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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0)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0)’ 갈6:14

세상중독 탈출 키워드: 지진, 타국, 종_태승철

by 태승철 · 16-09-27 09:25 · 8,199

'너무 좋아해서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워함'이란 의미에서 경외와 중독은 닮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경외와 달리 세상 경외를 경외라하지 않고 중독이라 하는 이유는, 반생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즉 생명 현상인 참 만족과 기쁨 대신에 걱정 근심 우울 분노 시기 등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지요. 아편이나 니코틴 중독보다 더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세상중독입니다. 세상중독 탈출을 위해선 '지진' '타국' '종'의 키워드가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중독 탈출 키워드: 지진, 타국,

(열왕기하 51~15a)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오늘 말씀 중심으로 <세상중독 탈출 키워드: 지진, 타국, >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세상중독 탈출 키워드: 지진, 타국,

국내 제1호 중독전문의가 연세대학교 의대 세브란스병원의 남궁기 교수님이신데 이 분이 특별히 알코올 중독 치료에 정평이 나있습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알코올 중독의 기준은 술에 빠져서 일도 안하고 집에서 술만 마시는 사람이나 술 냄새 풀풀 풍기는 노숙자 처지의 사람들, 매일 술에 취해서 부모도 어른도 못 알아보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남궁기 박사님의 견해는 전혀 다른데 의학적으로 제시하는 알코올 중독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술을 먹고 집에 들어갈 때마다 아내나 자식들과 싸우면서도 그 다음날 또 술을 먹는 사람, 술을 마신 다음 날에는 컨디션이 안 좋고 머리가 아파서 업무에 지장을 주는데도 또 술을 먹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나와 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도 술 때문에 그 생각을 잊거나 포기하는 상태라고 합니다. 술 때문에 자신의 건강이나 가족이나 직장이나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줄 알면서도 술을 마신다면 알코올 중독으로 봅니다.

중독(中毒)’이라는 말은 독약 성분에 장악되어 그 수중에 들어갔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중독과 경외라는 말을 나란히 두고 살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경외와 중독에는 공통된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외는 공경하면서 두려워하는 것인데 이것을 성경적 맥락을 염두에 두고 풀어 말하자면 너무 좋아해서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중독에서도 나타납니다.

중독과 경외의 차이점에서 중독은 반생명적현상을 가져다주지만 경외는 하나님께 적용할 때에 생명적 현상을 가져다줍니다. ‘생명적이라는 것은 참 만족과 기쁨을 말하고 반생명적이라는 것은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우울함 좌절 분노 시기와 같은 것입니다.

이 경외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일 때에 중독이라고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중독의 증상은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요? 중독전문의 남궁기 교수님이 알코올 기준을 제시하신 것처럼 우리도 기준을 제시하여 내가 세상 중독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이 세상에서 안정감을 찾으려 합니다. 내 마음의 안정감을 이 세상의 상황과 조건 위에 두려는 것이고 모든 방면에서 하자 없는 삶의 조건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둘째, 위의 증상과 연관되어서 인간 사회가 정해놓은 가치를 추구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경우에 명품의 본고장인 프랑스나 이태리보다도 더 심하게 명품을 사랑합니다. 명품이 만들어진 나라의 사람들은 심지어 그 명품의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까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명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사회에서 그러한 가치를 정했기 때문입니다.

다큐멘터리에서 네덜란드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자전거나 소형차를 타고 다니다가 국회 회기동안 국회 근처의 작은 원룸을 빌려서 생활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우에는 국회의원은커녕 한전 간부들의 관용차가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최고차입니다. 웬만한 간부들이 다 그 차를 타고 다닙니다. 기자들이 전화를 해서 어떻게 국회의원급의 차량을 이용하느냐고 묻자 그게 그렇게 비싼 차였습니까?’라고 반문하더랍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나 캐나다보다 독일에서 만든 벤츠나 BMW나 아우디를 더 많이 탄다고 합니다. 이렇게 내가 속한 세상이 정해놓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세상 중독입니다.

셋째, 끊임없이 세상에 대한 생각과 말을 하면서 세상에 대한 나의 생각이 관철되기를 바라며 이 세상의 조직 안에서 자꾸 높아지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 중독에 걸리면 이 땅위에서 안정을 추구하고 그 방편으로 세상이 정한 가치를 열정적으로 추구하는데 술을 퍼 마시듯이 세상을 퍼 마시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높은 자리를 선호합니다. 이것이 반생명적 세상 중독의 증상인데 이렇게 독에 장악된 상태에서는 절대로 참 기쁨과 참 만족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경외와 반대되는 세상 중독의 완성에 도달한 삶이란 이 세상에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안정된 삶의 여건을 만들어 놓고, 이 세상이 정한 가치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그 위에 자기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의 삶입니다. 완전히 세상 중독에 장악되어 완성되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요단강의 북동쪽에 있는 이방나라인 아람의 나아만 장군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아합 왕 때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부터 아람을 구원한자로서 우리나라의 이순신 같은 국가의 영웅이었으므로 벤하닷 2세조차도 나아만 장군을 떠받드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나아만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 중독으로부터 해독되고 탈출할 수 있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 세 가지 측면으로 세상 중독이 해독되는 삶이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원죄의 기질 상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 중독을 향하여 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 나올 세 가지 요소를 생활화하지 않으면 하나님 경외는 끝나게 될 것입니다.

첫째, 지진입니다. 국가적 영웅이었던 나아만 장군은 그 당시로서는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나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나병 환자를 초기에 격리시키는 제도가 있었지만, 아람에서는 따로 격리를 시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병이 더 진전된다면 격리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너무나도 완벽한 안정적 상황을 구축한 사람이었지만, 나병이 걸렸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마치 대륙과도 같이 안정적이었던 삶의 조건에 지진이 일어났음을 뜻합니다.

