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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0)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0)’ 갈6:14

복음관련 영적 김영란법_태승철

by 태승철 · 16-09-28 09:51 · 7,565

내일부터 시행 되는 김영란법이란,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를 금지함으로써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된 ‘청탁금지법’ 입니다. 그러나 실은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이 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들의 공정한 사명수행과 교회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 더 시급한 형편입니다. 영적 김영란법이 먼저 있었더라면 아마 국회가 제정하는 김영란법은 불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복음관련 영적 김영란법

(열왕기하 5:15~27)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9.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오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복음관련 영적 김영란법>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복음관련 영적 김영란법

계획한 것도 아닌데 본문의 내용과 우리나라의 상황이 잘 맞아 떨어집니다. 내일부터 그 동안 매스컴을 통해서 반복해서 들어왔던 김영란법이 시행됩니다. 청탁금지법으로 공직자들의 공무수행이 공정하게 이루어지게 하고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 제정한 법입니다.

공직자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에는 3만 원 이상의 식사는 안 되고, 선물은 5만 원 이상이면 안 되고, 경조사비는 10만 원 이상이면 안 됩니다. 또한 강연료도 장관급이상이 50만 원 이상 안 되고 강연 횟수도 1년에 몇 번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한국 교회의 상황을 한 번 생각해봅니다. 외국 교회도 형편은 대동소이합니다. 교인은 줄고 교회의 숫자도 줄고 있는데 목사 후보생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목사 후보생들이 대형교회 목사님들의 겉모습을 보고 신학교에 들어갑니다.

물론 진심으로 사명감에 의해서 신학교를 가는 신학생들도 있습니다만 부모님이 목사님 장로님이거나 오래 믿으신 가정이라서 권유에 의해서 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본인이 사명감을 느끼는데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직장 구하기도 어려운 때에 대형교회의 목사님이 TV에 나와서 설교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목사의 길을 풍요와 다산에 이르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인식한 것인데 오죽했으면 스타 목사라는 말까지 나왔을까요.

말씀과 글과 경험과 목회 활동을 팔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보다 돈이 더 먼저 들어와서 돈을 경외하게 되면 목사라는 이름 하에서 행하게 되는 모든 목회 활동은 다 장사와 거래가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엘리사는 김영란 법이 제정되기 3000년 전 정도 앞서서 영적인 김영란법에 해당되는 내용을 우리들에게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나아만이 우여곡절 끝에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고 나서 깨끗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서 바로 고국인 아람으로 돌아가면 가깝게 갈 수 있는데 엘리사를 찾아서 먼 길로 방향을 돌려 사마리아 지방으로 갑니다. 사마리아는 요단강을 기준으로 서쪽 내륙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자신의 나병이 고쳐진 상황에 대해서 예물을 드리려고 하자 엘리사는 이를 거절합니다. 이 엘리사의 거절 속에는 복음과 연관된 영적인 김영란법이 제시되고 있는데,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일꾼들이 부패하고 부정하지 않게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방나라 아람의 국가적 영웅 나아만이 자기가 수행한 전쟁에서 패전국인 이스라엘의 신(그 당시에는 국가 신이 따로 있었음)인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나병이라는 8.0진도의 지진 사건으로 안정되고 완벽한 상황의 모든 것이 다 깨어지게 되자, 이방나라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나병을 계기로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여종을 통해 엘리사에 대한 말을 듣고 이스라엘로 오게 되고, 엘리사의 종 게하시에게 처방을 받았으나 홀대를 받았다고 여겨 자존심이 상해서 돌아가려고 하다가, 또 종들의 말을 듣고 마음을 돌려 요단강에서 씻고 깨끗함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에 엘리사를 찾아와서 인사를 하는데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참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를 드리며 살겠다.’는 고백을 하는데 이게 참 기가 막힙니다.

나아만은 나병이 나은 것을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계기로 해서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다시 나병에 걸려 죽는다고 하여도 이제 여호와 하나님만은 놓지 않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상태가 되었음을 고마워하며 예물을 드리겠다고 하자 엘리사는 거절합니다. 지금 온 나라에 흉년이 들어서 제자들의 끼니조차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아만이라는 거물급이 주는 예물은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인데 엘리사는 거절을 했습니다.

이것을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볼 때에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서 나아만을 쫓아가서 거짓말을 하여 예물을 받아왔다가, 하나님이 주신 통찰력으로 모든 사실을 엘리사가 깨닫게 되자 게하시는 책망을 받고 나아만의 나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엘리사는 무슨 마음으로 예물을 거절한 것일까요?

게하시의 시각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각과 일치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일이 은총으로 주어졌으면 그에 보답하는 것을 마땅한 것으로 여겨서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마음인데 여기서 엘리사의 생각의 초점과 게하시의 생각의 초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의 생각은 나아만이 자기를 통해서 기적적으로 나병이 회복되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병을 기회로 도저히 불가능한 하나님 경외의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을 너무너무 두려워할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쁨과 만족의 근원으로 삼고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이런 경우에 나병을 계기로 이방사람 나아만이 하나님을 자기처럼 경외하게 되었을 때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이 더 크겠습니까? 나아만이 엘리사를 향하여 고마워하는 마음이 더 크겠습니까? 내가 자녀를 사랑하는 만큼 누군가가 내 자녀를 사랑해준다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그러나 게하시는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었기 때문에 나병이 기적으로 나았다는 사실에만 초점이 맞춰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사건을 은총으로 혜택을 받았으니 마땅히 보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고, 그 보답으로서의 예물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통해서 이방 땅의 군대 장관의 나병이 나았지만 상천하지에 이스라엘에만 참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이제 앞으로는 하나님만 경배하겠다.’는 하나님 경외의 신앙이 생긴 것을 보면서 오히려 나아만을 기특하게 여기고 고마움을 느끼게 된 것인데 이것이 사명자의 마음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장 좋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제일 고마운 사람은 그 하나님을 나처럼 좋아해서 믿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셨는데 제자들 경우에도 예수님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거나 불치병을 고치셨을 때에 보답하고 예물을 드리길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시듯이 그들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러한 사명자에 대한 보답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전하는 자와 똑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사명자들에 대한 보답인 것입니다.

