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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0)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0)’ 갈6:14

별궁(別宮) 생활을 청산하자_태승철

by 태승철 · 16-10-19 19:17 · 7,895

베르사이유 궁전의 별궁 트리아농은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나폴레옹 시대의 별궁 말메종은 왕비 조세핀이 이탈을 도모하던 장소로 유명합니다. 당나라 현종이 며느리 양귀비를 애첩으로 맞아 정무를 뒤로하고 사랑을 나눈 화청궁도 마찬가지고요. 이렇듯 별궁하면 일상의 규칙이나 업무를 벗어난 분방함을 연상하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도 망합니다. 이유는 한 가지. 별궁생활에 흠뻑 젖어 빠져 나올 생각이 없기 때문이지요.

별궁(別宮) 생활을 청산하자

(열왕기하 15:1~38)

 

 

1.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이십칠 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2.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4.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5.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더라

6. 아사랴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7. 아사랴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오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별궁(別宮) 생활을 청산하자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별궁(別宮) 생활을 청산하자

임금님께서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 거하는 궁은 행궁이고, 일상적인 정무를 행하시던 궁은 법궁입니다. 그리고 천재지변이나 임금님의 자원에 의해 다른 곳에 가서 기거하게 되는 이궁도 있습니다. 이러한 궁과는 전혀 다르게 임금님의 일상적 정무와 상관없이 만든 곳이 별궁입니다.

왕이나 왕세자의 혼례 때에 왕비를 맞아들이는 곳이기도 했고 사신을 접대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별궁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연상되는 유명한 몇몇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의 별궁인 트리아노는 루이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스웨덴 백작과 외도를 했던 장소였습니다. 또한 나폴레옹이 왕비 조세핀에게 선물했던 별궁 말메종 역시 조세핀의 욕정으로 얼룩진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나라 현종이 며느리 양귀비를 아들에게서 뺏어 애첩으로 만들었던 화총궁도 있었는데 이처럼 별궁은 부분적으로 일상적인 정무를 벗어난 분방함을 느끼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로 이렇게 선민들이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별궁 생활에 빠져 있다가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멸망의 길을 가게 되는 모습이 나옵니다. 선민들이 별궁 생활을 너무나 좋아해서 도저히 빠져나오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도 선택한 백성들이 멸망의 길로 가는데도 내버려두실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선민이 멸망의 길로 가는 유일한 코스입니다.

우리는 별궁 생활에 빠졌다가 자발적으로 빠져나올 수는 없지만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과 바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빠져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별궁 생활을 너무 좋아해서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에 근거하여 말하자면 이렇게 별궁 생활에 빠지는 것이 선민이 멸망하게 되는 유일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본문에서는 남 왕국 유다의 10대 아사랴(웃시야)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무려 52년간을 통치하게 됩니다. 읽지 않았던 부분에는 남 왕국 유다의 아사랴 왕의 52년 통치기간 동안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이 바뀌는 역사의 내용이 나옵니다.

본문에서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21년 동안에 다섯 왕이 바뀌는 이야기가 나오고, 므나헴 왕이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 외에는 왕들이 전부 죽임을 당합니다. 폭도들에 의해서 정변이 일어나면서 왕이 바뀌는데 어떤 왕은 1개월이나 6개월밖에 통치하지 못하고 어떤 왕은 2년 통치합니다. 물론 20년을 통치한 왕도 있지만 다해서 21~22년 사이에 다섯 왕이 바뀌게 됩니다.

지금 현재 BC 750년에 여로보암 2세의 통치가 끝나고 30년이 흐른 뒤에 북 왕국 이스라엘이 망하고, 더 시간이 흘러 BC 586년에 남 왕국 유다도 망하게 되는데 그 망하는 길로 가게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멸망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걷는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의 패역함의 특징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남 왕국 유다에 대해서는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고 반복하여 표현하고 있고 북 왕국 이스라엘의 다섯 왕 모두가 여로보암의 죄를 따랐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맨 끝 부분에는 다시 남 왕국 유다의 아사랴 왕의 아들인 요담 왕의 이야기를 하면서 여전히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남 왕국 유다에서는 산당을 허물지 않은 죄가 멸망으로 가는 길이었고,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의 죄를 따른 것이 멸망으로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고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것을 본문에서는 별궁 생활에 비유하며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아사랴 왕을 나병으로 치셨다고 하십니다. 오늘 간단하게 소개된 이 내용이 역대하 26:21절에서는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고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별궁에 들어갔다는 것은 왕궁과 왕의 일상적인 업무로부터 끊어진 것인데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병환자로 별궁에서 살았다는 것을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다는 얘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십니다.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남 왕국 유다와 여로보암의 죄를 쫓은 북 왕국 이스라엘은 모두 한 가지 상태임을 의미하는바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서 나병환자처럼 별궁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별궁 생활의 상태가 결국 멸망으로 도달하게 되는 과정의 이유가 되는데 왜 별궁 생활로 비유한 것일까요? 이스라엘의 율법에서 나병환자는 격리되어야만 했습니다.

산당제사와 여로보암의 죄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주셨고 그 이름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름을 마음으로 붙잡고 이름이 가리키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얻어질 무언가가 아니라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이름을 붙잡고 존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유전 죄의 성향 때문에 기쁨과 만족을 얻으려는 마음의 주입구가 근본적으로 땅을 향해 있습니다. 이러한 원죄의 성향을 가지고 땅에서 기쁨을 얻으려는 것이 체질이 되어버린 우리들이 하늘의 하나님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땅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나를 죽여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전과 번제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전을 생활화하지 않고 끊어져버린다면 이것이 곧 산당제사와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는 행위로 발전하게 됩니다.

