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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들의 마지막 식사_태승철

작성일
16-10-18 10:09
작성자
태승철
조회
7,704

미국에서는 사형수들에게 형 집행 당일 아침만큼은 그들이 원하는 메뉴를 제공해준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는 길 음식이나마 그 동안 감옥에서 먹을 수 없어서 간절히 원하던 것으로 배불리 먹고 가라는 의미겠지요. 열망하는 음식과 사형의 조합이 더욱 슬픔을 자아냅니다. 오늘 성경에서도 사형수들의 마지막 식사가 소개 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너무 갖고 싶어 열망하던 것들이 더럭 주어지면 한 번 쯤 의심해 보세요. 내가 사형수가 된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사형수들의 마지막 식사

(열왕기하 14:23~29)

 

 

23.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제십오년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일 년간 다스렸으며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26.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27.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오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사형수들의 마지막 식사>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사형수들의 마지막 식사

미국에서는 사형이 제도화 된 주에서 사형이 집행되는 당일 아침만은 사형수가 원하는 식사를 제공해 주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그동안 감옥살이로 먹을 수 없었던 음식이나마 먹게 해주려는 의도에서입니다. 사람이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한 열망은 강렬합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배불리 먹고 이 세상을 떠나라는 의미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뉴질랜드 출신의 사진작가 헨리 하그리브스(Henry Hargreaves)“No Seconds”라는 사진집을 냈는데 이 사진 속에서 미국 사형수들이 먹은 마지막 아침 식사가 나오는데 사형수들이 먹은 음식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기록들을 조사해서 찍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무려 35명 넘게 여성을 죽였던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 사형수는 플로리다에서 43세에 사형을 당했는데 이 사람은 손바닥의 1.5배나 되는 큰 스테이크와 달걀프라이 3개와 브라운 토스트, 해쉬브라운 2, 주스와 우유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유타 주의 49세 로니 리가드너는 절도 살인 혐의로 총살형을 당할 때에 두꺼운 스테이크와 바다가재, 파이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고 반지의 제왕을 감상하고 죽었습니다. 또한 33명의 소년을 살해한 존 웨인 게이시는 자기가 운영했던 치킨 체인점을 연상했었는지 치킨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무죄를 끝까지 주장했던 사형수는 최후의 식사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극한 무도한 살인자가 다시 삶의 현장으로 풀려나온다면 우리 모두가 분노할 것입니다. 그러나 죽기로 결정되면 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측은지심이 생겨나게 되고, 그로인해서 원하는 대로의 마지막 식사를 제공하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성경은 영적인 의미에서 사형수들의 마지막 식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계시는데 이렇게 슬플 수가 없습니다. 본문은 해석하기도 어렵지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본문이 왜 사형수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식사인지를 포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13대 왕인 여로보암 2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므리 왕조에 속한 아합 왕이 죽고 예후 왕조의 4대 째 왕인 이 사람이 무려 41년간을 통치합니다.

여로보암이라는 이름은 솔로몬이 죽고 나서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이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분열되는데 북 왕국 이스라엘을 창건하는 왕입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1세라고 하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을 2세로 칭합니다. 북 왕국이 세워진지 140여년이 지난 상황입니다. (BC.930년에 세워졌는데 지금은 BC.793년으로 137년이 지났습니다.)

문제는 이 여로보람 2세가 즉위하고 나서 전무후무할 정도로 국가가 번창을 하는데 영토는 다윗 왕 때에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셨던 경계까지 다 회복하였고 경제적으로도 번영을 이루게 되는데 재미있습니다.

앞서 우리가 읽었듯이 이 여로보암 2세도 다른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들과 마찬가지로 여로보암 1세가 갔던 죄악의 길을 그대로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번영이 주어진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합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 전성을 이루던 바알 숭배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아세라 목상도 여전했습니다. 아세라 목상은 바알 신의 어머니나 부인이라고 하는데 모두 풍요와 다산을 관장한다고 믿어지던 신들이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역사적으로 최고의 번영을 이루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주석들을 보면 그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이해를 하는데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는 의문이 생깁니다.

본문 26절에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라고 하시는데 많은 질문을 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죄악이 관영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번영하게 해주셨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27절에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라고 하십니다.

이 여로보암은 앞선 여로보암 1세의 죄를 답습하고 우상숭배로 극악한 죄인이었는데도 그의 손으로 구원하셨다고 합니다만 이 말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히 여기심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라고 하신 말씀은 정말 웃기는 말씀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은 여로보암 1세의 죄악을 답습해왔기 때문에 이 구절에서의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다는 것은 굳이 여로보암 2세의 특징적인 상황이 아닌 것입니다. 앞선 모든 역사 속에서도 이러한 고난은 있어 왔습니다.

바로 앞서 본 13:22절에서 여호아하스 왕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라고 하는데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죄악 된 상태를 걸었음에도 지금은 풍요와 다산의 번영과 강력한 국력을 허락하셨고 왜 다른 왕들에게는 일찍이 이런 번영을 주시지 않았을까요?

또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였다고는 하지만 실은 선민에게 주어진 고난은 언제나 왕과 백성들의 패역함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이 이유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풍요와 다산의 안정된 삶을 살려는 선민들에게 고난을 주셔서 그 삶을 지진처럼 흔드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대로라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고난에 대해 전혀 모르셨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북 왕국 이스라엘을 보니 고난이 극심하므로 구원하시는 것처럼 말씀하고 계십니다.