지진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그 땅에 집을 짓거나 안정된 삶을 계획할 수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지진 위에서 안정된 삶을 소망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에 경주에서 지진이 나서 여진이 430회가 넘었다고 하는데 제가 사는 강릉도 마치 배를 탄 것 같이 흔들려서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아만 장군을 선민으로 선택하셨고 세상 중독에 빠져있는 그에게 지진을 보내셨는데 이 세상에서 안정되게 살려는 마음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의 평강과 안정은 하늘에 기반을 둬야지 이 땅에서 안정을 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안정감을 취할 수 없는 지진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나아만 장군에게 나병을 주신 것처럼 세상 중독에 걸려서 이 땅 위에서 안정된 삶의 조건을 만들고 싶어 하는 우리의 마음을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지진이 주어지면 다른 땅으로 가서 안정된 삶을 살려고 하지 말고 아예 땅 전체에 대한 신뢰를 버려야만 합니다. 내가 이 땅 위에서 안정된 조건을 만들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버리는 것입니다.

 

둘째, 타국입니다. 나아만은 아람에서 이스라엘로 옵니다. 선민의 나라 이스라엘에서는 경외하는 가치가 하나님입니다. ‘경외하는 가치는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살지는 못했지만 본래 선민의 나라의 가장 본질적인 특색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세상과는 가치체계와 신념체계가 다릅니다.

마치 네덜란드의 국회의원들이 국회 회기동안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자기 돈으로 원룸 비용을 지불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형차 타기도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이를 먹으면 나이에 맞는 세단을 끌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이 땅꼬마 같은 차에서 내리면 사람들이 우습게봅니다. 그러나 네덜란드에 가면 국회의원조차도 땅꼬마 같은 차를 타고 다닙니다. 그렇게 나라를 옮기는 것입니다. 아람으로부터 이스라엘로 옮겼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늘에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유일한 생명의 가치로 숭앙하는 환경이었는데 타국으로 나라를 바꾼 것입니다. 나라는 일정한 가치체계로 조직된 것이므로 나라를 바꾸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세상 중독에 걸리면 돈이나 인기 등 세상이 정한 가치를 최고로 여깁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선민으로 살기 위해서 세상이라는 가치체계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을 유일한 경외의 대상으로 삼는 나라로 국적을 바꿔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 중독으로부터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아편 중독에 걸린 자들을 감옥에 가두면 금단 현상이 일어나서 발버둥을 치며 자학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묵인함으로서 차차 중독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가치에 중독된 사람들을 전혀 다른 가치체계의 나라로 바꾸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은 이 땅 대한민국 안에서 다른 가치체계로 조직된 다른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셋째, 종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합이 죽기도 했는데 그 전쟁 때에 이스라엘 소녀를 아내의 몸종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나병에 걸리자 이 계집종이 자신의 고향에 살던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의 이야기를 합니다. 엘리사를 찾아간다면 주인의 나병을 치유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나아만은 아람 왕에게 얘기하고 아람 왕의 친서를 가지고 이스라엘로 오게 됩니다. 또한 엘리사를 찾아왔을 때에 엘리사의 사자로 표현되었지만 사환 게하시를 만납니다.

이스라엘에서 잡아간 계집종의 말을 듣고 움직이게 되고 엘리사의 종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는 말을 받고, 조건이 맘에 들지 않아 화가 나서 돌아가려고 할 때에도 나아만 장군의 종들이 말립니다. ‘선지자가 당신에게 이보다 더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라고 하자 결국 그 종들에게 설득되어서 요단강에 들어가게 됩니다.

계집종에 의해서 아람에서 이스라엘로 왔고 엘리사의 종에게서 처방전을 받았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종들에게 설득되어서 요단강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종들의 말을 듣고 움직일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계집종의 말을 듣고 아람에서 이스라엘로 왔지만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자신의 나병을 고치는 것을 개인의 일이 아닌, 아람 나라와 이스라엘 나라의 외교적 차원의 일로서 승격시켰던 것입니다.

아람 왕에게 편지를 받아서 이스라엘 왕에게 왕의 편지를 전함으로 두 왕을 자신의 나병을 고치는 일에 참여시켰던 것인데 그 정도의 능력과 지위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이 실질적으로 나병을 고칠 때에 두 왕의 참여도는 전혀 의미 없고 실제로 계집종의 말을 듣고 아람에서 이스라엘로 왔고 엘리사의 종이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을 듣고 자기가 대동한 종들의 말에 설득되어서 낫게 됩니다.

이때에 나아만의 모습을 보면 11절에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라고 합니다. 자기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왕들도 참여시키는 마당에 고작 패전국의 선지자 나부랭이가 종을 시켜 처방을 알려주는 현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으로는 두 나라의 왕까지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이 생각하기에는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과 신하들이 다 보는 가운데 대대적인 주술적 의식을 거행하여 자신의 병을 고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오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엘리사의 종이 와서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하자, 두 왕을 움직이고 방금 온 나아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접을 받았던 것인데 그러나 여기에서 세상 중독이 깨어져 나갑니다. 세상 중독의 핵심은 내 생각에는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관철되기를 바라므로 자꾸만 높은 자리를 추구합니다. 그 생각의 근원을 따져보면 하나님처럼 높아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로 종이 해독의 키워드가 됩니다. 나는 종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높은 자가 되려는 마음을 가지면 세상 중독의 길로 빠져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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