여로보암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금송아지에 붙였습니다. 산당제사의 매력은 우상숭배이기도 했으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과 계획을 따르지 않고 내 판단과 소원을 주장하려는 행위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상황을 별궁 생활로 비유한 것입니다.

온 천하 삼라만상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뜻이 임하면서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임금님으로서의 정무를 수행하신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속에서 나의 판단을 갖고 내 마음에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있다고 믿어지는 세상의 가치를 향해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은 믿음이 섞이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돈이 있어야 기쁘고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여기에는 선악과를 따먹은 타락의 결과로서 원죄의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돈은 나의 영적 간음의 상대가 됩니다. 돈을 기준으로 해서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것과 연관이 되면 좋다고 판단하고, 돈을 벌 수 없는 상태를 나쁘다고 판단합니다. 건강이나 자녀의 형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적인 형통을 위해서 이런 것이 좋다거나 나쁘다며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다스려지는 세상 속에서 나의 삶을 위해서 판단하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생각의 그물망에는 구멍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소원의 그물망에 구멍이 생기는데 이곳이 바로 별궁인 것입니다.

이 별궁에서는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기뻐하려고 하지 않고 이 세상의 가치들로 기뻐하려는 간음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정무의 효과가 미치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중단되어 버리고 내 생각과 계획과 소원을 발휘함으로서 뚫려진 구멍이 별궁입니다.

이 별궁 생활은 나병환자처럼 하나님의 공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셔서 허락하시려는 모든 삶의 복지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키는데 오늘 본문이 바로 이것을 말씀하십니다.

 

나이이가라 폭포를 보면 먼 곳에서는 천천히 내려오던 물이 낙하지점에 가까워질수록 물살이 빨라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폭포에서 멀리 떨어진 상류에서는 사람이 물에 빠져도 얼마든지 헤엄쳐 나올 수가 있지만 폭포 근처에서는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이 망하기까지 고작 30년이 남았습니다. 본문은 21여 년 간에 다섯 왕이 바뀌며 패망의 물살이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여로보암의 죄를 따랐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붙잡고 있었지만 원죄의 성향을 다스리지 못해서 이 세상에서 나에게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있다고 믿어지는 것들을 붙잡은 것인데 그 대표가 풍요와 다산입니다.

그것을 마음에 지성소에 들여놓자 풍요와 다산을 이루기 위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계획하고 소원하기 시작하는데 간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과 뜻이 임하는 삼라만상의 세계 속에서 구멍을 내고 별궁을 만드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나병환자가 격리되듯이 하나님의 복지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버린 채 평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에게 주신 번영은 사형수에게 허락한 마지막 식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이 별궁 생활에서 빠져나오기를 아무리 기다리셔도, 이들은 풍요와 다산이라는 외도 상대와의 별궁 생활에서 빠져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이들에게 주신 번영은 하나님의 손이 미치는 범위 바깥으로 뛰쳐나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향하기를 바라시는 것이지 로봇처럼 명령을 입력해서 빠져나오는 것은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빠져나올 수는 없다 해도 별궁에서 빠져 나오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힘을 주시고 성령을 보내주셔서 빠져나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예 하나님을 향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의 견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우여곡절이 있고 절름발이 같은 신앙생활을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기어코 구원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인데 이 말 또한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믿는 만큼 우리의 행위가 따르지 못해서 절음발이처럼 보일지라도, 그럼에도 하나님만이 유일한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롬7: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한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자꾸만 세상을 향하려 하지만,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극복하게 하시고 이끌어 주시고 용서를 주십니다.

그러나 입으로 하나님을 부를지라도 자꾸만 이 땅의 가치들인 돈 형통 건강 등으로 기뻐하고 행복하려는 별궁 생활을 고집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아십니다. 그러나 약한 자들도 생각의 방향만큼은 바로 정해야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성전으로부터 끊어졌음이 문제인데 성전을 생활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신12:14절에서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이름이 가리키는 존재 쪽으로 가야만 합니다. 그 장치가 당시에는 성전에만 있었고, 이후에는 십자가를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습니다. 이렇듯 구약에서는 성전 생활화, 신약에서는 십자가 생활화를 하지 않는다면 별궁 생활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별궁 생활의 영적인 외도의 대상은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기쁘거나 근심하게 만드는 세상 가치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얻고 못 얻음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음으로서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세계에 구멍을 냈습니다. 외도의 상대가 생기면 별궁 생활에 빠지게 됩니다.

이제 내일 말씀에서는 망하기 직전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통치 10년이 지나고 북 왕국 이스라엘은 별궁 생활을 즐기다 끝나버리고 맙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이 BC 930년에 건국되어 BC 722년에 결국 망하게 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별궁 생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음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남 왕국 유다의 아사랴 왕이 나병환자로 별궁 생활을 한 것에 빗대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별궁 생활을 좋아하다가 망한 경우를 보라는 것인데 남 왕국의 유다 또한 북 왕국 이스라엘이 별궁 생활에 빠져 망한 것을 거울삼지 못했다가 뒤늦게 망하고 맙니다. 열왕기서 마지막에 보겠지만 남 왕국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성전이 파괴되면서 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별궁 생활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무의 결과가 나타나는 현장에서 살 때에 복지가 주어집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