도울 자가 없다고 하지만 본래 선민의 나라인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유일한 도움으로 삼는 자들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 하나님 외의 다른 도울 자를 찾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럼에도 도울 자가 없어서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고난가운데서 먼저 하나님께 나오는 대신에 자구책을 동원하는 것조차 좋아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주석들은 이 말씀을 너무나 쉬운 해석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이유는 조상에게 언약을 하셨기 때문에 여로보암 왕의 개인적 능력이나 신하들의 탁월한 술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시고, 죄인조차도 사랑하심은 사실이지만 오늘 본문은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라고 하시는데 무슨 뜻일까요?

예를 들어 부부싸움이 일어났는데 남편이 부부싸움 끝에 지금까지 당신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아도 내가 당신을 목 졸라 죽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 그래서 아직 당신을 안 죽이고 있었던 거야. / 지금까지 우리가 아무리 극심하게 싸웠어도 당신이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어.’라고 말했다면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제까지는 아무리 극심하게 싸웠어도 당신이 없어질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본적은 없지만 지금은 당신이 없어질 것에 대한 생각을 마음에서 떠올린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라는 것이 어떤 뜻인지를 알 수 있는데 너무나 슬픈 일이고 여기서 하나님의 눈물이 보이십니까?

 

하나님과 선민들의 관계에는 패턴이 있습니다. 선민들이 여로보암의 죄나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합니다. 그러면 고난을 당하던 선민들은 회개를 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십니다. 그런데 평강이 지속되면 또 선민들이 죄악의 길을 걷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로보암 2세의 통치 기간에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여로보암의 죄와 우상숭배에 대한 행동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징계대신에 풍요와 다산을 허락하십니다. 당연히 이스라엘은 회개하지도 않았는데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리도록 하셨는데 이러한 패턴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선민을 포기하십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하나님이 포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민들이 하나님의 끌어당기시는 기대와 사랑의 끈을 끝내 끊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제까지 선민들이 당한 고난에는 하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기쁨과 만족을 줄 것으로 믿어지는 대상이 들어오는 마음의 지성소에 이 세상의 돈 부흥 자녀 형통 건강 등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는 마음의 지성소에 바로 하나님이 들어오셔야 됨을 기대하시고, 선민 한 사람 한 사람과 사랑으로 연합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주셨는데, 이제 선민이 하나님의 기대의 끈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선민들의 마음에 풍요와 다산 대신에 당신 자신이 모셔지기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기대가 있으실 때에는 고난을 주셨습니다. 선민들이 고난 속에서 괴로워하면 하나님께서도 마음 아파하십니다. 선민들이 침략을 받거나 가난하거나 가뭄이 들어 기근이 임하면 하나님께서도 괴로우시지만, 그럼에도 선민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셨던 이유는 마음의 지성소에 하나님을 담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도저히 그런 기대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러한 기대가 일단락된 상태에서 이스라엘을 바라보십니다. 선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기대가 있을 때에는 고난이라도 주셨지만, 이제 그 기대가 끊어진 상태에서는 그들이 주어진 고난 속에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계실 이유가 없으므로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주십니다.

마음의 지성소에 하나님을 담으라고 140여 년간의 시간을 주셨는데도 뛰쳐나갔으니, 그렇게 좋아하는 돈과 부흥과 세상의 형통을 마음대로 누리라고 허락해 버리신 것입니다. 돌아올 여지가 없으면 고난도 의미가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선민의 고난을 보시며 괴로워할 이유도 없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여로보암 2세에 의한 41년간의 통치가 끝나고, 북 왕국 이스라엘은 30년 동안 여섯 번의 왕이 바뀌게 됩니다. 어떤 왕은 고작 한 달이나 육 개월을 통치합니다. 그 뒤에 북 왕국 이스라엘은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만석꾼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이루었던 여로보암 2세의 통치가 끝나자마자 불과 30년이 지나고 북 왕국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춰버리게 됩니다.

여로보암 2세 때의 번영은 삶으로 돌아올 필요가 없어진 멸망을 향해서 가도록 결정된 사형수들에게 사형 집행 당일 아침에 주어지는 마지막 식사였습니다. 그들이 감옥 생활을 하며 먹고 싶었던 음식을 풍성하게 제공해주었던 것인데 이것이 오늘 성경의 주제입니다.

 

느닷없이 내가 이 땅에서 강렬하게 원했던 돈 벌이가 되고 건강이 회복되고 자녀가 형통하여 만사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혹시 나를 사형수로 지정하신 것은 아닌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사형수로 지정하는 상황이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집니까?

십자가를 생활화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의 지성소는 이 세상의 가치들에 의해서 정복되고 맙니다. 십자가를 생활화하지 않으면 교회에 와서 어떤 행사를 하고 어떤 종류의 예배를 날마다 드릴지라도 마음의 지성소에 자리 잡은 세상 것들은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의 지성소에서 기뻐하거나 근심하는 이유를 찾아내서 하나님이 아닌 세상 것이 발견되고, 세상 것을 마음에 끌어들이려는 유전 죄의 성향이 발견된다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지 못한 삶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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