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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지식 하나에 생을 걸자_태승철

작성일
16-06-28 07:27
작성자
태승철
조회
7,849

세계 최고의 지식 단 하나에 생을 걸고 살 수만 있다면 그 보다 더 단순하고 힘 있고 효과적인 다른 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계 최고의 지식을 어디서 얻을까요? 뉴턴의 3대 발견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아니면 애플, 구글에서 찾아질까요? 삶의 분야도 다양한데, 한 분야에서도 아니고, 모든 분야를 총망라해서 최고인 지식이 과연 있기나 할까요? 있습니다. '지혜의 왕'이 역사에 등장하는 일에 절대 유일의 세계 최고의 지식이 동원 되어 모습을 드러냅니다.

세계최고의 지식 하나에 생을 걸자

(열왕기상 1:1~53)

 

 

22. 밧세바가 왕과 말할 때에 선지자 나단이 들어온지라

23. 어떤 사람이 왕께 말하여 이르되 선지자 나단이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왕 앞에 들어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왕께 절하고

24. 이르되 내 주 왕께서 이르시기를 아도니야가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나이까

25. 그가 오늘 내려가서 수소와 살찐 송아지와 양을 많이 잡고 왕의 모든 아들과 군사령관들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청하였는데 그들이 아도니야 앞에서 먹고 마시며 아도니야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였나이다

26. 그러나 왕의 종 나와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왕의 종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사오니

27. 이것이 내 주 왕께서 정하신 일이니이까 그런데 왕께서 내 주 왕을 이어 그 왕위에 앉을 자를 종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나이다

28. 다윗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밧세바를 내 앞으로 부르라 하매 그가 왕의 앞으로 들어가 그 앞에 서는지라

29. 왕이 이르되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하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라

30. 내가 이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 그대로 행하리라

31. 밧세바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내 주 다윗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세계최고의 지식 하나에 생을 걸자>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세계최고의 지식 하나에 생을 걸자

분야별로 가장 보편타당한 지식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과연 세계최고의 지식이 있을까요? 더군다나 내 생을 걸만한 세계최고의 단 하나의 지식이면 어떤 조건을 구비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실질적으로 내게 유익이 되어야 하는데 그 지식을 따르면 알맹이가 꽉 찬 만족함과 기쁨이 주어져야만 합니다. 또 우리의 인생에는 다양한 문제와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주어지는데, 이러한 다양한 국면들과 상황들을 돌파할 수 있는 지식이어야 할 것입니다.

뉴턴의 3대 발견에는 빛의 입자설, 만유인력의 법칙, 미적분이 있습니다. 3대 법칙으로는 관성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최고의 지식은 아닐 것입니다. 현대로 와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이나 워렌 버핏의 투자방법론을 읽는다고 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워렌 버핏이 투자하는 것 말고 다른 방면에도 이렇게 탁월할 수 있겠습니까? 돈과 관계되는 일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있어서도 생을 걸만한 단하나의 지식은, 너무나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죄를 아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잠1:7절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이라는 말씀을 아실 것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지식인데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죄를 앎으로서만 가능합니다. 또 십자가 복음을 아는 것도 세계 최고의 지식 아닐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복음이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고 생활화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지식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십자가를 생활화하지 않는 이유도 죄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지식이 있으면 십자가 생활화는 특별한 일이 아닌 당연한 귀결입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외할 수 있고 하나님께 갈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가질 수 있는데 죄를 아는 지식으로부터 나옵니다.

어거스틴이 내가 죄인임을 아는 것이 제2의 복음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이것을 모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지식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지식을 갖지 못해서 삶이 부족하고 뒤처질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될 지식은 한 가지 뿐인데, 죄에 대해서 알면 십자가 복음과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되고 여기서 우리의 앎은 끝이 납니다. 아는 것은 지속적으로 그 지식을 활성화시킴을 말합니다. 그 외의 모든 지식들은 필요할 때마다 동원되는 지식일 뿐입니다.

