도 믿음입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기뻐하는가를 점검하지 않으면 죄를 생활화하면서도 십자가 생활화를 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에 있는 목사님들 중에 십자가 생활화를 하자고 설교하지 않는다면 죄의 생활화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생활화 현실에 대해서 가장 깊이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사람은 십자가 생활화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 생활화는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를 가지고 무한히 죽음을 지불하며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체질은 끊임없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들의 이름을 인정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으려하고 그 간격을 좁히려고 합니다. 그래서 한도 무한대의 직불카드를 들고 나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제는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전의 모든 내용이 십자가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한 순간도 예외 없이 십자가를 보면서 사는 것입니다. 만화에 보면 카드를 들고 카드를 막 날리듯이 하는데 십자가를 쥐고 언제 어디서나 내 죽음을 카드 날리듯이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마음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이름을 인정하는 상태로 빠져 들어가고 맙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생활화하자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생활화하는 것은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말씀은 내용적으로는 눈 떠서 잠잘 때까지는 계속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보다 더 많이 이 카드를 쓰십시오. 주님의 십자가에서 무한대로 나의 죽음이 입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보다 베드로보다 스데반 집사님보다 무한대로 입금되어 있는 계좌에서 나의 죽음을 끊임없이 지불하면서 살게 되므로 모두가 하나님의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최고의 생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한도 무한대의 죽음 직불카드로부터 무한대로 나의 죽음을 지불함으로서 최고의 생을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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