그런데 게하시와 같이 예물을 원하게 되는 이유는 돈을 사랑하기 때문인데 나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에 대해서 예물을 받기 원하는 것인데 여기에 바로 김영란법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라면 자기 사명 수행을 통하여 나타난 결과에 대해 보답하려는 예물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김영란법이 시행 된 이유는 우리나라에 부정부패가 많기 때문입니다.

게하시가 나아만으로부터 예물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의 통찰력으로 알게 된 엘리사는 오히려 26절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라고 묻는데 지금은 어떤 때입니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선지자 노릇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바알 숭배에 찌든 풍요와 다산을 경외하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나타난 결과에 대해 돈으로 대가를 지불하려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보다도 돈을 우위로 삼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고마운 마음으로 답례를 하려고 했지만 바알 숭배가 만연한 분위기에서 엘리사가 예물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모든 수행자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능력을 베풀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면서도 대가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관행을 따르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김영란법을 제정하는 것입니다.

사명자는 사명 수행의 결과물로 인해서 보답으로 예물을 드리려는 모든 것을 거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다른 모든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면서 기적을 행할 때에 대가를 바라게 되는 장사가 되고 장사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명을 받은 자라면 절대로 그 사명 수행의 결과에 대해 예물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궁금증이 생깁니다.

왕상19:21절에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고 합니다. 엘리사는 이제 자기의 밭을 갈지도 않는데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인데 그러나 오히려 엘리사는 엄청나게 받는 사람입니다.

앞서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셔서 식사를 대접하는 것뿐 아니라 아예 그가 머물 방까지 만들고 가구들로 채워 놓았는데 다 받았습니다. 또한 바알 살리사에 사는 익명의 사람이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 한 자루를 가져온 것을 보았습니다. 이 정도를 가져온 것으로 보아 결코 형편이 넉넉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웬만했다면 양고기나 생선이라도 가져왔을 것인데 그것에 대해서도 다 받아들였는데 나아만의 예물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 영적인 김영란 법의 제2조항이 나타납니다. 앞서 제1조항은 사명자는 사명 수행의 결과에 대한 보답의 예물을 받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2조항은 하나님의 일꾼을 후원하려는 사람도 하나님과 직접 맞닿아 수행하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행한 기적으로 나병이 나았음으로 그 기적에 반응하여 답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으면 경외하게 된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예물을 주라고 하실 때에 그 때에서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엘리사는 하나님께 사명을 받아 나아만에게 나병에 대한 처방을 내리게 되고 하나님께서 나아만을 고쳐주셨습니다. 바알 숭배가 편만한 세상에서 하나님 경외를 외치는 것도 사명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경외를 외치는 엘리사를 물질적으로 돕는 것도 마찬가지로 엘리사의 사명과 같은 사명입니다.

엘리사가 수행한 사명에 대한 진정한 보답은 엘리사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또한 엘리사를 물질적으로 돕기 위해서도 하나님께 사명을 받는 것입니다. 받은 은총 때문에 보답하려는 사람과 보답 받는 사람의 마음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이 관행이 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 말씀 값을 기대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그러한 상황이었기에 엘리사는 게하시의 행동에 대해 질책하며 지금이 어찌 그런 것을 받을 때냐고 되물었던 것입니다. 안 그래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선지자들의 행동이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게하시가 예물을 받은 행동이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의 번제를 함께 나눌 때에 저 멀리 남미의 칠레에서 듣는 분도 계십니다. 그곳에서 듣는 분들이 오늘의 번제에 참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면서 무엇인가를 보답하려고 한다면 영적인 김영란법에 위배되는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명자에 대한 가장 큰 보답은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서 나도 하나님 경외가 아니면 못 살겠습니다라는 한 통의 편지여야 할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 후원의 사명을 받았다면 사명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사명이 아니라면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후원이라도 답례가 되면서 시간이 지나면 장사와 거래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아만은 하나님 경외의 새로운 새 세상을 열어주었으므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좋은 마음으로 예물을 바치려고 했으나, 당시의 정황은 온 세상이 돈을 노래하고 있고 이스라엘과 선지자들도 돈을 부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명을 사명답게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했기에 받을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의 세대도 돈을 노래 부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큰 예배당 짓는 것이 성공한 것이고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을 성공으로 여깁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봐야 그 중에서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이 세상의 돈과 건강과 자녀들의 형통 때문에 걱정합니다.

하나님이 내게서 조금이라도 없어지고 그 친밀함이 사라질까 근심 걱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것을 성공으로 여기는 이 세상에서 엘리사가 말하는 영적인 김영란법이 우리 믿는 자의 생활 속으로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할 것입니다.

이 복음관련 영적 김영란법이 수행되기 위해서는 이 사명 수행의 결과에 대해서 내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명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장사가 되어서 괜한 서운함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사명을 수행해서 마음의 평강을 얻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들은 꿈쩍도 하지 않느냐는 서운함이 생길 수도 있지만 이런 마음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내가 수행한 사명의 결과에 대해 내가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사명자의 길을 걸어갈 때에, 또한 하나님께서는 나를 돕는 사명자들을 세우실 것입니다. 수넴 여인과 바알 살리사에서 익명의 사람이 떡 이십 개와 야채 한 자루를 들고 온 것처럼 하나님이 세우셔서 사명과 사명이 만나는 온전함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