 

오늘 열왕기상이 시작되면서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하는 내용인데 그 과정이 순조롭지 않습니다. 다윗 왕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는 압살롬에 준하는 수려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아버지 다윗에게 한 번도 꾸지람이나 핀잔을 들은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자녀 교육에 태만했다는 것이 아니라 아도니야의 인간됨이 그 정도로 하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다윗의 총사령관이었던 요압이 아도니야를 지지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공식적으로 공포한 것은 아니었으나 밧세바의 다섯 번째 아들인 솔로몬을 왕위에 앉히겠다는 결정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압과 두 대제사장 중의 한 명이었던 아비아달(엘리 계열의 마지막 제사장)이 아도니야를 지지하고 유다지파의 유력자들도 합세했습니다. 아도니야는 그 정도의 인정과 신뢰를 받을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아도니야는 이러한 지지를 바탕으로 아버지가 솔로몬을 왕으로 세울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스스로 왕이 되었음을 선포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단 선지자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던 결정을 다윗에게 상기시킵니다. 또한 다윗도 모르게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으로 선포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줌에 따라 다윗은 솔로몬을 왕위에 즉위시키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다윗 왕의 40년 통치기간 중에 유일하게 죄인으로서의 특징이 두드러진 사건이 바로 밧세바-우리아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앞에서 읽었던 인구계수 사건은 다윗의 죄로 보기는 곤란하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 사탄의 충동을 허락하심으로 왕으로서 백성들의 죄를 일깨웠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성군으로 불릴 정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선시하여 살았기 때문에 밧세바-우리아 사건이 더욱 더 뚜렷하게 부각되었습니다. 네로나 폭군 연산군이나 광해군이 이러한 비슷한 사건을 저질렀다면 죄악으로 말할 상황도 아니었겠지만 40년 성군으로 불린 다윗이었기에 이 사건이 특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한 번 이 사건에 참여했던 자들이 솔로몬 왕의 즉위까지의 과정에서 모두 등장하게 됩니다. 다윗과 밧세바 당사자가 등장함은 물론이고 나단과 요압이 등장합니다. 요압은 밧세바-우리아 사건에서 왕의 명령을 받아 우리아를 적진 깊숙한 곳에 보내어 죽게 하였습니다. 당시에 그 일로 인해서 전쟁에서 패배하기까지 했는데 그러한 패배를 감수하면서까지 왕의 명령을 따라 우리아를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요압에게 있어서 솔로몬은 못 마땅한 존재였는데 솔로몬은 다윗 왕의 가장 추악한 면을 드러낸 결과이기 때문에 그에게서 왕이 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그 외에도 20명이나 되는 아들이 있었지만 이미 첫째부터 셋째가 죽었기에 넷째였던 아도니야가 왕위를 물려받는 것은 상식적으로나 관례상 당연했고 또한 아도니야는 성품이 탁월했습니다. 반면 나단 선지자는 왕의 죄악을 지적한 사람이었지만, 그 죄악의 결과로서 태어난 솔로몬을 왕으로 옹립하려합니다. 다시 말해 다윗의 죄악에 편승했던 요압은 죄악의 결과인 솔로몬을 반대하고 아도니야를 세우려고 하고, 유다 지파의 유력자들과 대제사장 아비아달도 이들을 지지합니다. 반면에 나단 선지자와 다른 대제사장이었던 사독과 다윗의 친위대들은 솔로몬을 지지함으로 인해서 분열되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지혜의 왕이 되는데, 죄를 아는 세계 최고의 지식으로부터 태어나게 되었고 아버지 다윗이 한 수 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솔로몬을 왕으로 정하신 것일까요? 다윗에게 많은 아들이 있었지만 솔로몬은 자신의 가장 추악한 모습이 드러났던 결과로 태어난 자였으므로 항상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어디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가 하면 마태복음에서는 솔로몬의 탄생을 1:6절에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우리아의 아내로서 낳은 아이가 아닙니다. 우리아의 아내로서 낳은 아들은 죽었습니다. 정식으로 다윗의 아내가 되어서 세 아들을 낳고 네 번째로 낳은 것이 솔로몬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마치 요즘 악플러들이 인터넷에 악플을 다는 것처럼 그 옛날에 다 지난 얘기를 들추어내서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합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서 메시아의 출현을 예고하시는 뜻을 담고 있는 다윗언약을 성취하는 고리입니다. 그런데 그 솔로몬이 태어난 것을 왕 다윗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죄인 다윗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기록했습니다. 다윗 또한 솔로몬과의 관계에서 특별히 자신을 죄인으로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심을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시는데 이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4절을 보면 아비삭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70세 노인이 된 다윗이 기력이 쇠하여 이불을 덮어도 몸이 따듯하질 않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이 당시의 의술과도 같았던 혈기왕성한 젊은 여성을 들여보내서 따듯하게 만들도록 하는데 미스 이스라엘로 아비삭이 뽑혔습니다. 그런데 아비삭이 수종을 드는 동안 다윗이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뒤에 솔로몬의 즉위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즉위 이야기 전체를 아비삭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깔고 보라는 것인데 이를 통해 솔로몬을 택하신 하나님의 의중을 알 수 있습니다.

남녀의 성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시는 박사님들이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여자를 생각한다.’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다윗 왕이 기력이 쇠했기 때문에 아비삭과 잠자리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밧세바 사건과 비교하라는 것인데 밧세바 사건 때 못지않게 다윗 왕에게는 여자가 필요한 때였습니다. 밧세바 때에는 욕정으로 인해 여자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합당하고 합법적으로 여자가 필요했지만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죄는 마음에 밧세바를 들여놓았던 것이었습니다. 마음에 밧세바를 들여놓게 되자 바세바를 손에 쥐려 하였고 손에 쥐려 할 때에 방해가 되었던 우리아를 제거했던 것입니다. 이 밧세바-우리아 패턴이 바로 죄악이었는데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다윗은 나이가 70세나 되었기 때문에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몸은 늙고 기운이 없어서 추웠지만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곁에 두고도 잠자리를 하지 않을 만큼 마음이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충만한 상태였음을 말해주는 것이고 이 배경 하에 솔로몬의 즉위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셔서 택하시고 역사하시는 사람이 죄가 무엇인지를 알 때에 하나님은 그 인격을 통로 삼으셔서 이 세상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그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지식과 능력이 있으시며, 우리를 우리보다 더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아는 지식을 알기 위해 지금의 능력과 힘을 다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아는 지식을 가질 때에 하나님이 들어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죄를 상기시켜주는 존재였던 솔로몬, 언제나 밧세바를 기억하며 생애 최악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 드러냈던 순간을 기억하는 다윗, 그 죄를 아는 다윗의 지식을 통해서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서 등극하게 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이 내려오셔서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사건입니다. 내 생애에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중에서 이보다 더 큰 사건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십자가를 생활화하지 않는 이유는 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밧세바-우리아 패턴이 죄입니다.

장로님이 사업하시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면, 마음에 밧세바 대신 돈이 들어온 것이고 돈을 벌기에 방해되는 우리아를 제거해 나갑니다. 밧세바 대신에 자녀가 들어오면, 자녀를 잘 기르기 위해 장애로 여겨지는 우리아를 제거합니다. 이것이 죄인데 죄인지 모르기 때문에 십자가를 생활화할 수가 없고, 하나님의 뜻이 통로 삼아 내려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지식과 모든 지혜를 총동원해서 우리의 삶을 반보 진전시키려고 진땀 흘릴 것이 아니라 모든 힘을 죄를 아는 지식에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들어와서 생각하게 하고 소원하게 한다면 그 순간에 빨리 십자가를 붙잡아서 밧세바가 들어온 내 마음을 죽여야 합니다.

밧세바 사건의 간음과 살인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신 제 1계명을 어김으로 나타난 결과일 뿐입니다. ‘다른 신이란 그것으로 인해 내가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힘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인해서 기쁨을 얻으려고 하므로 제 1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내가 얻고 싶은 밧세바인 돈을 벌려고 동원하게 되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이름을 우상시하며 망령되이 일컫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을 걸 수 있는 절대유일의 지식은 죄를 아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지금 하나님이 들어와 계셔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 세상 땅의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죄인 것을 알면 십자가 생활화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을 이 지식에 걸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 지식을 앎이 통로가 되어서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역사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내가 많이 알 필요도 없고 내 능력을 나타낼 필요도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지식에 인생을 걸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세계 최고의 절대유일의 지식에 우리 인생을 걸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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